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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느 오후의 평화 / 정희승

부흐고비 2020. 9. 7. 14:25

대화할 때 서로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대상이나 사물은 보통 문장에서 생략한다. 정황으로 알 수 있다면 주어나 목적어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 애써 완전한 문장으로 말을 계속하면 오히려 대화가 껄끄러워진다. 우리말의 중요한 특징이다.

점심을 먹다가 아내가 묻는다.

“부쳤어요?”

역시 문장의 주요 성분을 생략해버린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미루어 짐작할 거란 의미이다. 아내가 묻는 내용을 반듯한 문장으로 재구성해 보면, ‘오늘 군에 있는 큰애에게 소포를 부쳤어요?’쯤 되겠다. 오늘이나 큰애, 소포 등은 서로 묵인하는 것이므로 굳이 들먹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결국 궁금한, ‘부쳤어요?’라는 동사만 남겨 놓는다. 덧없이 사라지는 행위, 즉 부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했으므로 나에게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거다. 편안한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이렇게 생략되는 낱말이 많다.

“그럼.”

나도 짧게 대답한다.

그것을 끝으로 식탁에서 오가는 말이 없다. 아내는 더는 묻지 않는다. 궁금한 게 없는 모양이다. 긴 침묵이 이어진다. 우린 각자 묵묵히 밥을 떠먹는다. 티브이를 시청하지 않아서인지 집 안이 더 조용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침묵의 내용은 무관심이나 불화가 조성하는 것과는 전혀 질이 다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우린 이미 서로의 존재를 기꺼운 마음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새삼 서로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을 필요가 없다. 더불어 오늘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각자 어떤 행위를 하였더라도 이제 그것까지,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것까지 기꺼이 다 수용한다. 그러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우리의 침묵에는 깊은 신뢰가 깃들어 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아내가 커피를 내 놓는다. 더치커피다.

나는 더치커피가 좋다. 오늘처럼 날씨가 더운 날에는 특히. 원두를 갈아 향이 날아가지 않게 찬물로 내리는데, 방울방울 떨어지므로 보통 12시간쯤 걸린다. 그걸 다시 냉장고에서 사나흘 숙성해 두었다가 마신다. 슬로우 커피인 셈이다. 준비하는 데 번거로운 면이 있지만, 어느 때든 바로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액에 찬물을 알맞게 붓고 얼음을 살짝 띄워 마시면 되니까.

정갈하게 가라앉은 맛과 그 맛에 은은하게 조응하는 향이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

나는 이런 단조로운 일상에 불만이 없다. 어쩌면 늘 바라는 것인지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런 평범한 일상은 벗어나야 할 답답한 감옥이 아니라, 다듬고 손보면서 나날이 새롭게 구축해야 할 삶의 안식처다. 우리의 삶에는 얼마나 많은 우연과 무질서가 개입하는가. 우리의 일상은 사회라는 바다에 불안하게 떠 있는 배와 같다. 늘 부유하면서 흔들린다. 폭풍우나 예기치 않은 기관 고장으로 의지와 무관하게 침몰한 배도 살면서 여럿 봤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 그것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노역과 애정 어린 실천을 요구한다. 그것은 기적 같은 성취다.

“어때요?”

다시 아내가 묻는다. 커피 맛이 어떠냐는 거다. 이번에는 질문의 방향이 아까와는 조금 다르다. 행위가 아닌 느낌을 묻고 있으므로. 하지만 그것 역시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주 우아해.”

내 느낌을 말해준다. 결코 과장법을 쓴 게 아니다. 품위가 있다는 말을 덧붙이려다 그만둔다.

왜 우리는 늘 보이지 않는 것,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부단히 확인하는 걸까? 삶을 추동하는 힘은 이런 덧없는 것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닐까? 동사나 형용사를 대화에서 생략하지 않고 끝까지 남겨두는 것은(우리말에서 술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잘 생략하지 않는다), 덧없이 실체가 사라져버리는 이런 것이 인생에서 의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딴은 그렇다. 선물을 받은 아내가 감동하는 것은 늘 선물 자체가 아니라 정성을 담뿍 담아 건네는 나의 행위였다. 그때마다 아내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고마워요.” “어머, 너무 예뻐요!” 물론 그런 아내의 반응 역시 내가 간절히 기대하는 것이었다.

맛이 들뜨지 않는, 찬물 속에서 잘 발효된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우린 지금까지 비교적 조용히 흘러왔다. 상대의 존재를 아무런 의구심 없이 받아들이며, 서로가 묵인하는 사물에 둘러싸여, 이렇게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표현하면서. 이런 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워낙 짐짐하고 싱거워서 사랑이라 부르자니 왠지 쑥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고 사랑이 아니라고 단언하지도 못하겠다. 아무튼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관계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랑, 그것은 우리 부부에게 다소 거추장스러운 감정이다. 철 지난 옷같이. 우린 이미 새로운 계절에 있다. 그러고 보니 시인 랭보는 사랑은 재발명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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