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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칼을 갈다 / 김이랑

부흐고비 2020. 12. 7. 15:36

칼 갑니다. 칼 갑니다.

누군가에겐 눈물 섞인 소리요, 또 누군가는 화들짝 놀랄 소리다. 오뉴월 서리 내리는 소리에 나도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저만치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멀어지고 있다. 마침 속이 출출한 터, 허기를 채우기 위해 포구로 나간다. 횟집 상가에 들어서자 비릿한 냄새가 끼쳐온다. 몸속 유전자 어딘가에 새겨져 있을 원시의 본능이 발동한다.

꿈틀대는 고기들을 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문어, 넙치, 우럭, 해삼, 개불…. 싱싱한 먹잇감을 고르려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다니는데, 바깥쪽에서 강한 마찰음이 들려온다. 건물 모퉁이를 돌아보니 한 노인이 담벼락 음지에서 칼을 갈고 있다.

위잉, 쨔르르르.

칼날을 고속 연마기에 대자 자잘한 불꽃이 흩어진다. 안경 너머로 양면을 가늠하며 날을 대충 잡은 노인이 연마기를 끈다. 숫돌에 물을 뿌린 다음 칼을 눕힌다. 칼을 몇 번 뒤집으며 밀고 당기다가 손끝으로 날을 잰다. 깊은 주름 따라 흐른 땀이 숫돌 위에 떨어지고, 마찰음이 부드러워질수록 칼날보다 손끝이 더 예리해진다.

사악사악, 소리조차 서슬이 퍼렇다.

누구나 음지에서 칼을 간다. 그러나 그것은 연습일 뿐, 비장한 출사표를 던지고 중원으로 나가면 강호의 날고 긴다는 검객들과 진검승부를 벌인다. 고수를 만나 자웅을 겨루다가 무릎을 꿇으면 눈물로 설욕의 칼을 가는 건 패자의 비애다. 철없이 맨 앞에 나섰다가는 눈에 찍히거나 자칫 치명상을 입는다.

맨 앞에 나선 적이 있다.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판이었다. 밥그릇 싸움은 이치대로만 타협되지 않았다. 뒷짐만 질 수 없어 전면에 나갔다. 나섰으면 녹슨 칼이라도 뽑아야 했다. 그러나 그곳은 날아오는 화살을 고스란히 맞는 자리였다. 호기를 부리다가 마음을 돌리려 했을 때 이미 발이 너무 깊숙이 빠져 있었다.

끝까지 버티다가 만신창이가 되었다. 뼈만 앙상히 남은 날, 바람만 닿아도 뼛속이 시리다는 걸 처음 느꼈다. 상처도 치유할 겸해서 산천을 떠돌았다. 머릿속에는 복수, 설욕 같은 살벌한 낱말도 떠돌았다.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상이 싫고 사람이 미웠다. 이빨을 갈수록 가슴 깊이 앙심이 쌓였다.

다시 세상에 나섰다. 만사를 놓고 토론하는 인터넷 광장에서 탄탄한 논리로 무장한 논객들과 불꽃 튀는 설전을 벌였다. 예리한 언어를 휘둘러 상대가 꼬리를 내릴 때는 가면 뒤에서 미소가 흘렀다. 자만하다가 약점을 찔려 내가 나가떨어지면 다시 책을 뒤적이며 논리의 칼을 갈았다. 때로는 쟁점을 벗어난 인신 난도질로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이념 대립은 끝나지 않는 승부였다. 상흔을 품은 채 토론 광장을 떠났다. 칼을 휘둘러 평정할 수 없는 세상을 펜으로 휘갈겨 보자며 뛰어든 논쟁의 벌판, 지식도 논리도 허술한 논객이 건진 전리품은 자신은 베였으면서도 칼등으로 내 만용의 등을 죽비처럼 내려치고 떠난 논객의 마음이었다.

노인도 한때, 대륙을 호령하는 칭기즈칸의 꿈을 꾸고 신대륙을 발견하려는 콜럼버스의 모험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 마음 같지 않아서 넘어지기도 했겠지. 최전선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한발씩 뒷걸음치다 여기까지 왔을 테고, 저 일은 노인에게 더 물러나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밥줄임은 분명하다.

밥벌이, 알고 보면 매우 두려운 일이다. 정면승부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곳곳에 저격수가 숨어 심장을 노린다. 위험을 무릅쓰고 칼을 휘둘러야 한다. 피를 보아야 먹이를 얻는다. 손에 피 묻히기 싫은 약은 자는 뒤에서만 움직이는데.

밥그릇을 놓고 진검승부를 벌이는 세상,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발 물러서서 밥 먹고 사는 게 덜 다치는 요령이다. 노인은 이 사실을 언제쯤 터득했을까.

노인이 칼을 들고 날을 빛에 비춰본다. 물에 씻어 벽에 기대어 놓고는 담배 한 가치 꺼내 불을 붙인다.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보는 눈매에 독기가 없다. 무뎌진 손톱과 흑심 다 빠진 백발, 세월이 순치된 노인의 모습에는 날카로운 곳이 보이지 않는다. 남은 무기라고는 핏줄 선 팔뚝과 뭉툭한 손끝뿐.

나는 노인의 내력을 모른다. 어떤 사연을 안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노인이 남의 날 세운 만큼 내 날을 세웠다면 지금은 칼을 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인이 다음 칼을 집어 든다. 칼을 밀고 당기다 보면 세상에 대한 원망도 자신을 벤 사람에게 품은 앙심도 숫돌처럼 단단한 욕심 덩어리도 물에 씻기고…. 저 고독한 연마가 마음을 부드럽게 가는 수행으로 보인다.

자신의 칼에 베인 자들을 추념하는 걸까. 갈아준 칼에 희생된 고기들에 대한 묵념일까. 칼을 들고 당기는 동안 노인은 묵묵하다.

사각사각, 허공에 흩어지는 소리.

노인은 칼을 가는 게 아니라 칼로 숫돌을 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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