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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구석 / 허효남

부흐고비 2020. 3. 11. 10:42

구석 / 허효남
2010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아이와 숨바꼭질을 한다. 술래인 엄마를 뒤로하며 녀석이 은신처를 찾아 나선다. 이 방 저 방 네모난 미로 사이를 달려가다 드디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녀석의 꼬리를 밟아간다. 도대체 못찾겠다고 엄살을 부리며 아들의 비밀 장소로 다가선다. 내 발소리가 가까워오자 녀석은 까르르르 웃음을 연발하면서 제가 먼저 장롱에서 뛰쳐나온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깔 숨이 넘어가도록 웃다가는 저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발끝에 4분음표를 달고 팔랑거리며 앞서가는 아이를 다시 뒤쫓는다. 이번에는 소파와 벽 사이에 난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아이는 평소에도 구석을 참 좋아했다. 택배 박스의 작은 배를 타고 해외 유람을 하고, 장난감 바구니를 엎어 자동차를 만들고는 전국 일주를 즐긴다. 그림책을 병풍처럼 세워 아늑한 자신만의 집을 만드는가 하면, 빨랫바구니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강아지 흉내 내기도 즐긴다. 열 달 동안 태 안에서 느끼던 작고 좁은 구석이 주는 아늑함 때문인지, 아니면 제 어미의 구석 사랑을 물려받은 유전적 습성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사실 나도 아들만큼이나 구석을 즐기는 편이다. 아니, 즐긴다기보다는 구석에 길들여져 이제는 구석을 내 운명인 양 받아들이고 산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나는 아들처럼 뛰어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수줍음이 많아 혼자 책을 보거나 그림을 그리며 조용히 놀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어디에서든 자연히 눈에 띄지 않아,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쩌다 동창생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면 지금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게다가 뭐 하나 빼어나게 잘하는 게 없다 보니 언제나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굳이 숨바꼭질을 즐기지 않아도 나는 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안전하게 숨어 있었다. 누군가의 인생에 잠시 스쳐가는 그림자였고,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는 관현악단 단원의 한 명에 불과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귀퉁이의 삶에 불평을 품어 보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내 운명이라 여겼다. 네모나고 각진 모서리에 닻을 내리고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며 조용히 지내는 것이 내 팔자려니 하면서 말이다.

이런 구석 습관이 몸에 익어서인지 어딜 가나 나는 구석부터 찾는 버릇이 생겼다.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할 때도 늘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지하철을 타면 항상 출입구 쪽의 끝자리부터 눈길이 간다. 어느 모임에서건 앞서서 감투 쓰기를 꺼리고, 그냥 머리수나 채워주는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한다.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나가도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보다는 조금 외지고 한적한 곳을 찾는다. 가운데 자리의 수선스러움을 피하고 싶고, 구석이 주는 익숙함이 편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공원에서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다가 불현듯 또 다른 구석에 있는 나를 만났다. 헌책과 곡식들, 자질구레한 잡동사니가 가득한 다락방에 어린 내가 있다. 심심하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 늘 그곳에 들어가서 나는 혼자놀이를 즐겼다. 고모와 삼촌들이 보던 낡은 책을 보다가 심심하면 엎드리고 앉아 다락방에 난 작은 창을 통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그들은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세상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비록 중심은 아니었지만 먼발치에 서서 전체적인 윤곽과 구도를 훑어 내리며, 구석자리였기에 가장 정확히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창밖을 내려다보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연극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구마당에는 고무줄놀이를 하는 친구들이 있고, 한창 힘겨루기를 벌이다 골목길 뒤로 퇴장하는 형과 동생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점차 무대가 어두워지면 해거름에 논둑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매일 똑같이 전개되는 일상의 연극에는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었다. 비중이 크든 작든 정해진 분량만큼의 대본으로 연기했고, 아무도 불평을 갖지 않았다. 그들은 다락방의 나를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구석자리의 나는 작은 풍경 하나하나를 무심히 흘려버릴 수 없었다. 암표를 구해 다락방에서 훔쳐보는 삶의 연극이기에 더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유유상종이라고나 할까. 본연의 내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 혹은 애처로움과 동정의 심정 때문이었을까. 언제나 구석진 자리에 있을 때가 많았던 내가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도 어쩌면 구석 팔자의 운명 때문인지도 모른다. 크고 화려하게 빛나서 무대의 중심에 서기보다는 단역이나 조연으로 제 몫을 해내는 아이들과 지내는 일은 스스로를 연마하는 과정이나 다름없다.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들꽃들이 모여 숲을 이루며, 그들이 없으면 온전한 숲과 들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늘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아니, 그것은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이다. 또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자 구석 인생에 대해 스스로가 거는 최면이기도 하다.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모서리와 모서리가 맞닿으며 나름의 모양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누구나 세상의 한가운데에 서고 싶어 하며, 뒷전으로 물러나 있는 것들보다는 항상 눈에 보이는 앞자리를 원한다. 구석구석의 작은 것들이 모여 세상의 큰 틀을 이루며, 때로는 외지고 후미진 구석이 세상을 그려내는 꼭짓점이 된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찬란하게 빛날 누군가의 삶을 위해 구석의 주춧돌이 필요하다면 나는 그 구석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갈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구석을 사랑하며 인생을 꾸며 갈 것이다.

아들 녀석이 다시 숨바꼭질을 하자고 손을 잡아 이끈다. 얼마나 구석이 좋았으면 양수가 터지고도 하루가 지나도록 나오지 않아 수술로 겨우 세상 구경을 한 아이다. 어느 구석을 그리도 찾아 헤매는지 모르겠다. 나도 따라나선다, 숨바꼭질 같은 인생에서 내가 정착할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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