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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방房 / 정목일

부흐고비 2020. 11. 30. 08:44

나는 소년기 때부터 마음에 드는 하나의 방을 갖고 싶었다. 알맞고 소담스런 방을 갖겠다는 것이 하나의 작은 꿈이었다. 아침 방문을 엶으로써 하루가 시작되고 저녁 방문을 닫고 인간은 하루를 거두고 내일을 예비한다. 방은 인간이 마음 놓고 안식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곳이며 인간이 태어나고 임종하는 곳이요, 인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러한 까닭에 인간은 누구나 제각기 방을 잘 치장하려 들며, 나 또한 상상의 세계에서 내 방을 즐겨 치장해 보는 버릇이 있다.

나의 방은 아파트나 양옥집의 방이 아니다. 나의 방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조그마하기는 하나, 오붓한 기와집의 방이며 숲길로 통하는 오솔길 가에 있다. 창문을 열면 숲길의 아청빛 녹음은 늘 창취한 모습으로 싱그럽고 또한 개결하다. 우거지는 녹음을 바라보는 것은 일상의 즐거움이며, 더구나 숲속에 내리는 봄비를 목도하는 것은, 더없는 유열愉悅을 가져다준다. 온통 이 세상을, 갈매빛으로 물들이는 수양버들잎 같은 봄비는 수풀의 가지나 잎을 타고 내려 뿌리의 밑바닥을 스쳐 향긋한 산나물 내를 풍기며 어느덧 개울물로 철철 흘러내린다. 모든 생물체가 일제히 품을 열어젖히고 움을 토하는 연록의 맑은 눈동자, 그 안에 샘솟는 싱그러움은 봄비의 신비이며, 경이이다. 나의 방은 숲길로 통하는 오솔길 가에 있어 언제나 무성한 자연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

나의 방문房門은 잠자리 날개 같은 창호지의, 미닫이나 여닫이 문이다. 밤이 가고 우유빛 여명이 가로 세로 잘 짜인 문살의 창호지를 환히 밝힐 때 나는 방문을 열고 노래하는 새들의 아침인사를 받고 싶다. 나는 소리 없이 방문에 와 머무는 창호지 빛 새벽빛을 사랑한다. 나의 조상들도 이 빛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쟁기 메고, 노고지리 노래 들으며 밭갈이 나가지 않았던가? 그리고 삽상한 가을 밤, 방문에 은은히 비치는 달빛이며 건들마에 오동잎 지는 실루엣은 가을의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 닫힌 듯 열린 은은한 여운은 미닫이나 여닫이 같은 문이 아니면 느낄 수 없고, 애잔하고 맑은 풀벌레 소리도 더욱 그렇다. 순백색 창호지에 빛이 투영될 때 잘 짜인 문살의 조형미는 그대로 하나의 예술품이 되고 만다. 유리문처럼 속살이 훤히 내보이지 않고, 소박하고 은근하다. 우아한 결백미까지 풍기게 한다. 나는 이런 미닫이나 여닫이문에 비치는 불빛을 좋아한다.

나의 방은 자개 놓은 가구나 값비싼 장식품으로 단장된 방이 아니다. 궁둥이가 뜨끈뜨끈한 따스한 온돌방의 온화함. 방바닥은 정교한 짜임새의 화문석이며, 아내의 손으로 만든 수실 아로새겨진 방석의 은근함. 볼수록 오묘한 멋과 해학이 우러나는 고성固城 오광대五廣大의 탈, 석란石欄이 자라는 분盆이 하나, 옷칠 문갑 위에 고려청자는 없더라도, 조선백자朝鮮白磁, 아니 신라 토기新羅土器라도 좋다. 그리고 사치를 부린다면 빙 휘둘러 처진 12폭 산수화 병풍을 드리우고 싶다

첩첩한 산은 구름에 넋이 빠지고, 폭포 떨어지고 수려한 강이 굽이치는 그 산수화의 자연을, 늘 내 방안 가득 채워 두고 싶다.

나의 방은 손님을 기다리는 물오르는 한 그루 벽오동이다. 대추 볼 익 듯한 이야기가 도란도란 진달래처럼 피는 곳이다. 죽마지우나 뜻이 맞는 친구를 초청하여 밤새도록 청담淸談하면서, 화로에 군밤이 튀는 것도 잊고, 바둑에 골똘하는 재미. 겨울밤은 깊어 병야丙夜로 기울고, 바깥은 사나운 눈보라가 문풍지를 흔들수록 나의 방은 더욱 훈훈하고 할머니의 이야기처럼 아늑해진다. 나의 벗은, 문득 이야기가 그리워 모든 것을 잠시 뒤로 미루고, 나를 찾아오지 않앗던가? 그칠 줄 모르는 겨울밤 얘기에 아내가 내어오는 조촐한 주안상은 주객主客의 마음을 황홀하게 한다. 문득 창을 열어 보라! 창밖에는 소리 없이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 강산. 숨 쉬는 정숙미靜肅美, 아름다움이 내려 쌓이는 깊이를 더해만 가는 그대로 한 폭의 묵화다. 눈은 밀림처럼 내리어 어제 보던 경물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는 잠시 방문을 열고 쇄락해진 마음으로 벗의 손을 잡고 아내가 마련해 놓은 아침 식탁으로 갈 것이다.

나의 방에는 샛노란 개나리꽃 웃음이 피어나는 곳이다. 어느 날 밤,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가의 허수룩한 집 창가에서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 집의 창문 아래에 서서, 무심코 그 웃음을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손뼉을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예닐곱 살 돼 보이는 딸이 유희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와 아빠의 웃음이 박수소리에 피어났다 갑자기 그 방문을 열고, 불현듯 방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비록 허수룩한 집, 보잘것없는 방이지만 얼마나 정답고 흐뭇한 정경이냐! 나의 방은 이와 같이 정다운 이야기와 웃음이 소록소록 숨 쉬는 방이다.

나의 방에는 꽃병에 꽃을 꽂지 않겠다. 수선화를 기르겠다. 그대로 물오르는 수선화 향기를 방안 가득 채울 일이다. 나의 방문 앞에는, 백목련白木蓮을 심겠다. 그리고 울타리에는 호박 덩굴을 올려놓겠다. 호박덩굴은 밤사이에도, 눈에 띄게 자라 한 뼘이나 뻗었고, 별 같은 호박꽃은 볼수록 얼마나 아리잠직하고 눈부시며 아름다우냐! 잔털이 촘촘히 돋은 잎들은 녹색 우산을 펴들고 어디로 줄지어 나들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른 봄날, 내 방으로 실어다 줄 때, 나는 읽던 책을 잠시 덮어 두고 방문을 열어, 우아하고 만지면 떨어져 버릴 듯한 그 흰 목련꽃들을 바라보리라. 내 방 앞 목련꽃 향기가 그리워, 이때쯤 혹시 누가 예기치 않게 내 방문의 문고리를 잡아 줄지 알 수 없다.

나의 방은 남으로 창을 내겠다. 여름이면, 숲에서 매미소리 실어오는 청풍淸風을 끌어들이고, 겨울에는 백림伯林이 설경을 완상하고 싶다. 남창南窓밑 남새밭에는, 내 손수 열무, 상치와 옥수수를 심겠다. 깃발을 든 옥수수가 알알이 익을 때, 뚝뚝 꺾어 낸 옥수수를 삶아 내놓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리라. 여름의 소낙비가 숲처럼 쏟아져 낙숫물이 줄줄 떨어지는 모습을 창으로 바라보며 나는 불현듯 옛 친구에게 편지를 쓰리라. 그리고 창문에 진달래 빛 노을이 물들 때 나는 무작정 좋은 수필 한 편을 스고 싶어 안달이 날지 모른다.

나는 단지 잘 치장된 방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방안의 풍경도 중요하지만 방안이 지니는 분위기를 더 좋아한다. 나는 산사山寺의 아무 꾸밈도 없는 선방禪房의 분위기를 흠모하며, 도배도 잘 안 된 흙내 나는 시골의 사랑방을 또한 좋아한다. 사랑방에는, 순실順實한 이들의 이야기가 밤마다 호박꽃처럼 핀다. 그들의 이야기는 생활 속의 체험담에서부터 이웃의 걱정에 이르기까지 소박하고 토속적인 체온을 지니고 있다. 숲길에서 뱀을 만나 놀랐다는 둥, 토끼와 꿩을 잡았던 때의 일, 가뭄이 들어 논물 때문에 박서방과 싸우던 때의 일들……여러 가지 이야기가 새끼줄처럼 줄줄 꼬여진다. 그리고 사랑방에는 숭늉처럼 구수한 민화와 전설의 맥락이 이어지고 가난한 한숨보다는 흥부전에 엿보던 해학이 벌어지며 인정의 훈훈한 웃음이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 버린다.

나는 노학자老學者의 운창芸窓옆을 지나며 옷깃을 여미고, 서재의 장서 등을 은근히 부러워한다. 나는 길을 가다가 피아노를 치는 소녀의 창밑에 발을 멈추며, 때로는 아기 재우는 어머니의 자장가가 장미처럼 곱게 피어나는 방안을 상상해 본다. 나는 간혹 귀양살이의 고독과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오직 자의식의 등잔불로 온 밤을 지새우며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원목(原牧)> <전론(田論)> 등 수많은 논문과 저술을 남긴 정 다산丁茶山이 거처하던 방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나는 농사일에 지쳐 온 식구들이 코골며 잠든 밤에 홀로 밥상 위에 책을 펴놓은 산골 소년 옆의 그 호롱불이, 칠흑 같은 산골의 밤을 멀리까지 반짝이게 하는 하나의 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소년의 방에 켜놓았던 호롱불은 산골의 밤을 반짝이던 하나의 고운 별이었다.

방은 그저 하나의 공간이 아니다. 방은 인간이 만든 인간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시발지이며, 종착지인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방으로부터 벗어나 생활할 수 없고 사고할 수도 없다. 방은 인간의 생활을 구속하고 있지만 생활을 빼앗지는 않는다. 방은 생활의 적나라한 단면이며 표현이며, 또한 조화이다. 방은 영원히 인간의 것, 인간을 기르고, 잠재우는 곳으로 인간의 영원한 고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 아버지에게 매 맞고 집에서 쫓겨났을 때, 방안에서 비치던 따뜻한 불빛! 아아, 그때 어머니가 그렇게 타일렀건만 끝내 잘못을 빌지는 않았다. 바깥에서 밤 깊도록 애태우며 기다리가 마침내 아버지가 주무실 때야, 살며시 방문을 열고 들어와 잠들던 그 단잠. 아, 얼마나 방이 그리웠던가? 첫사랑 여인의 방 창가에 비치던 불빛에, 나는 얼마나 가슴을 죄었는가.……별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겨울의 야간 초소. 초병哨兵의 소망은 뜨끈한 하나의 방이 아니었던가? 방처럼 자유롭고 평온한 곳이 또 어디 있으랴. 누구의 간섭도 침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만이 향유할 수 있는, 네 개의 벽을ㄹ 이루어진 불가침의 공간, 이 공간에서 삶의 대부분을 지나며 하루하루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

그 사람의 방을 방문하여 보라! 그 방이 풍기는 분위기 바로 그 사람의 체취인 것이다. 아무리 생활에 지치더라도 방안에 한 송이 꽃을 피울 여유는 가질 일이다. 꽃병이 없다면 아무 병이라도 좋다. 산야山野에 무수한 엉겅퀴나 억새꽃이라도 한 송이 꽂아 보라. 한 송이 꽃이 풍기는 방안의 분위기는 생활에 지친 이에게 의외로 여유와 용기를 가져다줄지 모른다.

하나의 소담스런 방을 갖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자유와 평화를 얻는 일인가. 그리고 방을 치장한다는 것은 한 부분 생활의 절실한 창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늘 신방新房을 꾸미는 기분으로 내 인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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