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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나는 콩나물이다 / 김희정

부흐고비 2020. 11. 20. 10:10

거울을 본다. "꽃도 풀도 아니군. 나는 콩나물이다. 축축한 곳에 산다. 머리카락도 자라지 않는 깊은 어둠 속이다. 오늘도 난 수많은 골목이 있는 생각의 마을을 지나 긴 터널을 달려 마음이 보이는 가까운 내륙의 섬을 여행한다.

시간이 기웃거리며 도착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 사치스러운 꿈이 피어나던 꽃밭을 찾아, 아직 앉지 못하고 샛길을 서성인다. 젖은 보자기 밑에서 햇빛을 향해 바글거리며 숨 쉬던 콩나물이 사는 불 꺼진 동네가 보인다. 어둠 안쪽에서 창백한 얼굴을 내밀고 섰던 깡마른 존재 하나. 다리를 뻗고 눕고 싶던 콩나물 줄기의 욕망일지 모른다. 사람의 손길이 그리운 거기."

얼굴에 검은 보자기를 쓰고 시루 밑바닥에서 총총거리며 뿌리털이 자라고 있는 콩나물의 자화상이다. 여전히 목이 마르다. 안식할 수 있는 따뜻한 공기가 필요하다. 지금 나를 덮고 있는 제한된 보자기 밑을 들추고 나와 눈부신 햇볕 아래 서고 있다.

누군가가 값을 지불한 새 비닐봉지에 혹은 금박무늬가 박힌 근사한 종이봉투에 담겨 콩나물시루의 비좁음을 탈출하고 싶다. 날마다 찬물을 덮어쓰고 까치발을 들고 콩 껍질을 뚫고 희고 마른 다리를 드러내며 아름다워지기 위하여 지나치게 많은 물벼락을 맞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각 모서리가 있는 궤짝이거나, 투박하고 거친 돌 시루이거나 그 안에서 촘촘한 밀도로 박혀 있는 콩나물의 삶은 경쟁이다.

무자비하고 의식화된 환경에서 잔뿌리가 지나치게 웃자라 무더기 재배되고 있는지 모른다. 콩나물을 기르던 주인의 손에 한 움큼 뽑혀 나와 어느 주부의 손에 들려 이사를 가다가, 빗길에 미끄러져 터진 봉투에서 쏟아져 바닥에 팽개쳐지기도 한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냉장고 그대로 시들기도 한다. 끓는 물에 데친 상처난 삶에도 잘 인내한다. 그래도 웃는 건 콩나물의 천성이다.

봉지째 이사를 가고 싶다. 여행을 하고 싶다. 환상의 장소를 맘껏 드나들 수 있는 유효기간이 없는 종이 한 장이 갖고 싶다. 비자의 꿈이다. 주머니 속에서 만져지던 작은 종이 한 장 그 빳빳한 성취감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비자는 어쩌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영영 발급이 지연되거나 아예 발급 자격 미달이나 불확실한 사유로 발급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

기약도 없이 언제까지고 통보 없는 시간들과 가보지 못한 막연한 장소를 동경해야 할까. 그래도 매일 도착하지 않은 비행기를 기다린다. 보자기 안의 콩나물이 되기 싫어서 위험한 오름을 포기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가질 수 없는 사랑과 행운은 살면서 수없이 많은 경우 우리를 좌절시킨다. 기대하고 견뎌 온 꿈을 향한 열정의 시간들이 한낱 물거품이 되는 일도 많다. 콩나물처럼 어둠을 견디며 쭉쭉 뻗어 키 늘이기를 하고 햇빛을 그리워하지만, 기다리던 외출이 바닥에 헝클어져 버리고, 아름다운 꿈은 허상으로 끝나기도 한다.

나도 언젠가 올라가기 힘든 줄 알면서 높은 산 같은 사람을 만났었다. 무슨 고집이었을지 용기였을지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사랑을 했던 날이 있다. 나와 다른 길을 걷던, 내가 갖지 못한 훌륭한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존심이었거나 자존감이었던 내면의 싸움을 버텨가며 그래도 내가 가고 싶었던 여행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 젊은 날이 꼬박 다 들어갔다. 동반은 힘들었고 지쳤고 결국 끝까지 올라가 보지 못하고 되돌아 내려왔다.

내가 꼭 잘못된 선택을 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시간들은 분명 사랑하는 일로 충분했고 진실했고 순수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고 싶은 꿈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누웠다 나온 따뜻한 자궁처럼 든든하고 바닥이 평평했기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허상은 즐비하게 삶 가운데를 차지하고 우리 인생을 훈련한다. 홍수에 젖어 망가져 버린 한 가족의 꿈일 때도 있고, 불에 타버렸을 서재 한 칸이기도 하며, 택시에 두고 내린 돈 가방일 때도 있다. 꿈이 떠내려가던 강, 눈에서부터 사라지던 그리운 화면 하나, 놓쳐버린 비행기처럼 함부로 우리를 실망시킨다.

한 계단에서 다음 계단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가깝고 얼마나 또 먼가. 왜 사람 사이에 계단은 존재하는가. 그래도 계단 앞에 서면 망설인다. 보자기를 벗고 싶은 것이다. 빵 만들기에 재미를 붙여 한참 열심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맛있는 빵이 되기 위해 어둠 속에서 긴 숙성의 시간을 거쳐 높게 부풀어 오른 밀가루 반죽도 꼭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빵으로 성공하지는 않는다.

아주 미세한 공기의 변화나 시간의 차이, 빵마다 적정한 오븐의 온도를 맞춰주지 않으면 공들인 숙성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딱딱한 빵이 되어 나오곤 했다. 이스트가 부풀어 오르던 모습을 보던 즐거움이, 푹 꺼져버리던 순간을 수없이 겪었지만 아직 이스트 빵 만들기는 어렵다. 이스트가 부풀려 놓았던 반죽도 검은 비닐을 벗겨내면 더이상 부풀지 않는 환경이 되고 만다.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꼭 더 나은 결과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아직 콩나물이다. 나는 아직 이스트다. 밝음을 향하여 밖으로 나가고 싶고, 보다 많이 부풀어 부드럽고 맛있는 빵이 되고 싶다. 사방이 캄캄하다. 좁은 시루에 아직 산다. 낯선 어딘가로 되도록 멀리 이사 가는 꿈을 꾼다. 날마다 물바가지를 뒤집어쓰며 햇볕을 향해 발돋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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