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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미장원에서 / 노현희

부흐고비 2020. 4. 19. 21:53

미장원에서 / 노현희
​ 1998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 미장원으로 가는 길은 항상 마음이 설레인다. 달라진 머리모양을 상상하고, 내 이미지와 맞을 것인가를 염려하고, 미용사가 그런 내 마음을 헤아려 줄 것인가 등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꼬리는 미용실 문을 밀치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계속된다.

​ 차례를 기다리며 잡지를 뒤적이는 내게 한 잔의 커피가 건네진다. 퍼머약 냄새 사이로 간간히 풍겨나는 커피 향에 젖어드는 나를 알아챘나보다. 미용사의 그런 센스가 머리를 맡기려는 내 마음의 부담을 덜어 준다. 잡지에는 멋스럽고 우아한 머리 모양새가 많이 나와 있다. 비비안 리 머리든, 햅번 머리든, 황진이 머리든 내게 어울리는 모양새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커피는 당신과 마시는 커피입니다'라는 광고를 본다.

​ 당신과 마시는 커피, 그것은 언제나 추억을 만든다. 사랑하는 이와 마주한 한 모금의 그윽한 커피, 그리고 바람 부는 거리에서 이별의 쓰라림을 삼키는 자판기 커피, 이웃과의 수다 속에 찰랑거리는 커피,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은은한 내음을 음미하며 남편과 마시는 느긋한 커피, 그리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나 혼자만의 커피. 커피는 그렇게 사람과 사연을 달고 다닌다. 오늘, 미장원에서의 커피는 호감 가는 세일즈맨이다.

​ 깔끔하고 발랄한 머리모양을 좋아하는 면이었는데 요즘엔 우아한 분위기에 더 마음이 끌린다. 그게 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쑥스럽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모양새부터 품위를 갖추고 싶은 건 어쩐 일일까. 긴 치마도 입어보고 헐렁한 남방 대신 블라우스로 멋을 내보기도 한다. 경쾌하고 젊은 디자인이 내게 겉돌고 있음을 느끼고부터 나는 블라우스를 찾게 된 것일까. 흰 머리카락이 늘어가는 남편을 보면서도 애써 젊은 티를 내려는 내가 민망스러울 때가 있다. 그는 순리대로 살기를 고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중후함보다 순수해 보이는 생머리 모양을 미용사에게 부탁하고 만다. 아직은 남편에게 딸들과 함께 가시내같은 모습이고 싶다.

​ 미장원 바닥에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다. 방금까지 내 신체의 일부였는데 쓰레기가 되어 쓸려가는 모습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생명도 그런 것일까.

​ 창밖으로 부는 바람이 황량한 것은 쌀쌀해진 날씨 탓만은 아니리라. 내 아들은 머리를 자르고 온 날, 눈물을 찍으며 나를 원망했다. 기르기까지 그 애들이 머리카락에 쏟은 애정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나는 단정함을 내세워 아이들을 미장원으로 내몰았다. 눈물까지 보이며 아쉬워하는 것은 긴 머리가 곧 멋이라는 그들의 편견 때문만은 아니었나보다. 자신의 일부를 떼낸 안타까운 미련이 컸던 모양이다.

​ 예전엔 머리카락 한 올조차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하여 소중히 다루었다지만, 요즘에는 삭발로써 제 의지를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기도 한다. 삭발한 그들의 모습은 비장하고 살벌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삭발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삭발한 강수연의 모습이 그랬고, 학창 시절에 내가 따랐던 스님의 모습도 그랬다.

​ 서클 지도법사였던 스님은 우리와 어울려 곧잘 탁구를 쳤고, 음악을 사랑하고 난을 즐겨 기르셨다. 스님은 떠나면서 기르던 난을 내게 주셨다. 은은하게 배어오는 난의 향기는 스님의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 스님은 느닷없이 교정에 나타나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잔디를 뽑아 물방울을 따먹기 게임을 하기도 했다. 직은 물방울을 따오기 위해 서로 얼굴을 가까이 했을 때에 느꼈던 숨막힘을 생각하면 아직 얼굴이 붉어진다. 파란 하늘과 더불어 넓은 잔디밭에서 승복에 싸인 사람은 이미 내겐 스님이 아니었는지 모른다.

​ 남자 법우들은 스님의 취미가 승같지 않다며 은근히 공격을 했고, 절에 오래 남을 것 같지 않다며 여자 법우들에게 경계심을 유도했다. 어느 날,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는 인사 끝에 산 속엔 밤이 참 빨리 오는 것 같다고 했다. 곁에 있던 남자 법우는 산을 내려오면서 내게, 그 말은 색깔이 있었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엔 정말 스님의 머리카락이 길어진 것처럼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남자 법우들조차 스님을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려하지 않았다. 스님과 어느 정도 정이 들 무렵 스님은 떠났고, 나는 한동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법당에 앉아 타오르는 향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이끌림으로 뒤돌아보니 한 무리의 수국 속에 머리를 숙여 얼굴을 묻고 있는 스님이 보였다.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꽃 속에 잠긴 삭발의 머리는 너무나도 생경스러웠다. 모두들 좌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밖으로 달려 나가 스님을 짧게 불렀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스님의 모습은 그대로 내게 각인되어 그 후 그리움이 되고 우수가 되었다.

​ 나는 그 어떤 샴푸로도 대신할 수 없는 향기를 삭발의 머리에서 느꼈다. 지금도 수국의 무리를 보면 빗방울이 맺혀 있는 것만 같다. 수국은 환한 웃음 뒤로 애조를 띠고 있었고, 무리를 이루어 꽃을 피웠으나 향기는 은은했다. 그건 우리 앞에서 당당히 부처님의 설법을 전하는 스님의 외로운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또한 그런 어우러진 향기가 우리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내게 수국은 그렇게 승복의 빛깔을 느끼게 한다.

​ 그날 우리 몇몇은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 앉았고, 스님은 비가 내리는 바다에 눈길을 주기도 하며 간간히 웃으셨다. 그러나 나는 법우들의 이야기를 챙겨들을 수 없을 정도로 허둥대고 있었다. 그리고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잔을 보며 스님의 옷에서 김이 오른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보이는 게 모두 스님의 형체로 느껴졌다.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며 스님은 난이 잘 크는가 물으셨다. 나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난은 내 책상 위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 가끔 삭발한 내 모습을 상상할 때가 있다. 그리고 스님처럼 사람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비구니일 수가 있을까 생각한다. 그런 내가 우스워 슬쩍 부처님을 올려다보면 그분도 웃고 계셨다. 승을 승으로 보지 못하는 나의 미성숙조차 그분 앞에서는 응석이 되어 버린다. 마음대로 어린애가 되어도 좋았고 어른이 되어도 괜찮았다. 나는 그분의 어리석은 중생이므로…. 그러나 지금, 너무나 먼 시간 속을 지나온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며 상념의 꼬리를 붙잡고 있었던 지난밤에는 비가 많이도 내렸다.

​ 오랜 시간동안 공들인 미용사의 솜씨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에 드러난 내 모습은 마음에 그다지 들지 않았다. 언제나 그러하듯 상상과는 빗나간 낯선 내 모습이다. 그 섭섭함을 감추기 힘들어 수고하라며 나오는 내 걸음은 급하다. 혹 나는 풋풋한 스무 살 시절의 내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하여 커피 향과 음악을 찾아 거리를 헤매던 그 시절의 낭만과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나는 안다. 낯선 내 모습이 마치 미용사의 잘못이기라도 하듯 다음엔 다른 미용실을 또 찾아갈 것임을. 그것이 부질없는 기대라 할지라도 내겐 때때로 삶의 활력소가 되고 환기구가 되기도 한다.

​ 스트레이트 퍼머를 하느라 머리카락을 미용기구에 붙여 커다란 원모양의 머리를 한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처럼 도도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미완성인 그 모습이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완성을 향해 다가가는 미완의 행위들, 그것에서 삶의 아름다움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혀끝에 맴도는 커피향의 여운처럼 삶의 향기도 그런 여운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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