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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연애학 개론 / 노정희

부흐고비 2020. 1. 19. 10:12

연애학 개론 / 노정희


관계(關係)란 때로 잔기침을 한다. 몸살을 앓을 정도라면 연인과의 이별이거나 친한 사람과의 감정다툼일 수도 있겠다. 수시로 얼굴을 맞대는 지인도 조심해야 할 터, 쿨럭이는 기침소리가 자칫 독감으로 갈 수 있다. 어느 관계이든 무서리가 내려서는 아니 될 것이다.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의 만남은 오래 묵어 향 깊은 술처럼 그윽하다고 자부했다. 서로의 가정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애인 수업’까지 들먹이며 깔깔거렸다. 우리에게 나이의 등고선은 있을지언정 마음만은 늘 평행선을 달렸다. 어떻게 ‘내 마음’이 ‘네 마음’이 될 수 있으며, ‘네 마음’이 ‘내 마음’이 될 수 있으랴. 그러나 세 여자는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감싸주며 숭숭 뚫린 바람구멍을 이렇게 저렇게 메워주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 아니겠냐고 입을 모았다. 예전처럼 한참 웃고 떠들었다. 너나들이에 화르륵 메밀꽃을 피우던 중, 갑자기 언성이 높아졌다.

A지인이 저녁에 초대했다. 접시 가장자리를 색동야채로 예쁘게 돌려 담고 중앙에 해파리를 올린 냉채, 파프리카를 썰어 넣어서 무친 잡채와 불고기, 고디를 넣어서 끓인 된장찌개가 식탁을 푸짐하게 만들었다. 나는 추석에 선물 받은 와인을 가져갔다. 세 여자는 힘차게 건배를 외쳤다. 기분이 알딸딸하니 몸이 후끈하게 달아오른다.

항상 그렇듯이 막내인 내가 바람잡이를 한다. “빠구리 야그 좀 해 주이소~.” 야한 얘기는 비속어로 주고받아야 더 재미있지 않은가. 빠구리가 여자를 ‘덥석 먹는다’의 일본 말이든, ‘박다’의 어원인 한국말이든 개의치 않는다. 언젠가 자리를 함께했던 식당 여주인이 보고파진다. 그녀는 유쾌하게 웃어 제치며 말을 툭툭 던졌다. “똥배가 나온 여자는 배에 ‘에어air’가 차서 그래. 남녀가 펌프질을 해야 바람이 빠지는 데…….” 나와 A지인은 그 자리에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얼마나 웃었던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야기는 섬돌을 쓸고 가는 바람처럼 유유히 흐른다. 세 여자는 ‘연애학 개론’을 들먹였다. 내가 꿈꾸는 이상형 남자를 얘기하면 B지인이 고개를 젓고, B지인이 원하는 남성상에는 A지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꽃띠도 아닌 이 나이까지, 어떻게 이상형 남자를 마음에 꼭꼭 숨겨두고 지냈는지. 연애를 ‘간식 대용’으로 사용치 못하는 현실을 원망할 수밖에.

연애학은 감나무에 달린 홍시처럼 빨갛게 구워졌다. 침을 꼴깍 삼켰다. 이러 저러한 예를 들어가며 따끈따끈하게 달궈진 이야기에 보태, 아슬아슬한 상황이 전개되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 그런데 여기서 서로의 상반된 입장이 ‘번쩍’ 부딪혔다. 한 시인은 관상학 차원에서 남자 보는 법을 설파했고, 또 한 지인은 마음이 통해야 한다는 심리적 차원에서 공방전을 벌인 것이다. 너무 열띤 연애학이었다. 서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진지하다 못해 속엣 말까지 끄집어내어 언쟁의 불씨를 튀긴다.

이게 아닌데, 꽃봉오리 열릴 듯 말 듯 아찔한 순간의 연애학을 초롱같이 기대했건만 나의 바람은 붕붕 뜨다가 만, 그야말로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버렸다. 한창 달달하고, 꼬시하던 맛이 졸지에 쓴맛으로 변해버렸다.

두 지인의 틈바구니에서 헛기침을 한다. 이 싸늘한 상황을 상큼하게, 아니면 유들유들하게라도 반전시켜야 하는데 도저히 머리가 회전하질 않는다. 세 명이 앉았으니 편 가르기도 못하고, 그렇다고 한쪽에 손을 들어 줄 수도 없다. ‘그래, 오늘은 끝장을 보이소, 치고 박고 싸우며 오해도 푸소’라며 부채질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스톱을 외치며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에라이 모르겠다. 둘이서 해결하든지, 아니면 그만 하라고 중재를 했다.

하루만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아도 궁금하고, 서로의 속내를 보이며 곰팡이 필세라, 먼지 앉을세라 이야기꽃 피우는 사이가 아니던가. 살다 보면 이런저런 말다툼이 어찌 없으랴.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르고 이상형이 다른데, 하물며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꼭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남자를 바라보는 서로의 ‘시력’ 차이에서 노는, 정말로 사소한 의견으로 빚어진 사건이었다.

우리의 정 나눔 두께가 결코 만만치는 않으리라 걸 안다. 분명 며칠 지나면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깔깔거릴 것이다. 아이는 싸우면서 크고, 어른은 다툼 뒤에 자신을 돌아보며 성장하지 않는가. 꼴난 연애학 들먹이다가 이게 뭐람. 연애학, 정답은 없다. 직접 현장실습을 해야만 답이 나올 것같다. 지인 댁의 따끈한 방바닥에 드러누워 마냥 행복해 했거늘. 연애에 대한 공부는 이렇게 따로국밥이 되었다.

별일 아닌 ‘순간의 언쟁’ 으로 냉기가 가득한 지금, 나는 버겁다. 두 지인 틈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눈치 보기 바쁘다. 마늘소스를 끼얹은 해파리냉채를 배가 부르도록 먹었건만 왜 이리 허기지는지. 딱 술 한 잔만 더 마셨으면 좋겠다.

우라질, 창문 밖 나뭇가지에 걸린 달은 왜 이리 밝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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