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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고요한 우물 / 김귀선

부흐고비 2020. 7. 2. 22:44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어요. 신령스러움이 느껴졌지요. 세상의 가장 복잡한 번뇌와 가슴 안쪽 고갱이의 사랑을 버무려 보석을 만든다면 아마 그런 빛깔이 아닐까 싶더군요. 졸여지고 졸여진 유장한 세월이 두 개의 눈에서 고요로 깊었어요. 외로움이나 그리움의 포물선을 중용으로 벼린 달관의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친정에 들를 때였지요. 동네 입구 당산나무 아래 구순의 노인이 차창으로 인사하는 나를 올려다보며 걱정했답니다. 납작한 돌을 괴고 앉은 채로요. 차고 물맛이 좋은 방앗간 집 우물이 곧 메워질 것이라는 겁니다. 뜬금없었지요. 동네 우물 없어진 지가 언제인데…….

골짜기 깊숙이 들어앉은 탓에 오랫동안 외면 받았던 친정 동네가 요즘은 전원주택지로 인기가 치솟고 있어요. 외지인들이 들어와 헌집을 부수고 높은 곳엔 축대를 쌓느라 여기저기엔 굴착기 소리로 시끌벅적하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의 궁둥이를 비틀며 동네입구를 드나들었었는데 길이 넓어지니 시원스레 오가기는 좋아졌지요. 하지만, 동네 뒤쪽 골목길은 담장에 갇히거나 장비에 파헤쳐져 흔적마저 사라졌어요.

새 주인은 땅을 사자마자 측량부터 했어요. 지적도에 맞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울을 치는 바람에 일부 골목은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아련히 남아 있답니다. 지적도에는 없었던 길이었겠지요. 스스럼없이 내 땅을 뚝 떼어 골목으로 내어주며 어울려 살았던 고향 어른들이 문득 그리워집니다. 뒷산으로 오르던 반질반질했던 길도 한참 전에 새 주인의 울타리에 갇혀버려 생전의 팔순 엄마는 뒷골 밭을 오가려면 좁은 도랑 턱을 아슬아슬하게 딛고 다녀야했습니다. 걸어가는 그 순간만이 길일뿐, 내가 길이라 생각했던 그 많던 길은 관념 속의 허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고향에 대한 추억은 이제 몇몇 노인의 지팡이에 매달려 동네를 어슬렁거릴 뿐, 익숙했던 친정 동네는 낯선 이들의 새 보금자리로 빠르게 메워지고 있지요.

평생을 오르내렸던 골목은 물론이고 긴 시간 함께했던 이웃집들이 거침없이 뭉개지는 모습을 곱다시 지켜봐야했던 노인은 섭섭함이 쌓였겠지요. 매끄럽게 흘러가는 세월이라 이런저런 기억도 미끄러져 가버렸으면 좋겠는데,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처럼 가슴속엔 서운함이 펄럭거렸나 봅니다. 허전함에 푹 불린 말인 듯 그의 평소 웅얼거리는 음성엔 공허함이 묻어있었어요. 조광지처는 물론이고 불알친구에다 손아랫사람들까지 먼 길 앞세운 몸이고 보면 당신 앞의 모든 것들이 무참히 사라져 버리는 걸로 보였겠지요. 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방안에서만 지낸다는 소문을 노인정에서 들었는데 그의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가끔씩 정신 줄까지 놓는다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노인과 보냈던 시간이 몰려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친정에 들를 때면 아버지의 친구였던 그에게 아버지인양 찾아갔었지요. 막걸리라도 들고 가면 그는 그 자리에서 상에 차려 잔에 철철 넘치게 부어서는 제게 권했어요. 지난봄엔 묵정밭에서 민들레도 같이 캤답니다. 납작하게 땅에 붙은 민들레를 그가 곡괭이로 파 뒤집으면 저는 민들레뿌리의 흙을 털어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었지요. 어디든 농약을 쳐대니 맘 놓고 캐먹을 수도 없다면서 곡괭이질이 힘에 부치는지 숨을 몰아가며 푸념을 하더군요. 다 바뀌어 간다고. 그럴 때마다 노인은 지난 시절이 그리운 듯 옛 이야기를 풀어놨어요. 아버지에게서도 듣지 못했던 기구한 사연도 얘기해 주더군요. 마치 시간의 우물에서 두레박질하듯 노인은 이야기를 퍼내어주었지요. 그것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고향 동네 특유의 맛이었어요. 이제 그 시간마저도 졸여 눈 속으로 담아버린 듯 요즘 그는 말이 없습니다.

“세월이 하는 일인데 우짜겠노.”

어쩌다 하는 말의 곡선은 무심함의 끝자락에서 머무는 듯했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그 답을 오묘한 눈 속에 담아둔 채요. 마치 그 신비함의 일부가 소리로 흘러나온 듯 음성은 깊었어요. 바가지로 퍼낼 수 있는 얕은 우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중후함 같은 것이었지요.

그런 느낌은 제가 어릴 적 우물 안을 볼 때와 같았어요.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 얼굴을 들이밀면 땅 속의 어떤 존재가 눈을 빤히 뜨고 나를 뚫어지라 올려다보는 것 같아 흠칫 놀랐지요. 그 존재는 잠망경을 통해 땅 위의 일들을 죄다 훔쳐보는 것 같았어요. 우물속의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흡입해 갈 것 같아 근처에만 가도 무섬증이 일었어요. 땅속 깊숙이 닿아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은 어떤 세계와 연결된 것이라 여겨졌답니다. 사람이 죽으면 땅속으로 가는 것도 그 우물 속 존재와 무관하지 않게 다가오더군요. 그 움푹한 노인의 심오한 눈빛을 보는 순간, 사후세계로 이어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달관의 그는 지금 두 세계를 넘나들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답니다.

노거수를 올려다 볼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친정 마을 당산나무를 쳐다볼 때도 그랬지요. 그 어둑하고 깊숙한 나무속이 마치 우물처럼 보이더군요. 허공을 판 우물로요. 둥그스름한 까치집이 두레박 같았어요. 피라미인양 참새가 나뭇가지를 재바르게 오가기도 했고요. 그래서 나무에 바람이 들면 물소리가 나나 봐요. ‘쏴아’ 물이 쓸려가는 소리요. 그러다 언젠가는 당산나무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겠지요. 노인은 방앗간 집 우물이 메워질 거라 아쉬워했지만, 제겐 사라지는 모든 것이 메워지는 거로 보였어요.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우물 하나 파는 일이 아닐까요. 사람을 두고 속이 깊다느니 속이 얕다느니 하는 것을 봐도 우물과 연관이 있는 듯해요. 신만이 가늠할 수 있는 깊이, 달관의 경지인 듯한 심오한 물빛을 그날 보았지요. 그렁그렁한 두 눈의 깊숙하면서도 온화하고 무거운 것 같으면서도 편안한 모습을요.

눈을 감는 다는 것은 허공의 우물 하나가 소리 없이 메워지는 것이었어요. 머지않아 메워질 고요한 우물 하나, 그렇게 조용히 당산나무 아래 앉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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