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숫돌 / 박영순

부흐고비 2020. 7. 31. 08:56

2020 흑구문학상 수상작

칼을 빼 들어 본다. 칼의 무딘 정도를 손끝으로 직감한다. 칼날이 무뎌진 걸 느끼면 칼 가는 줄로 쓱싹 대충 갈아 사용하는 나이다. 그러나 나의 옛집에서는 매 식사 때마다 찬거리를 썰고 다졌던 칼이 도마 위에서 재료들을 미끄러뜨리면 칼을 들고 장독대로 향해 걸어 나가셨던 엄마가 계셨다.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항아리 뚜껑 하나를 열어 거꾸로 덮어놓으시고는 뚜껑 테두리에 칼날을 쓱싹 문질러 갈아 쓰셨다. 칼날이 더 무디어지면 툇마루 아래 놓아둔 우리 집의 숫돌이 등장하였다. 숫돌은 아버지의 전유물처럼 칼이나 낫을 갈 때만 우리들 앞에 놓여졌다. 아버지의 수고로 칼날은 시퍼렇게 번뜩였다. 그런 칼날을 받아 보며 긴장하여 떨던 엄마는 자주 칼날에 베이셨다. “조금만 덜 갈아 주면 될 텐데, 소 잡을 일도 없는 데 너무 칼을 날카롭게 갈았네.” 엄마는 부엌에서 혼잣말로 중얼중얼하시며 그 번뜩이는 칼로 음식을 장만하셨다.

연한 회색빛 숫돌이었다. 아버지는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칼들을 거두어 숫돌에 갈아 주셨다. 주로 명절과 제삿날 즈음에 갈아 주신 걸 기억한다. 어린 내 눈에는 그 일로 조상에 대한 예를 다 하시는 아버지로 보였다. 바쁜 엄마의 일손에 비하면 아버지는 별다른 수고 없이 칼만 갈아 주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버지의 칼 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런 칼 가는 일이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어떤 예보다도 진지한 아버지의 칼 가는 모습은 사뭇 어느 제관의 정성스런 예처럼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칼 가는 날은 주로 오전 중에 이루어졌다. 툇마루 아래 놓여진 숫돌과 그 틀을 들고나오실 적부터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벽돌로 된 담 아래 마당 한 켠에 자리를 만들고 숫돌을 틀에 끼우셨다. 곧 펌프질로 새로 퍼 올린 물을 대야에 받아 그 안에 지푸라기나 새끼줄 서너 가닥을 담그셨다. 그렇게 칼을 갈 준비가 다 되시면 옷을 여미시고 나지막한 나무 의자에 앉으셨고, 여러 개의 칼날들을 점검하시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시곤 하셨다. 평소 같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셨을 텐데 왠지 칼 가는 그 시간만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의 위엄으로부터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동정만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칼날의 무딘 방향을 살펴보시는 아버지의 눈에서 부터 숫돌에다 한 손으로 물을 한 줌 뿌려 주시는 그 한 손으로까지 나의 눈길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드디어 한 칼이 숫돌에 쓱쓱 갈리기 시작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시작된 칼갈이로 아버지의 오그라진 등처럼 이미 쑥 패어진 숫돌에 칼은 숙연하게 갈리고 있었다. 숫돌은 아버지의 손길에 의해 조금씩 더 마모되어 갔다. 칼을 가시는 아버지의 등 뒤를 보며 아버지의 살아온 날들이 그려졌다. 당신의 육남매 농사도 만만치 않았지만 먹고 살아내야 하는 농사일도 점점 힘이 버겁기만 하셨던 그 뒷모습이 서글피 떠올랐다. 그렇게 아버지의 지나간 시간들도 숫돌처럼 패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칼을 갈 때마다 조상들에게 우리 육남매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올려 주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후로 아버지의 칼 가는 소리는 들을 적마다 아버지의 애환을 갈아내는 애절함으로 다가왔다. 어느 정도 칼을 갈아 놓으시면 칼날을 만져보시고 이쪽, 저쪽 고개를 돌려가며 바라보시다 한참 상념에 젖곤 하셨다. 또 다시 칼을 숫돌에 놓고 갈기 시작할 때는 아버지의 아픈 시간들이 갈려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하셨을 것이다. 해마다 점점 기울어져 가는 집안을 다독거려 보려고 애썼지만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던 그 마음을 누가 알아주랴. 칼날처럼 반짝이는 세상을 꿈꾸어도 보았지만 아버지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어린 내가 아버지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말없이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아버지의 손에서 다 갈렸다 싶은 칼은 대야의 물속에 담가져 있던 새끼줄을 들어 올려 공중에서 한 번 베어 보셨다. 새끼줄이 단번에 쓱 두 동강이가 나 마당 안 쪽으로 달아났다. 칼날은 예리하게 잘 갈렸던 것이다. 그렇게 흡족하게 갈린 칼들은 부엌으로 옮겨졌다. 그 칼로 썰고 다듬고 하여 만들어낸 음식을 명절 차례 상과 제삿날에 고이 올려놓았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숫돌에 칼을 갈아 주실 때의 아버지 마음은 참회의 시간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아버지와 우리들의 삶에서 일어났던 지난날의 흠 있던 시간들을 조용히 갈아 없애 보려는 순간이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식구들의 앞날들이 잘 열리도록 마음으로 빌며 꿇으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절절하게 기억되어 다가온다. 아마도 아버지의 칼 가는 시간은 무념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지 알 것만 같은 세월에 이른 나이기에 그 마음 애련하기만 하다. 당신에게 남아 있던 아픔도 날카로운 칼로 잘라 버리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지나간 시간들을 원망하기보다 감사로 바꾸어 보려는 시간이었을 것으로 생각 되어진다. 짐작컨대 칼 가는 시간만은 나름의 의식을 치르고자 하셨던 아버지의 시간이었을 테니까. 그 뒤에서 아버지의 칼 가는 소리를 듣던 나의 시간도 마치 기도의 시간처럼 고요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숫돌은 아버지의 회환을 받아주며 자신이 깎여지는 아픔을 감내해 주었다. 움푹 패어진 숫돌을 만지작거리면 우리 집 오랜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 같은 내력을 갖고 있었다. 번뜩이는 무쇠 칼이 부엌으로 자리를 옮겨 가기 전, 아버지는 숫돌을 한참 바라보시다 칼을 갈 때 흘러내린 숫돌의 회색빛 가루들을 물로 씻어 내리셨다. 숫돌이 아프게 갈리고 나면 칼날이 반들거렸던 것을 아버지는 아시기라도 하시는 듯 숫돌을 쓰다듬으셨다. 그러면서 당신의 한처럼 느껴졌던 날들을 깨끗이 씻어 내리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칼 가는 모습이 참으로 애틋하게 다가왔던 날들을 회상해 보았다. 숫돌이 닳아가던 현상을 말없이 바라보았던 그 딸이 그즈음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 아버지와 숫돌은 회색빛 추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내 기억 속에만 아버지의 칼 가는 모습과 숫돌만이 살아서 숨 쉬고 있을 뿐이다. 옛집의 그 숫돌은 우리 집의 말 없는 가훈이었는지도 모른다. 먼저 자신이 갈려지고 나면 반짝이는 칼날을 선물로 줄 수 있다는 기쁨을 말해 주었다. 우리 집의 평온을 위해 숫돌은 칼에게 자신을 내어주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소리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숫돌에는 마치 아버지의 구부러진 등이 찍혀 있는 듯 보여졌다. 회색빛 그리움이 뿌옇게 풀려나올 것 같은 우리 집의 일화가 숫돌에 묻어 있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 숫돌을 찾을 수는 없지만 칼날이 무뎌지면 생각나곤 하는 숫돌이다. 때때로 도마 위에 놓인 음식 재료들을 쓸다가 칼이 미끄러지면 줄에 갈면서 숫돌을 생각하며 지난날을 더듬어 보곤 하였다.

그런 숫돌을 그리워하던 중에 곰곰이 나를 들여다보았다. 여태껏 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타인들을 위해 갈려 주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숫돌은 칼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반짝이고 싶었던 소망이 있었던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해 숫돌처럼 갈려질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두 손을 모았다. 눈부신 오월의 햇살이 창문을 넘어와 숫돌에 갈린 칼처럼 비스듬히 마루에 누워 반짝이고 있는 오후다. 그 옆에 숫돌처럼 앉아 오후를 지키는 여자의 시간은 계속 길어지고만 있었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침 이슬 / 백정혜  (0) 2020.07.31
속미인도(俗美人圖) / 이병식  (0) 2020.07.31
등 / 문혜란  (0) 2020.07.26
일관성에 대하여 / 김광섭  (0) 2020.07.26
나무 / 김광섭  (0) 2020.07.2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