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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묘한 존재 / 이희승

부흐고비 2020. 9. 29. 10:40

 




    사람이란 대체로 묘한 존재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우선 묘하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때문에 사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이 묘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을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 묘하고,

    백인백색(百人百色)으로

    얼굴이나 성미가 각각 다른 것이 또한 묘하다.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인 데도 아는 체하는 것이 묘하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건만 다 뛰려고 하는 것이 묘하다.


    제 앞에 죽어 가는 놈이 한없이 많은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저만은 영생불사(永生不死)할 줄 아는 멍텅구리가 곧 사람이요,

    남 곯리는 게 제 곯는 것이요,

    남 잡이가 저 잡인 줄을 말끔히 들여다보면서도

    남 잡고 남 곯려서 저만 살찌겠다는 욕심쟁이가 사람이다.


    산속에 있는 열 놈의 도둑은 곧잘 잡아도,

    제 마음속에 있는 한 놈의 도둑은 못 잡는 것이 사람이요,

    열 길 물속은 잘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더니,

    십년을 같이 지내도 그런 줄은 몰랐다는 탄식을 발하게 하는 것이

    사람이란 것이다.


    요것이 대체로 말썽꾸러기다.

    차면서도 뜨겁고, 인자하면서도 잔인한 말썽꾸러기다.

    내가 만일 조물주였더라면, 천지 만물을 다 마련하여도

    요것만은 만들어 내지 않았을 것이 곧 사람이다.


    사람은 묘한 존재다.

    나 자신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사람이란 참 묘한 존재다. 알고도 모를 묘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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