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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너머의 그 너머 / 최장순

부흐고비 2020. 11. 17. 10:40

볕 좋은 이런 날은 평소 즐기지 않던 원두커피 한 잔마저 향기롭다. 창가에 앉아 우두커니 음미하는 가을 냄새가 짙다. 창 너머로 머지않아 다가올 겨울이 하얗게 겹친다. 문득 찻잔 속 찰랑거리는 내 얼굴에도 표정이 겹친다. 깊이를 알 수 없지만 낯익다.

평온해 보이는 저수지에 낚싯대를 드리운 등은 고요한 듯 시끄러워 보였다. 찌를 지켜보고 있을 눈빛이 불쑥 돌아볼 것 같았지만 아버지의 등은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5·16을 맞으며 군청의 주사 직함을 놓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쫓겨난 것이다. 국졸(國卒) 학력은 새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가장의 몫은 어머니에게로 넘겨졌고, 아버지는 오래도록 안타까운 세월만 낚고 있었다. 절망과 분노와 회한이 뒤섞인 낚싯밥을 덥석 물어줄 물고기는 없어 보였다. 어쩌다 낚싯대에 딸려 오는 잉어의 저항만큼 끓는 속을 헤아리진 못했지만,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나는 눈치를 먼저 배웠다.

쪽창을 통해 내다본 세상은 신비로웠다. 나이만큼 작은 창이었다. 그러나 재만 넘으면 보지 못했던 세계가 한없이 펼쳐질 것 같았다. 어둠을 걷고 어김없이 동이 트던 그곳엔 이념과 사상, 있음과 없음, 옳고 그름, 이것과 저것이 무화(無化)되는 순진무구의 세계가 경계를 지운 채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너머를 어슴푸레 알게 된 것은 사춘기였다. 그곳 너머의 또 다른 너머가 있다는 환상은 날마다 나를 출렁이게 했고 뜨거운 가슴을 식히지 못해 몸부림을 쳐야만 했다. 펄펄 끓는 피는 그 너머를 향해 마구 달려가고 싶었으며, 넓은 세상에 나가면 단박에 무엇이 될 것 같아 나를 탈출한 마음이 수없이 재를 넘고 있었다.

산 너머, 개 너머, 재 너머…. ‘너머’가 아름다운 것은 상상 속 신비와 기대와 위안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 저쪽에 존재하면서도 현실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는 너머. 아득한 저 너머를 동경하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 누리는 특권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부질없는 꿈이라 치부한다면 살맛이 줄어든 것이다. 어른이 된 ‘여기’가 바로 어린 날 꿈꾸던 ‘거기’인지도 모른다. ‘다른 세계를 꿈꾸느라 바로 여기가 다른 세계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절대적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현실이다. 이곳에 있으면서 그곳을 동경하고, 그곳을 찾아 이곳을 버리면 그곳은 다시 이곳이 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유동(流動)만이 삶의 진리라 일깨우는 것 같았다. 소설 『모래의 여자』는. 그러나 꿈 너머의 또 다른 꿈이 이어지지 않고서야 그 유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쌔앵 터널을 빠져나가는 행렬 속 그들의 알 수 없는 행선지는 마치 내가 닿고 싶은 상상의 곳인 듯 설렌다. 여행은 너머의 그 너머를 찾아가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미리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씨앗은 자라서 나무가 될 것이라 신뢰하며 땅속에 묻히듯 기대와 믿음이 없는 여행은 출발부터 기운이 빠질 수밖에 없다. 설사 그 너머에 꿈과는 거리가 먼 슬픔이 있을지언정 운명처럼 떠나는 것이다. 어쩌면 ‘너머’는 우리가 보고 듣지 못하는 세계를 그려보는 눈과 귀를 열어주는 말일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너머를 향한 기대로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견디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훤한 길보다 뒤안길을 찾는 진정한 여행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세월의 파편이 그려내는 유년의 기억이라는 것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고 이해의 폭과 깊이가 생기면서 조금씩 보이는 것.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세월을 떠돌다 남긴 현실의 지문들로 나타나는 결과물이다. 노을 지는 산 너머에는 따뜻한 저녁이 있고, 정성을 쏟은 예술작품 너머에는 손 떨린 아름다움이 있으며,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지우고 고쳐 쓰는 작가의 손길 너머에는 고뇌와 환희가 있다는 것을 알아갈 즈음 이마의 주름살이 깊어진다. 9회 말이 되어야 결과를 아는 야구처럼 마지막 장면을 모르고 보는 영화처럼 너머로 가는 지름길은 없다. 산을 뚫은 터널이 속도와 시간의 빠름이 있을지라도 기대하고 동경하는 맛은 없다. 어두운 터널에 빠져드는 그 순간 꿈은 또 다른 터널에 묻혀버리고 만다.

그 너머의 아이들은 기억 속 그대로 머무는데 이곳의 나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빚은 낯선 존재로 머물고 있다. 무지개 너머를 꿈꾸던 순수한 기억들이 왜 가끔씩 그리워질까. 흔들리는 찻잔처럼 그 너머를 꿈꾸는 내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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