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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지팡이 / 손광성

부흐고비 2020. 10. 7. 23:28

몇 년 전 고희를 맞은 친구에게 지팡이를 선물한 적이 있다. 몸도 마음도 부실한 나이. 믿음직한 시종 한 명을 붙여준 기분이었다. 옛날 동양에서는 아무나 지팡이를 짚을 수 없었다. 마을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 조정에서 벼슬이 으뜸인 사람, 모든 이들이 우러르는 사람을 삼달존三達尊이라 했는데, 그 세 가지 조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충족시켜야 가능했다.

서양에서는 중세 이후 기사騎士가 신사紳士가 되면서 칼을 쥐던 손이 대신 스틱을 잡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젊은이들이 지팡이를 짚는 풍습이 생겼던 것이다. 개화기에 서구문물이 밀려들어올 때 이런 유행도 따라 들어왔다. 한때 지팡이를 개화장開化杖이라 부른 것은 그 때문이다. 삼달존에 관계없이 단장을 휘두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수필가 김동석은 나이 서른에 스틱을 짚었다. 그리고 <나의 단장>이란 예찬론까지 썼다.

8.15 해방과 함께 시대가 바뀌었다. 젊음을 구가하는 현대문명은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인간상보다 실질적이고 활동적인 인간상을 요구했다. 그렇게 경로敬老의 시대는 가고 경로輕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는 구십이 지난 노인네도 지팡이를 짚으려 들지 않는다. 늙게 보여서 득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이리라.

늙으면 조심할 게 세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낙상落傷이다. 골절로 병상에 눕는 순간 온갖 병이 몰려와서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젊게 보이고 싶은 심정은 이해되지만 그 허영심이 명을 재촉하니 문제다. 종합병원 입원환자의 반이 노인이고 그 반이 낙상환자다. 겸손하게 지팡이만 짚었어도 그 반의반은 입원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안타깝다.

어떤 사물이 직립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은 세 개의 다리다. 삼발이도 사진기도 다리가 셋인 것은 그 때문이다. 아침에 네 발로 걷고 점심에 두 발로 걸어도 저녁에는 겸손하게 세 발로 걸어야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 호모 일렉투스homo electus다. 적자로 허덕이는 의료보험을 살릴 길이 있다. <지팡이 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70세 이상 자는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지팡이를 짚으라”

이런 취지면 충분할 것이다. 여기서 노인을 65세 이상으로 볼 것인가 70세 이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입법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아무튼 법이 제정되는 순간 정부와 개인의 의료비 부담은 반의반으로 줄 것이 틀림없다.

지팡이의 좋은 점이 또 있다. 부실한 다리에 쏠리는 체중을 분산시켜주니 무릎이 아프지 않아서 좋고, 걷다가 지치면 의지해서 잠시 쉬면서 자연과 인생을 관조할 수 있어서 좋다. 굳이 ‘느림의 미학’을 떠들 필요가 없다. 지팡이를 짚어 보면 안다. 혼자 걷다보면 손도 마음도 허전한 법. 이런 때 지팡이는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친구와 함께라면 일일이 말대꾸를 해 주어야 한다. 그러다 언쟁으로 발전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지팡이는 대답을 강요하는 일도 주인을 깨무는 일도 없다.

이 과묵한 친구는 듬직한 경호원이 되기도 한다. 건방진 녀석 한둘쯤 혼내 주는 것은 일도 아니다. 때로는 지팡이를 짚고 서서 마땅찮게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한바탕 사자후獅子吼를 토한다 한들 어떠랴. 지팡이를 짚은 ‘어르신네’더러 누가 뭐라 하겠는가. 나이란 벼슬은 못 되지만 때로는 면죄부 역할은 톡톡히 하는 법. 전동차에서도 요긴한 소도구가 된다. 언제 빈자리가 날까 슬금슬금 다른 승객들의 동정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 ‘요새 젊은 놈들 버릇이 없다’고들 하지만 지팡이를 짚은 노인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대한민국 젊은이는 없을 것이다. 이 세상 하직할 때도 그렇다. 이 친구들은 주인을 홀로 보내는 법이 없다. 아내도 자식도 따라나설 수 없는 외로운 여정. 그러나 이들은 산책길을 따라나서듯 묵묵히 동행해 줄 것이다.

나에게 세 개의 지팡이가 있다. 귀여운 푸들 머리 손잡이는 이탈이아에서 귀화한 것이고, 퓨마를 조각한 주석 손잡이는 중국에서 온 것이다. 올리브 나무 몸통에 황금빛 쇠뿔 손잡이가 달린 것은 제자가 사준 프랑스 친구다. 나날이 노쇠해가는 선생이 딱했던지 어느 날 적지 않는 몸값을 치르고 선물한 것이다. 매서운 겨울 저녁에도 이 지팡이만 짚고 나서면 몸은 추어도 마음은 추운 줄 모른다. 제자의 따뜻한 부축을 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런 나의 고마운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소식이 끊긴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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