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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목리 / 배문경

부흐고비 2020. 11. 17. 08:43

2016 천강문학상 우수상

장롱 한 짝을 들였다. 친정집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만 차지하던 장롱이다. 앞은 느티나무에 옆과 뒤는 오동나무로 된 전통 방식의 맞춤이다. 비록 유행이 지나고 낡았지만 합판에 무늬 필름을 덧씌운 가구보다 나을 것 같았다.

장롱은 부모님과 오래도록 한 방에서 숨을 쉬었다. 연륜이 있는 물건으니 내력을 품어서 그런지 곳곳에 부모님의 숨소리가 배어있는 듯하다. 두런두런 나누는 말이며 갸릉갸릉 가래소리와 쿨럭쿨럭 기침소리 그리고 얼굴에 새겨진 주름까지 느껴진다. 물걸레로 닦고 광택제로 문지르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삶의 무늬가 깨어난다.

물결일까, 바람의 무늬일까. 아니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의 등고선일까. 이쪽에서는 산모롱이를 지나는 물처럼 유려하게 휘돌고 저쪽에서는 들판을 달리는 바람처럼 곧장 내달린다. 옹이에 부딪치면 소용돌이치다가 서로 엉킴도 없이 다시 흘러간다. 곡선과 직선의 흐름은 말 없는 나무가 온몸으로 그려낸 무늬다.

땅속에 묻힌 씨앗 하나, 땅을 움켜쥐고 가만히 고개를 내민다. 축복이라도 하듯 따뜻한 햇살이 뺨을 어루만진다. 직립의 의지를 곧추세운​ 나무는 우듬지를 하늘로 밀어 올린다. 그토록 사납던 바람이 언제 부드러워졌는지 교태를 부리며 겨드랑이를 간질인다. 꽃이 만개하면 봄날은 절정이다. 별 나비와의 밀애는 달콤하다. 그러나 봄날 뒤에는 또 다른 시련이 예고되어 있다.

나무는 선택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직립을 무너뜨릴 듯 바람이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온 힘을 다해 버틴다.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지면 끝이다. 땅을 꽉 움켜잡는다. 우지끈, 견디지 못한 팔이 파열음을 내며 부러진다. 발성기관이라도 있으면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는 나무는 속으로 제 울음을 가둔다.​

나무는 소리조차 몸으로 듣는다. 소리에도 나름의 무늬가 있다. 졸졸졸, 쏴아, 휘이잉, 매암매암, 나무는 소리에서 무늬를 읽고 차곡차곡 몸으로 기억해둔다. 우르릉 쾅,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지만 몸을 움츠리지는 않는다. 나무는 두려움도 둥글게 안으로 감아 무늬로 승화한다.

​ 뜨겁던 태양이 한 풀 꺾이면 이제는 비워야 할 시간이다. 노력과 인내의 결실을 세상에 바치고 한 때 자랑이던 잎들을 하나씩 털어낸다. 미련이나 회한이 없을까만, 나무는 감정의 늪에 빠져 삶을 그르치지 않는다. 삶은 연속되기에 순리에 따라야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을 나무는 안다. ​

​ 몸이 가벼워지면 나무는 스스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고요한 참선에 들어 봄여름가을을 다시 돌아본다. 해충이 몸을 갉아댈 때의 아픔, 팔이 부러진 후의 환상통, 온몸을 받아들여야 했던 희로애락, 나무는 한 생애를 통해 겪은 일들을 레코드판에 깊게 새긴다.

​ 시련 한 가운데 나무가 있고 나무는 꿋꿋이 중심을 잃지 않는다. 벙어리처럼 말 못하고 에두른 고통의 표식을 점층법으로 보여준다. 바깥으로 넓게 퍼지는 동심원처럼.

​ 나무는 제 결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베도록 온전하게 몸을 내놓는다. 결 따라쓰다듬으면 부드럽게 눕고, 거스르면 가시를 세운다. 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굴리면 둥글게 굴러가지만 대팻날이 지나갈 때는 날을 덥석 물기도 한다.

​ 산다는 것은 그 흔적을 새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울고 웃고 즐기고 참는 과정에서 들추면 아픈 옹이 몇 개쯤 가슴 속에 뭉쳐두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 알고 보면 사람의 결도 나무를 닮았다. 버림받고 거절당할 때, 오해로 억울할 때, 외로움과 열등감을 혼자 추스를 때,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여한과 부러움을 삭일 때, 때로는 참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도 치지만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절이 순환하면서 사람도 그러한 시련들이 무늬로 새겨진다.

​ 파도가 어디서 일든 늘 새로운 것처럼 삶도 제 각각의 모습을 지닌다. 줄무늬나 비늘, 척추 뼈로도 물고기의 나이를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은 살아온 날들을 결로 보여준다. 바람의 결이 쓰다듬은 사막, 물결이 빚은 갯바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숨결 한 자락까지.

​ 삶은 나름의 결을 짜는 일이다. 그것은 누에가 실을 뽑고 직조하는 일만큼 과정이 지난하다. 타고난 성질마다 다르고, 겪은 파란에 따라 아랍카펫처럼 다양한 문양이 될 수도 있다. 살아온 날을 돌이킬 수 없듯 한 번 그어지면 바꿀 수 없는 나이테, 기왕이면 추녀에 걸린 풍경소리처럼 은은히 번지고 싶은 것은 나만의 바람일까.

​ 나무는 동강나야 제 속의 무늬를 드러낸다. 나무의 종을 보려면 자르고, 횡을 보려면 켜야 한다. 종은 하늘을 향한​ 마음이요, 횡은 삶을 아루르는 역사다. 세상을 종횡으로 누비는 나도 차마 말할 수 없는 서정과 서사를 아울러 내면에 무늬로 켜켜이 새기고 있으리라.

​ 장롱을 곁에 두고 나는 오래도록 목리木理를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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