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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마고자 / 윤오영

부흐고비 2020. 3. 22. 06:28

마고자1 / 윤오영2


​ 나는 마고자를 입을 때마다 한국 여성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한다. 남자의 의복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호사가 마고자다.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같은 다른 옷보다 더 값진 천을 사용한다. 또, 남자 옷에 패물이라면 마고자의 단추다. 마고자는 방한용이 아니요 모양새다. 방한용이라면 덧저고리가 있고 잘덧저고리도 있다. 화려하고 찬란한 무늬가 있는 비단 마고자나 솜둔 것은 촌스럽고 청초한 겹마고자가 원격이다. 그러기에 예전에 노인네가 겨울에 소탈하게 방한삼아 입으려면 그 대신에 약식인 반배를 입었던 것이다.

마고자는 섶이 알맞게 여며져야 하고, 섶귀가 날렵하고 예뻐야 한다. 섶이 조금만 벌어지거나 조금만 더 여며져도 표가 나고, 섶귀가 조금만 무디어도 청초한 맛이 사라진다. 깃은 직선에 가까워도 안 되고 , 너무 둥글어도 안 되며, 조금 더 파도 못쓰고, 조금 덜 파도 못쓴다. 안이 속으로 짝 붙으며 앞뒤가 상그럽게 돌아가야 하니, 깃 하나만 보아도 마고자는 솜씨를 몹시 타는 까다로운 옷이다.

마고자는 원래 중국의 마괘자에서 왔다 한다. 귀한 사람은 호사스러운 비단 마괘자를 입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청마괘자를 걸치고 다녔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마고자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고자는 마괘자와 비슷도 아니 한 딴 물건이다. 한복에는 안성맞춤으로 어울리는 옷이지만, 중국 옷에는 입을 수 없는, 우리의 독특한 옷이다.

그리고 그 마름새나 모양새가 한국 여인의 독특한 안목과 솜씨를 제일 잘 나타내는 옷이다. 그 모양새는 단아하고 아취가 있으며, 그 솜씨는 섬세하고 교묘하다. 우리 여성들은 실로 오랜 세월을 두고 이어받아 온 안목과 솜씨를 지니고 있던 까닭에, 어느 나라 옷을 들여오든지 그 안목과 그 솜씨로 제게 맞는 제 옷을 지어냈던 것이다. 만일, 우리 여인들에게 이런 전통이 없었던들, 나는 오늘 이 좋은 마고자를 입지 못할 것이다.

문화의 모든 면이 다 이렇다. 전통적인 안목과 전통적인 솜씨가 있으면 남의 문화가 아무리 거세게 밀려든다 할지라도 이를 고쳐서 새로운 제 문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송자에서 고려의 비취색이 나오고, 고전 금석문에서 추사체가 탄생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예전엔 남의 문물이 해동에 들어오면 해동 문물로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탱자가 아니라 진주였다. 그런데 근래에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남의 것이 들어오면 탱자가 될 뿐 아니라, 내 귤까지 탱자가 되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1. 마고자는 저고리 위에 입는 덧저고리이며 남녀공용이다. 마고자의 양식은 저고리와는 달리 앞이 나란히 트이고 쌍깃에 동정이 있으며 길이는 길어 허리까지 내려온다. 이 마고자의 겉은 청색 도류운보문단(挑榴雲寶文緞)이며 안은 홍색명주이고 쌍깃에 흰색동정을 달았으며 앞자락이 뒤보다 8cm가량 짧은 남자용 마고자다. [본문으로]
  2. 尹五榮(1907-1976): 수필가. 서울생. 보성교보 교직생활, 1959년 [현대문학]에 수필 ‘측상락’ 발표 후 다수 창작.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수필의 창작과 이론 전개에 힘을 씀. 정교한 문장으로 사물을 고전적 세계와 접목. 수필집 : [고독의 반추](1974) {곶감과 수필}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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