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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무당벌레 / 노정희

부흐고비 2020. 1. 19. 10:14

무당벌레 / 노정희


작은아이 눈이 동그래진다. 놀라면서도 신기해하는 눈빛을 감지했다. 무엇을 보고 그러냐고 물으니 우물쭈물 망설인다. 재차 물어보니 무당벌레를 보았다고 한다. 화초가 넌출거리는 베란다로 눈길을 돌리니 고개를 젓는다. 무당벌레가 방충망이 쳐진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기도 어렵겠지만 만약에 터를 잡았다면 화초 틈바구니가 아니겠는가. 아이의 눈은 화초가 아닌, 엄마인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카프카의 『변신』이 눈앞에 펼쳐졌다. 침대 속에 한 마리 흉측한 갑충이 가느다랗고 수많은 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카프카는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인간 자체의 잊어버린 존재와 상호간의 단절된 소통을 그렸다. 그런데 지금, 순간적으로 변한 그레고르의 안타까운 모습이 짙은 어둠으로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면 내 모습이 벌레로 변신했단 말인가. 얼른 손을 들여다보았다. 멀쩡했다. 몸통도 다리도 벌레의 모습이 아닌데 아이는 무엇을 보고 놀란 것일까. 당황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는 학교에 가야 한다며 서둘러 현관문을 나섰다. 아무리 편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아이의 눈빛을 지울 수가 없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아도 변한 모습을 찾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병원으로 향했다. 허리가 아파서 인상을 찡그리며 다리를 끄는 모습이 서글프다. 빌딩 사이를 지나며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순간, 유리창이 발목을 잡았다. 창 너머엔 웃음기만 없는 것이 아니라 표정이 잔뜩 굳은 아줌마가 노려보고 있었다. 내 얼굴이 저렇단 말인가.

웃어야겠다. 통증이 심해도 웃을 수 있는 연습을 해야겠다. 병원 문을 들어서며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었다. 기분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묻는 의사 선생님께 운다고 병이 빨리 낫는 것은 아니잖냐고 응수했다. 오늘은 부항을 뜬단다.

“에구, 부항 자국이 남들보다 심한 편이네요. 당분간 목욕탕에 가시지 불편하겠습니다.”

며칠에 한 번씩 뜨는 부항이지만 등 쪽이다 보니 자국이 심한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부항자국이 심하다는 말이 귀에 쟁쟁 감겼다. 집으로 오자마자 양면으로 거울을 배치하고 등 쪽을 비춰보았다. 아, 이럴 수가. 아침에 아이의 표정이 왜 그랬는지 이제야 감이 잡힌다. 작은아이는 구부정한 모습으로 샤워하고 나오는 엄마의 등을 보고 놀란 것이었다. 동그랗게 찍힌 부항 자국이, 검은 빛에 가까운 짙은 색깔이 아이의 눈에 무당벌레로 보였던 것이다.

그레고르, 그는 가족 부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느 날 눈을 뜨니 벌레로 변신해 있었다. 처음에는 함께해 주었던 가족들이 서서히 외면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바이올린 연주도 가까이서 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외롭게 죽어가도록 방치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한낱 판타지로 보았던 소설이다. 그런데 소외당하는 그레고르와 이기적인 가족의 군상을 보면서 소설 속 내용이 현실에 접합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유리창에 비친 표정 없는 아줌마나, 아이 눈에 비친 무당벌레는 소설이 아니었던 것이다.

몸이 굽으면 당연히 그림자도 굽어보인다. 안타깝지만 공공연히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은 차후의 문제다. 지금이 나에게는 두려운 평가기준이 된다. 다만 그 기준에서 조금아니마 위안을 받는 길은 스스로가 노력하는 것뿐이다. 굽은 등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어두운 인상은 바꿀 수 있지 않은가. 그나마 무당벌레로 보였던 게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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