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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아침 이슬 / 백정혜

부흐고비 2020. 7. 31. 23:07

미세한 날개의 현絃을 부비며 풀벌레가 애를 끓인다. 혹은 낮은 소리는 다시 가깝고 먼 거리의 조화로 신비한 우주의 대합주로 들린다. 이슥한 밤의 무게를 가늠하게 함인가.

어둠에 묻혀 잠시 보이지 않을 뿐 삼라만상은 쉼없이 새 날의 태동을 계속하고 있음을 알려주는지, 영혼은 바람 걸리지 않는 거미줄이 되어 소리의 그네를 타며 잠들지 못하는 희열이 있다.

수삭瘦削해진 풀벌레의 울음이 잦아지는 시간, 정결의례를 거친 부상扶桑의 태양이 감은 머리결을 부드럽게 젖히며 여명을 보내온다. 밤새 진득이 지키지 못한 잠자리를 떨치면 육신은 세고 世故를 벗어난 기쁨처럼 가볍다.

싸아한 대기 속으로 한 걸음 내려 서본다. 먼저 깨어난 보답으로 새롭게 만나는 대상들은 경이롭기만하다. 태고의 신비와 보석처럼 찬연한 아름다움도 새삼스레 바라보게 된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길섶에 시선을 멈춘다. 대지에 뿌리내린 키 작은 풀포기, 발부리 걸음으로 긴밤을 새워 이곳까지 왔느냐. 부서질 듯 영롱한 이슬방울을 저리도 받쳐 이고서.

뿐인가. 저기 발그레한 가슴 열어 보이는 고운 꽃잎과 가녀린 잎새 잎새들. 숨결 갈라져 아픔 맺힌 속속들이 진주되어 반짝이는 이슬방울들.

어느 절세의 세공이 신령을 빌어 빚어놓은 불멸의 예술인가. 그도 아니면 잠들지 않은 삼라가 일시에 기氣를 모아 단숨에 뱉어놓은 입김의 결정인가.

우주가 들여다보일 듯한 작은 물방울. 완벽한 시공을 품고 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불심이다. 무한대계가 그 속에 궁글고 있다. 흐르는 속성을 거절한 업보인가. 맺혀있는 이 엄청난 이단의 수형受形을 어쩌랴.

맺혔는가 하면 다시 흘러들어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간절한 저 회귀성을 뉘라서 막을 수 있을 건가.

그 앞에 서면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니 존재라는 것은 한갓 무위에 지나지 않는다. 알고 있는 그 이상을 발할 수 없고 말할 수 있는 이상을 알지 못한다.

거기엔 이미 수증기니 대기 온도니 물방울이라는 보통 명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모두를 추상의 세계가 기적처럼 나타난 다음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이 되었다가 동시에 하나의 닫힌 공간이 되는 투명한 유동체.

아침 명상에 들 듯 조심스럽게 그리고 경건하게 들여다본다. 아, 끝내 풀릴 것 같지 않은 화두話頭. 방망이를 잃어버린 도깨비 문.

기껏 나에게서 열리고 있는 것은 감각의 문일 뿐, 그렇게라도 근접할 수 있는 수려한 아침의 참례라면 미상불 행운이 아니겠는가.

물방울이 품고 있는 갖가지 내음을 맡아본다. 잎새의 기포에서 내뿜는 풋향. 지표에서 묻혀온 젖은 흙냄새, 먼 산골짜기의 산태며 이끼 냄새가 나기도 하고 유년의 강가에 두고 온 물비린내도 섞여 있다. 대기에 흘러 다니는 썩은 지폐 냄새나 음모와 위선의 화근내는 이 아침 어디에도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도 보인다. 푸른 꿈을 안고 새벽길을 재촉해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다.

학문을 향한 집념에 어머니 치맛자락을 놓고 주먹으로 눈물을 지움 돌아섰던 소년,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구명을 다짐하며 분연히 길 떠났던 의지의 투혼들. 안개에 묻힌 고향집을 동구 밖에서 뒤돌아보며 한 맺힌 객지살이를 떠났을 사람. 모두가 새벽이슬을 맞고 발을 적시며 자랑스런 귀향을 맹세했을 것이다.

일찍 깨우쳤던 사람들만이 이슬처럼 맑고 정화된 의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남 먼저 일어나 새벽이슬에 발을 적셔본 사람만이 남다른 돈오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늘거리는 풀잎 끝에서 유연한 탄력으로 몸을 구르는 곡예사. 또르르, 곧장이라도 들릴 것 같은 구슬소리, 한순간 청명한 파열음을 내며 산산이 부서지며 쏟아놓을 것 같은 소리들.

밤새워 몸을 비벼 울던 풀벌레의 울음소리, 지열 있는 곳마다 지천으로 파고들어 때를 기다려 몸을 녹이는 작은 풀씨의 숨결. 벼랑을 뛰어내리며 환호하는 물소리. 떠도는 바람소리. 어느 산사에서 들려오는가. 사문의 독경소리와 혼자 흔들리는 풍경소리는….

아침 이슬은 소멸의 미학으로 더욱 숭결하다. 자신의 힘으로 승화되어 간다. 흔적 없이 사라져감을 처연하게 보여준다.

지상에 닿은 빛을 제일 먼저 받아 온몸으로 투과시킨다. 차단의 면으로 전부를 포용하였다가 닫힌 면으로 남김없이 되돌려 보낸다. 그러면서 통과한 엷은 빛살로도 찬란한 신화를 계속한다. 연소되어가는 만큼 작게 줄어들며 품었던 것을 고스란히 반납한다.

이 세상의 신비와 아름다움은 생명이 길지 않다. 짧은 생명으로 해서 더욱 아름답다. 귀한 것을 귀하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일 것이다. 긴 이별 뒤의 짧은 행복, 불운의 언덕에서 기다린 행복, 장마 중에 간간이 비치는 햇살.

아침에 피는 선인장의 붉은 꽃들은 아침 이슬처럼 <반짝>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뜨겁게 맞이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아침 이슬은 <이슬>처럼 사라져간다. 내일 아침 이슬처럼 아름다운 이슬의 현시顯示를 위하여 아침 이슬은 한 우주를 소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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