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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물 / 정희승

부흐고비 2020. 9. 7. 14:22

연못이나 웅덩이에 고인 물에 돌멩이를 던져보면 안다. 얼마나 물이 정직한 지를. 돌 하나를 떨어뜨려놓고 물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살펴보라. 솔직한 물은 자신의 정곡이 정확하게 꿰뚫렸음을 수면 위에다 과녁을 펼쳐 담담하게 시인할 것이다. 몇 번을 시도해보아도 마찬가지다. 돌이 자신의 깊이를 관통하는 동안, 물은 수면에 소포를 펼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중심에 명중되었음을 거짓 없이 보여준다.

어렸을 때 나는 물수제비를 잘 떴다. 하굣길에 시냇가를 지날 때면 늘 맵시가 고운 작은 밀돌을 주워 모로 엇비스듬하게 몸을 기울인 자세로 팔매질을 했다. 돌이 물 찬 제비처럼 수면을 담방담방 밟으며 날렵하게 미끄러져갔다. 다섯 번 이상 뜨는 것은 예사였다. 그때마다 물은 기다렸다는 듯이 돌이 밟고 간 자리에 재빨리 작은 과녁을 펼쳐 그 결과가 드러나 보이게 했다.

“대단해! 아주 훌륭한 솜씨야. 이번에도 어김없이 몰기(沒技 | 활터에서 정한 화살의 수를 다 맞히는 일)로군!”
칭찬만 하기로 작정한 듯 물은 그렇게 완벽한 기적을 만들어 놓고 모든 공을 나에게로 돌렸다.
단언하건대 물에 돌을 던지면 누구나 오시오중(五侍五中)하는 명사수가 될 수 있다. 어디에 어떻게 던지든 항상 명중하기 때문이다.

물의 중심은 기하학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한 질감에 있지 않다. 통점처럼 전신에 퍼져 있다. 미심쩍으면 시험 삼아 손가락으로 물을 어디든지 찔러보아. 중지로 수면을 가볍게 튕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면 반드시 간질인 그 자리가 솔아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파리하게 동심원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물은 그렇게 섬세하게 조율된 감각으로 언제나 중심을 예민하게 지각한다. 한 마디로 물은 전체가 중심 덩어리다. 무정형으로 찰랑거리면서 흘러가는 것은 몸 구석구석까지 중심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게중심이 낮은 사물일수록 안정하다고 한다. 그런데 물은 위아래 전후좌우 가릴 것 없이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중심으로 이루어진 생물이다. 모든 부분이 늘 민감한 더듬이로 낮은 곳을 탐색하는 것은 보다 안정한 상태에 머물고 싶은 물의 본능이다. 물이야말로 가장 낮은 곳에서 진정한 안식을 취할 자격이 있다.

물은 장애물이 나타나면 돌아가고 막히면 넘쳐흐르고 틈이 보이면 스며들면서 부단히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쉼 없는 고고한 여정 속에서도 물은 언젠가는 이르게 될 지상에서 가장 정일한 내면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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