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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삶이란 외로운 것 / 김동길

부흐고비 2020. 10. 7. 23:24

내가 태어날 때 어머님은 혼자 계셨답니다. 전하여 들은 이야기입니다마는 아버님께서는 맹산 고을에 일이 있어 출타 중이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기 받는 산파 아주머니라도 한 분이라도 와 있었겠지 아무러면 면장댁에 산기가 있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어쩌면 동네 아낙네들이 여러 사람 와서 그 ‘역사의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나는 혼자 태어났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나는 어머님 뱃속에서도 혼자였고, 나올 때도 혼자였음이 명백합니다. 물론 쌍둥이로 태어나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출발부터 외롭지는 않겠다 부럽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순서는 있는 것이고 나올 때는 역시 하나씩이랍니다.

구약 창세기에서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를 보면 쌍둥이로 태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고독을 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그것이 오히려 큰 불행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가 봅니다. 사실상 그 두 사람은 헤어져 살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혼자 왔다 혼자 간다’이 말이 젊었을 때에는 공연한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삶이 오후 3시쯤에 접어 든 사람에게는 상당히 절실한 뜻을 지닌 격언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도대체 개인이란 무슨 뜻입니까? 우리 조상들에게는 전혀 생소한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동양적 전통에는 ‘나’라는 관념도 뚜렷하지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 ‘나’였습니다. ’핏줄’이 ‘나’였습니다. 그러니 개인이나 개성은 더욱 문제되지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나’를 찾는 노력에 있어서는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들보다 훨씬 앞섰던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들이 철학을 시작한 모양인데 사실 그 말의 참뜻을 옳게 헤아리지는 못해냈지만 ‘너’라고 뚝 떼어서 하나를 지칭하고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보도록 했던 것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이 규범이던 동양 사회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엉뚱한 철학의 출발이었습니다.

어쨌건 그 ‘너’와 ‘나’는 개체요 개인인데 영어로 individual은 indivisible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individual은 그 이상 나눌 divide 수가 없으므로 최종적인 ‘하나’라는 뜻이니 외로운 존재입니다. 그 외로운 ‘나’의 개성이 뚜렷하면 뚜렷할수록 그의 삶은 더욱 고독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무골호인이어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잘 지내면서 언제나 친구가 그 주변에 와글와글 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은 개성이 아주 없거나, 있어도 잘 감추고 사는 능청맞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 있어서 외롭다고만은 할 수가 없고 여럿이 같이 있어도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개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젊어서 집단생활, 단체생활이라는 것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일제 말기에는 학생으로 평안남도 용강龍岡 이라는 곳에 이른바 근로보국대로 끌려가 비행장 닦는 일에 한여름 진땀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막사 비슷한 판잣집에 수용되어 주먹밥을 받아먹으며 수백 명 학우들이 함께 살았지만 그때 나는 무척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6.25 때에는 군인으로 뽑혀 제주도 모슬포에서 한동안 살았습니다. 그때에도 매우 고독하였습니다. 각계각층에서 가지각색의 장정들이 모여 한솥밥을 먹고 살았지만 각자 외롭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어쩌면 더 뼈아픈 것인지도 모릅니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뿐이 아니라 그 과정도, 삶 자체도 혼자 처리하고 처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합니다.

서울 근교의 소위 약수터라는 데는 새벽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서 조그만 물통에다 똑똑 한 방울씩 떨어지는 약수를 받아갑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약수를 물통에 받는 사람은 한 사람 뿐 입니다. 식구들을 먹여 살릴 걱정을 정말 하고 있는 이는 그 집의 아버지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독합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우리 아버지는 집을 떠나 방랑에 방랑을 거듭하시고 어머님이 우리 어린 것들의 손목을 잡고 맹산이라는 시골서 평양이라는 도시로 혼자 나오셨습니다. 나도 나이가 많아졌지만 그날의 정경을 그려보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어머님 수중에 돈이 있었겠습니까. 우리를 반겨줄 가까운 친척조차도 없었습니다. 전기불이 번쩍번쩍 하던 평양거리, 먹을 것이 꽉꽉 차 있던 가게들,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나는 아마 철없이 “엄마, 나 저거 사 줘!” 하며 엄마를 졸랐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원하는 것을 사 주지 못하는 어머님의 심정이 어떠셨겠습니까? 어머님은 얼마나 외로우셨겠습니까.

청춘도 외롭고 노년도 외롭습니다.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이 남긴 말 중에 ‘책임의 고독함 loneliness of responsibility’이란 생각할수록 의미심장한 말 입니다. 큰 감투 쓴 사람,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그만큼 더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죽을 때 누가 내 곁에 있어 줄까 생각해 봅니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 같으면 아내나 자녀들이 임종을 지켜보아 줄 것이나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처자도 없는 나는 외로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이 옆에 있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려준다고 해서 가는 길이 덜 외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외롭기는 옆에 누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것’ 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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