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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잡초와 힘겨루기 / 최복희

부흐고비 2020. 3. 31. 09:13

잡초와 힘겨루기 / 최복희



일반적으로 잡초는 불필요한 존재로 여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봄부터 뜰에 돋아나는 잡초를 모두 뽑아버리게 되는데, 고통의 겨울을 인내하고 땅을 헤집고 올라온 여린 풀포기를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거르는 때도 있다.

장마가 시작되면 풀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쑥쑥 자라 장마가 끝난 후에 넓은 뜰은 온통 잡초밭이 된다.

잡초 중에서도 내가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상대는 며느리밑씻개이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말하기도 듣기도 거북한 며느리밑씻개인가. 줄기에는 자디잔 가시가 있어 피부에 닿기가 무섭게 할퀸다. 설마 이런 풀로 뒤를 닦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예전 며느리들의 한이 서려 있어서인지 생명력이 끈질기다. 이 풀이 무성하게 자라 뒤란 장독대 위를 덮으면 소름이 돋는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약육강식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 또한 그들 속의 한 존재로서 잡초와 힘겨루기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잡초와 대결해야겠다고 각오를 하면 힘이 생긴다. 며느리밑씻개부터 낫으로 쳐 내리는 순간 잘려진 줄기가 내 목에 달라붙었다.

“앗 따가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면서 낫을 내던졌다. 조심조심 줄기를 떼어냈지만 이미 내 목과 팔에 할퀸 자국이 남은 뒤다. 오기가 났다. 낫을 숫돌에 갈아 날을 세우고 다시 걷어냈다. 키 작은 풀들도 만만치 않다. 호미로 몇 번씩 파헤쳐야 뽑힐 정도로 뿌리가 깊이 박혀 있어 잡초와 힘겨루기를 하고 나면 언제나 지쳐버린다.

나를 지켜보던 이웃들은 제초제를 뿌리면 간단할 텐데 왜 생고생을 하느냐고 혀를 찬다. 나도 시골에서 산 지가 몇 해인데 그 방법을 어찌 모르겠는가. 당장 편리한 것만 생각하고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잡초를 제거한다고 많은 것을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제초제는 땅에 스며들면서 식물은 물론 흙 속에 유익한 미생물까지 서서히 죽여 버려 주위의 땅까지 황폐화시킨다. 인간은 필요에 의해 약을 개발하여 잡초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에는 무감각하다. 법규나 체제는 사람의 노력으로 쉽게 바꿀 수 있지만 완전히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려면 그것이 만들어진 시간만큼 필요하다니 심각한 일이 아닌가. 문명의 이기로 이미 여러 면에서 자연 파괴는 멈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되도록 그 파괴의 속도를 늦춰야 하리라.

나는 내가 살고 있는 터만이라도 공해가 덜한 땅으로 만들고 싶다. 힘이 좀 들더라도 내 자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터전으로 남기고 싶어서이다.

시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뜰에 나는 잡초 제거는 어머님 몫이었다. 어머님은 그 일을 보람으로 알고 사셨는데 돌아가시자 결국 뜰과 텃밭 손질은 내 몫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내 일이 많아졌는데도 자연 그대로 살기를 원하는 남편은 발목까지 쌓이는 눈도 낙엽도 쓸지 말라고 한다. 봄이면 풀꽃들을 캐다 마당에 질서 없이 심어 놓는다.

남편은 꽃을 보려고 한다지만 나는 잡초로 보일 뿐이다. 나의 고충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을 흉이라도 볼라치면 아버님은 ‘충수 아범은 참사람’이라고 하신다. 자연을 사랑하는 당신 아들이 믿음직스러우신 게다. 나라고 왜 그걸 모르겠는가. 하루라도 잡초와 힘을 겨루지 않고는 뜰도 밭도 풀밭이 되어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일을 마치고 거실 창가에서 차를 마시며 밖을 내다보았다. 속이 후련하도록 뜰이 훤해졌다. 풀 넝쿨에 묶여 숨도 제대로 못 쉬던 사철나무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있으며, 봉숭아꽃 무리도 작은 씨주머니를 만들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잡초에 묻혀서 기가 죽어 있던 채송화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알록달록한 얼굴을 비비는 모습이 앙증스럽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뜰의 전경은 수채화 한 폭이다.

나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내가 취해야 할 일을 배워가고 있다. 풀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 가치가 다르다. 산과 들에 풀들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할까. 그것들은 꽃을 피워 벌과 나비들에게 먹이를, 사람에게는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움을 제공해 준다. 뜰의 잡초도 사람보다 먼저 자리 잡고 있었거늘 쓰레기더미에서 시들어가는 잡초를 보니 미안하다.

강자에게 억울하게 짓밟히고 천대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삶을 흔히 잡초에 비유하기도 한다. 어느 시인은 권력 앞에 힘없는 민생을 풀로 표현했고, 권력에 항거하며 투쟁하는 이들은 민초를 대변하는 풀잎 노래를 부른다. 잡초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인 것을, 쓸모없다고 여기던 잡초에서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몇 군데 상처가 나서 쓰리고 손도 옷도 엉망이 되었으나 잡초와 힘 겨루며 자연 속에 사는 것, 이 또한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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