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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아마추어 예찬 / 이헌구

부흐고비 2020. 11. 20. 10:12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4, 5세 때 일인가 보다. 내가 살던 관북 어느 마을에 외로운 한 노인이 있었다. 그 당시, 60이 넘었다면 굉장한 늙은이 대접을 받을 때다.

이 노인은 그때까지 취처(娶妻)도 하지 않고 장성한 큰집 조카의 행랑방에서 기거를 했다. 그런데 이 노인은 동네에서 이름이 나 있었다. 그 첫째가 장가를 들지 않은 것, 둘째는 글방에 다닌 일도 별로 없는데 유식한 문자를 곧잘 쓴다는 점이었다. 그중에 하나, 아직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기성명이족의(記姓名而足矣)라는 말이 있다. 이 노인은 입버릇처럼 “글을 많이 배워서 무엇하는가, 이름 석 자 쓸 줄 알면 그만이지.” 하는 일종 노인⎯ 노장적인 소박한 생각을 가진 이였다.

그 나이에 남들은 분에 따라 자녀들의 접대 효도를 받아가면서 사는데, 이 노인은 혈혈단신으로 거의는 남의 집 품팔이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곧잘 삼국지나 수호전 얘기도 구수하게 잘해 넘기는 지극히 낙천적인 노인이었다. 가끔 할아버지를 찾아와 담소하는 것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 당시, 나는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할아버지의 편애 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니까, 나도 자연히 노인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이는 특별히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다른 노인들이 오시면 인사 삼아서라도 나를 안아 보자고도 하고 또 쓰다듬어 주기도 하지만, 이 노인만은 담담하게 나를 대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으로도 이 노인은 꽤 수줍음을 타는 습성이 있지만, 어렸을 때에는 더군다나 낯선 사람과는 잘 어울려져지지 않는 성미여서 나에게 무관심한 이 노인이 도리어 나를 안심시키고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이미 그 노인⎯ 정씨였다⎯ 도 가고, 나의 할아버지도 세상 떠난 지 37년, 그리고 나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이 정 노인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현재의 나의 직업은 교수라고들 부른다. 이 명사는 오늘 이 사회에서는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학식이 많은 사람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입장으로 보면 그 두 가지의 현실적 의미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학문의 면에서는 더더군다나 감히 얼굴이 붉어져서 누구의 앞에 감히 나설 수나 있는가.

가끔 담론풍발(談論風發) 해박한 지식의 토론장에 가면 나는 멍청하니 그들 앞에 머리를 숙이는 이외에 다른 길이 없이 지내왔다. 그러나 사람은 제각기 자기의 설 자리를 설정해 놓고 자위 받는 은둔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중학 시절 일본의 어느 유명한 문학자의 인생관에 공감된 바 있었다. 그는 ‘통(通)’이라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일례를 들어 술 얘기가 나오면 천하의 술에 관한 방대한 사료(史料)를 들고 나와 장광설을 늘어놓는 데는 질색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추어라는 데 늘 매력을 느끼고 의의를 갖는다고 말했다. 47년 전의 일이지만 오늘까지 나의 삶에 있어 일종의 처세술로 이 아마추어라는 부적을 가슴에 지니고 살아왔다.

더군다나 프로페셔널⎯ 직업적이라고 불리는 그 단어가 ‘교수’라는 뜻을 내포한다고 생각할 때, 나는 그 말과 대립하고 그 말을 밀어 제쳐놓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교수도 물론 직업임에는 틀림없으나, 금전⎯ 경제보수관념을 떠나 직업이란 것을 생각할 수 없다면 그 말을 정말 나에게 구역질나는 어휘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무슨 거사나 된 것처럼 안빈낙도로 행운유수(行雲流水)를 벗삼아 그런 도인의 심경에서가 아니라, 사람이 보수(報酬)의 노예가 되고 거기에서 헤어날 수 없을 때 그것이 무한 슬퍼진다는 지극한 심정에서 느껴지는 일이다.

뿐 아니라 이 ‘직업’이라는 말이 쓰여지는 중에서도 가장 내 비위를 거슬리게 하는 것은 직업군인이란 말이다. 자기가 속해 있는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인, 용사가 되는 영예를 지니는 군인인 것이다. 그런데 직업군인이란 이 말을 들을 때 마치 대리 싸움을 하는 사람⎯ 보수를 받고 머슴처럼 징병에 응하는⎯ 같은 그런 인상을 받는다. 군인을 돈 받고 전장을 직장으로 삼는 사람으로 보고 싶지 않다.

나는 6·25 덕분(?)에 15. 6년간 비교적 많이 일선을 돌아다녀 보았다. 수도 고지의 격전 직후와 같은 무시무시한 전황도 보았고, 그런가 하면 밤손님(共匪) 출몰로 호남·영남 지방이 불안에 휩싸인 현장⎯ 마치 짐승처럼 움막에서 울타리를 치고 사는⎯ 도 가슴 아프게 보아왔지만, 저 많은 젊은이들이 보수를 받고 대리죽음을 한다는 그런 끔찍스러운 생각은 눈곱만큼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옛날의 용병(傭兵)과 직업군인과는 어떻게 다른가.

소위 대학이라고 나와서 38년간 직장을 여러 번 바꾸어 가져보았다. 일제시 우리들의 유일한 동경(憧憬)의 직업이었던 교원·신문기자 생활도 겪어보았고, 취직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쓰라린 체험도 맛본 바 있지만, 나는 직장에서 보수를 받기 위해 일개 지식 노동자가 된다는 그 자체가 싫다. 더군다나 그것으로써 명성을 얻고 위세를 부린다는 것은 그 더욱 싫다. 이렇게 자신 없이 살아온 나에게 가장 적합한 말이 ‘아마추어’란 것이다.

직장은 전문적인 것을 요구한다. 어떤 특수 지식 내지 기술을 요구한다. 인조인간이란 것이 예술인, 시인, 문학자의 머리에서도 나오고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로도 나올 것이다. 또 나오고 있다. 교통정리를 하는 인간이 있다고 한다. 바리기로는 그런 새 존재가 태어나서, 인간의 생명을 거는 그런 직업은 그런 비인간적인 존재에게 맡기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직업군인 대신 어떤 허수아비들에 의해서 국경선·방위선이 지켜지고, 인간의 진정 참다운 삶을 위해서 보수에 얽매이는 피동적 존재가 아닌 자주적·창조적·자유로운 능동적 존재였으면 한다. 말하자면 아마추어적 현실 향유의 인간이 되어질 수는 없을까. 자기 전공 분야 이외의 다른 하나를 갖는 일, 즉 언제고 그 다른 하나인 인간⎯ 참된 삶으로 돌아오는 그러한 생활인, 더 나아가 오늘의 주종 관계⎯ 직업, 지위에 의한⎯ 를 떠나 살 수 있는 그런 국가 사회, 인류 세계에의 염원…….

얼마 전 외신에 의하면, 한인(閑人) 클럽이라는 것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들은 하루 24시간을 열 시간은 수면, 열두 시간은 휴식·식사, 두 시간은 노동한다는 목적을 가진 클럽이라고 한다.

오늘 과학이 우리를 달나라·금성세계에까지 이끌어갈지 모른다. 그러나 이 지상에는 너무나 많은 부조리, 불행 비참이 판치고 있다. 원시적인 인간 생활에의 동경, 이런 역리(逆理)적인 생각이 가끔 우리들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또 일부의 젊은이들이 그런 속으로 말려들어가고 있다.

이상 상태(異常狀態)⎯ 심층 심리 분석에 의한 생명체의 파괴……. 이 소란 속에서 나는 아마추어의 길에 서본다. 가당치도 않은 ‘프로페스’의 호칭을 벗어버리고 아마추어라는 나의 작은 방으로 돌아와 조금은 자유롭게 쉬면서 나의 김 빠진 육체를 진정 매만져주고 싶다.

나에게는 특별한 취미가 없다. 그러나 가끔 게임이라는 집단오락 속에 끼인다. 그런데 그 게임이 돈을 거는 것일 경우, 또는 승부를 결단하는 경우면 나는 번번이 패배자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

그럴 때마다 적자생존의 이 험난한 속에서 도저히 이겨나갈 수 없는 나 자신을 가엾고 밉게 보기보다 귀엽게 달래 보기도 한다.

모두들 즐기고 모두 다 즐기고, 인간을 구속 안으로만 몰아넣지 않는 넓은 인간 환경 속으로 아마추어로서의 즐거움으로 엉겨지는 그런 상황을 다시 한번 절실히 간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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