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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으로 된 5톤 트럭에 닭들이 한가득 실려 간다. 닭장 문은 바깥쪽으로 단단히 잠겨 있다. 농장 주인이 닭장 트럭에 마구 집어 던졌을 때의 모습인 양, 꺾인 날갯죽지를 미처 정리하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좁은 철장에 꽉 끼어 있다. 사력을 다해 파닥거려 보지만, 움직이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앞으로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려는지, 불안한 차체의 흔들림과 함께 이런 갑작스런 외출이 그저 낯설고 황망할 뿐이다.

트럭이 비탈길을 휘돌아간다. 중심을 잃을 때마다 시간의 속도를 발톱으로 제어해보려는 닭들은 간헐적인 신음소리를 낸다. 하지만 속도는 잡지 못하고 애꿎게 뽑힌 제 몸의 겉 털만 철망 사이에 어설프게 꽂힌다.

위로 치솟아 오르려 해도 머리를 짓누르는 천정과, 안간힘을 써도 날개를 펼 수 없는 좁은 공간 속의 그들은 다시 이 길을 되돌아 올 것이라 애써 믿으려는 눈빛들이다. 무작정 달리는 트럭은 멈출 기미가 없고, 전래동화 속 의붓어미가 버린 아이들처럼 집으로 돌아갈 길을 표시라도 해 두려는 듯, 닭들은 제 몸의 깃털을 뽑아 허공에 날려보기도 한다.

깃털 중의 하나가 바람에 날려 트럭을 뒤따르던 내 차 앞 유리창에 착 달라붙는다. 무심코 날아든 깃털을 윈도우 브러쉬로 밀어 떨쳐내 버릴까하다가 그냥 그대로 두었다. 아주 재미있었던 추억 하나가 머릿속에 반짝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귀한 손님이 집에 오시거나 제사가 있는 날은 마당에 풀어두었던 닭을 잡았다. 부엌에서 눈코 뜰 쌔 없이 바빴던 어머니 대신, 우리 남매는 닭 잡는 일을 도맡아야 했다. 다른 때는 몰라도 제사가 있는 날은 일부러 나이 먹은 닭을 고른다. 신성한 제사에 쓰일 제물이라 닭 울음소리가 길고, 몸집이 통통한 놈이 적격인데, 조건에 걸맞은 늙은 시골 닭을 포획하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닭을 쫒다가 지쳐, 마당 한복판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헐떡거린 때도 많았다. 어떤 놈은 염장이라도 지를 듯 마당 저 편 대추나무 위로 파드득 날아올라 말 그대로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적도 있었다. 잠을 자려고 횃대에 오리기 위해 잠시 날아오르는 것은 봤지만 장장 몇 미터를 재빠른 속도로 날아 나무 위에 안착하는 것을 보니 그것이 닭인지 새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어찌되었건 마당을 벗어나지 못한 닭은 결국 우리들 손에 잡히고 마는데 정작 문제는, 살아서 잡힌 그놈의 닭 모가지를 비틀어 모진 생명을 끊어야 하는 고역이 어린 마음에 여간 심란한 것이 아니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려고 하면 생명체의 목 부분에서 전해져오는 뜨뜻한 온기와 묘한 느낌의 전율에 흠칫 놀라, 잡았던 놈을 순식간에 놓쳐버리기도 했다. 그게 싫어서 잔머리를 굴려본 것이 닭의 목을 발로 지그시 누른 다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간절한 눈길을 무시하고 털을 먼저 뽑는 것이었다.

닭은 온기가 남아 있을 때 털을 제거해야 고생을 덜한다. 숨이 끊겨 체온이 떨어지면 털이 잘 뽑히지 않아 손톱이 빠질 듯한 고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닭들을 여러 차례 잡다보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숨이 넘어간다는 것을 감으로 알게 되는 경지에 이른다. 처음엔 닭의 빨간 눈동자에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을 때가 바로 그때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닭도 늙으며 여우가 되는 것인가. 눈꺼풀이 슬그머니 닫히는 것을 보고 손아귀 힘을 느슨하게 푸는 순간, 그만 낭패를 당하고 만다. 죽은 척하고 있던 놈이 잠시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서 잽싸게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이런 허망한 꼴을 몇 번 겪고 나면 절대 속지 않는다며 가만히 모가지를 밟고 있던 발을 들어 닭 몸통을 툭툭 건드려서 반응 여부를 재차 확인한다. 누가 봐도 확실히 숨이 끊어진 닭을 땅바닥에 놔 둔 채, 미처 제거하지 못한 잔털을 마저 뽑으려고 뜨거운 물을 가지러 가는데, 웬 걸! 뒤쪽에서 어떤 물체가 바람을 일으키며 부리나케 달아나는 소리가 들린다. 불길한 예감에 고개를 홱 돌려보니 그곳에 낯익은 놈이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나체 질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은 듯 널브러져 있던 그놈의 달구새끼가 도망치는 모습은 하도 웃겨서 배꼽이 빠져 달아날 것처럼 가관이었다. 도망을 가려면 들입다 내뺄 것이지, 풋내기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기까지 하는데 털이 홀라당 벗겨진 몸뚱어리의 닭이 마당을 질주하는 모습이라니…….

탈주범을 잡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면 자리 잘못잡고 앉은 양철대야가 오빠의 발에 채여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당 한 쪽으로 내팽개쳐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곤욕을 치르고 있는 우리 남매를 보고서도 동네 사람들은 누구 하나 도와줄 생각은 않고 박장대소하며 구경들만 하고 있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결국 생포된 나체 닭은, 제사상에서 제물로서의 도리를 다한 뒤, 잔뜩 독이 오른 우리들에게 오동통한 살점을 뜯기며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데, 지금 트럭에 실려 도계장에 실려가는 저 수많은 닭들을 보니, 그 옛날 우리 집 마당에서 알몸 시위를 감행한 여우같은 늙은 닭이 오늘 따라 몹시도 그리워지는 것이다.

짐작컨대 닭장 트럭은 머지않아 낯선 도계장에 그들을 함부로 부려놓을 것이다. 꽤 오래된 기억이지만 도계장에서 닭 잡는 광경을 지켜본 적이 있다. 그 많은 닭들을 한꺼번에 도살하는 과정이 시골 마당의 늙은 닭 한 마리 잡을 때보다 훨씬 빠르고 조용했다. 닭들은 철옹성 같은 닭장을 잠시 벗어나는가 싶다가 외마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회전기계에 거꾸로 매달리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공장 노동자들은 정해진 시스템의 순서에 따라 스위치를 누르고 닭들을 기절시켜 방혈한 다음, 뜨거운 열기로 털을 벗겨내고 내장을 송두리째 꺼내는가 하면 급기야는 닭발과 목을 제거하고 생뚱맞게 몸뚱이만 달랑 남겨 놓을 것이다. 무게별로 선별한 기계설비의 손을 빌어 개별 포장까지 완벽히 마친 다음, 냉동 탑차에 실려 주문한 곳으로 배송시키면 그들의 하루는 마무리될 것이고 도계장엔 어둠과 정적만이 남을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두 갈래 길이다. 닭장 트럭은 왼쪽 길로, 나는 오른 쪽 길로 방향을 잡고 다시 달린다. 어찌 보면 층층의 닭장에 갇힌 초췌한 닭들과, 갑갑한 도심의 아파트 속에 사는 우리네 삶의 모습들이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저들은 한번이라도 날아 보았던 기억이 있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훨훨 날아오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도 넓은 세상에 나가 내 꿈을 당당하게 펼쳐 보이고 실을 때가 있었다. 어둡고 고독한 알 속에서 아직 단단해지지 않은 부리지만, 사력을 다해 껍질을 쪼아 마침내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화려한 변신을 할 것이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정돈되지 않은 너무 많은 생각과,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들에 대한 수많은 걱정 때문에 스스로를 단단한 알 속에 가둬 둔 시간이 너무 길었었다. 어쩌면 그 긴 시간으로 인해 닭들처럼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어사는 아파트 속,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나, 어찌된 일인지 꿈을 키워주기보다는 일찌감치 꿈을 버리라고 권유하는 듯한 이상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꿈은 독보다 더 위험한 것이라 했던가. 전통과 질서를 파괴하고 관리자를 피곤하게 한다는 이유로 사회는 언제부턴가 우리가 꿈꾸는 것에 대하여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젠 내가 왜 꿈 꿀 수 없는지, 왜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조차 갖지 않게 되었다. 나의 미래보다 자식들의 미래와 소망을 더 걱정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어릴 적부터 품어왔던 꿈에 대한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닭장 속의 그들처럼 나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고정된 틀에 맞춰 누군가가 원하는 삶을 대신 살아온 것은 아니었던가. 어디론가 팔려가는 닭들과 같이 좁은 공간에 갇힌 채, 절대 권력자인 트럭기사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나약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닐까.

닭장트럭 뒤를 따랐던 그날 밤, 나는 수많은 닭들에게 포위되어 그들의 단단한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에 대책없이 전방위 공격을 당하는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를 공격한 닭들은 어쩌면 날개가 있음에도 날지 못하는, 아니 날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나 자신의 무능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그렇듯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꿈에서 깨어난 새벽, 무슨 일인지 내 양쪽 겨드랑이가 몹시 가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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