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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머니와 옥녀봉 / 유한근

부흐고비 2020. 11. 17. 13:38

어둑어둑할 때 대문을 들어섰다. 배가 고팠다. 어머니부터 찾았다. 그녀는 부엌에도 없었고 뒤뜰에도 보이지 않았다. 벼 퉁가리를 돌아 돼지막과 소막을 지나 옆집 숙부댁도 들러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저녁밥을 먹고 치웠는지 부엌에서 일하는 아줌마도 보이지 않았다.

시골의 밤은 일찍 어둠이 내렸고 저녁밥도 일찍 먹었다. 방마다 불이 하나씩 켜져 갔다. 스물한 명이나 되는 식구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큰 집은 적요했다. 앞뜰과 장독대도 적요했고 능소화도 적요하기만 했다. 어머니는 집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동생들에게 물어보고, 어른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약방에서 담뱃대로 재떨이를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할아버지는 무심한 얼굴이었다.

순간 사단(事端)이 났음을 알았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싸웠구나 하는 고부갈등이 스쳐갔다. 유년 시절부터 보고 자랐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장손며느리였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20명이 넘는 대식구의 먹거리가 쌓여있는 광 열쇠를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했다. 그로 인해 고부간의 갈등은 심화 되고, 어머니는 가슴앓이를 종종 앓곤 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나는 골목길을 뒤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놀이터로 가보았고 마을로 들어오는 고샅길로 가보았으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가슴을 탁 터지게 하는 곳으로 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옥녀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금은 근대문화거리로 조성된 그 큰길은 어둠이 깔렸고, 바삐 마실을 가는 사람들만 간간이 보였다. 옥녀봉은 공주를 거쳐 부여로 내려오는 물살이 잠시 쉬었다가는 금강 중류에 자리 잡은 높지 않은 봉수대가 있는 야산이다. 강경 옥녀봉은 조선시대 《여지도서(輿地圖書)》, 《택리지(擇里志)》에 의하면 강경산이라 불리워졌던 야산이다. 봉수대는 조선 전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도 기록되어 있는 봉화를 피우던 봉수대가 있는 곳이다.

넓게 펼쳐진 논산평야가 내려다보이고 금강과 논산천과 강경천이 합수되는 곳에 높은 듯이 그렇게 우뚝 솟아있었다. 그곳 정상에는 수령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는 느티나무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눈물의 시인’ 박용래 시인이 강 건너로 시집간 홍래 누이를 그리워하며 바라봤을 마을이 보이는 곳이었다. 그곳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둠이 한층 짙어져 금강 물줄기가 어스름하게 하얀빛을 내고 있는 그곳에서 어머니의 눈길은 부여로 거슬러 올라가는 물줄기를 보고 있었다. 나의 눈에는 물줄기가 하류인 군산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 어머니의 뒷모습이 바라보였다. 가슴만 쓸어내렸다. 그러나 어머니 곁으로 선뜻 달려가지 못했다. 어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곳을 멀찌감치 떨어져, 같이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머니에게 옥녀봉은 많은 식구들로부터 피해 쉴 수 있는 쉼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녀가 뒤돌아보며 나를 발견하고 “배고프지?”하는 말을 할 때까지. 그 말에 그때서야 저녁밥을 먹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식에게 먹이를 주는 일임을 그때 깨달았다.

지금도 고향에 내려가 그곳에 오를 때마다 나는 그 생각이 난다. 그곳에서 멀리 강줄기를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나의 문학의 원천임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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