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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꼬리를 꿈꾸다 / 최민자

부흐고비 2020. 12. 9. 14:00

땅 위에 사는 짐승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길짐승과 날짐승이다. 길짐승은 네 다리와 꼬리를, 날짐승은 두 다리와 날개를 가졌다. 꼬리 있는 짐승에게는 날개가 없고, 날개 있는 짐승에게는 꼬리가 없다. 아니다. 날개 달린 새들에게도 꼬리는 있다. 있기는 하지만 새들의 꼬리는 꼬리가 아니다. 꽁지이다. 외양이 변변치 못하거나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꼬리는 ‘꽁지’나 ‘꼬랑지’로 전락하고 만다. 공작이나 수탉처럼 꽁지깃이 화려한 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꼬리치레 하느라 높이 날기를 포기한 ‘폼생폼사’족들이 새들의 세상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날짐승의 날개가 비상(飛翔)을 위한 거라면, 길짐승의 꼬리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몸체를 떠받치는 네 다리만으로도 달리고 서는 데 부족함이 없거늘, 굳이 꼬리가 필요한 것은 왜일까. 해부학적 상식이 부족한 나는 이따금씩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러다가도, 꼬리가 없는 말이나 호랑이, 치타의 모습을 상상해볼라치면 멋대가리 없는 그 모양새에 절로 실소가 터지고 만다.

하지만 조물주가 어디 사람 보기 좋으라고 짐승의 꼬리를 지으셨겠는가. 치타에게 꼬리는 몸의 균형을 잡고 빠르게 달리도록 하는 방향타 역할을 한다고 한다. 긴꼬리원숭이는 꼬리로 가지를 휘어 감고 열매를 따거나 건너뛴다. 캥거루는 튼튼한 꼬리를 지렛대 삼아 앞발을 세워 겅중거리고, 여우는 꼬리를 흔듦으로서 자신의 체취를 확산시킨다. 그런가 하면 소의 꼬리는 파리나 쫓는 채찍일 뿐이다.

꼬리의 소임 중 흥미로운 한 가지는 어떤 동물에게 있어서는 꼬리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꼬리는 입보다 많은 말을 한다. 꼬리를 세우거나 감추거나 흔드는 일로 기쁨이나 긴장상태, 항복과 공격 신호를 전달하는 것이다. 저만치 들리는 주인의 발자국소리에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가는 강아지. 강아지가 오늘날 개 전용 삼푸로 샤워를 하고 폭신한 소파에 엎드려 낮잠을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말썽 많은 혀 대신 꼬리를 흔들 줄 알아서일 것이다. 정복하고 길들이기를 좋아하는 인간심리를 영악하게 파악해 낸 견공犬公들은 꼬리전술을 전략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사람의 시종이 되는 대신 사람의 시중을 받는 상전으로까지 군림하게 되었다.

날개도 없고 꼬리도 없는 어정쩡한 중간자 인간, 날개 달린 천사도 아니요 꼬리 붙은 짐승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천사이기도 하고 짐승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머리는 하늘을 우러르고 발은 땅에 붙이고 사니, 그의 내면에 선과 악, 지배와 굴종, 신성함과 비천함 같은, 상반된 속성이 혼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채로, 이쪽이면서 저쪽인 채로, 꿈과 현실, 비상과 추락, 희망과 절망 사이를 그네 뛰듯 오가며 산다. 인간은 정녕 날개 떨어진 천사일까 꼬리 감춘 여우일까.

반 백년 가까이를 살아내고서도 나는 아직도 내 자리가 천사와 짐승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분간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먹고 입고 사랑할 수 있는 육신의 즐거움을 생각하면 천사보다 조금 윗길인 듯싶고, 부질없는 욕심이나 갈등에 시달릴 때면 짐승보다 한참 하수인 듯도 하다.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처럼 때 없이 우울해지다가도, 말뚝에 매인 염소의 순명이 무시로 부러워지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자면 구미호는 아니라도 비상시에 필요한 꼬리 한두개는 구비해 두어야 편할지도 모르겠다. 포획할 대상을 향해서는 바짝 치켜 질주하고, 비위맞출 상대가 나타나면 납작 엎드려 흔들어댈 전전후 꼬리하나, 귀찮은 날벌레가 달려들면 한껏 후려쳐 매운 맛도 가끔 보여줄 수 있다면 사는 일이 때로 통쾌하기조차 할 것이다.

한때 하늘을 휘젓던 친구들이 날갯죽지에 힘이 빠졌는지 이제는 서서히 내려앉을 채비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몰래 연착륙하여 순한 짐승으로 살고 싶은 모양이다. 바듯한 가계에 보태 볼 겸, 후미진 주택가 모퉁이에 그럴듯한 꼬리가게나 차려볼까 한다. 북실북실한 개꼬리, 숭굴숭굴한 여우꼬리, 찰랑찰랑한 말꼬리…. 이런저런 구색을 다 갖추어 두고 은밀하게 입소문을 내기만 하면 꽁지 빠진 새들이 슬금슬금 모여들 것 아닌가. 풀장자리 날개하나 달아보지 못한 나도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꼬리 덕분에 뒤늦게 날개 한번 달아보게 될지 누가 알 것인가.

새가 출현하기 전, 원시 익룡들은 뒷다리와 꼬리의 추진력을 이용하여 하늘을 날아다녔다 한다. 꼬리도 잘만 훈련하면 날개 부럽지 않은 활공滑空의 방편이 되는 모양이다. 없는 날개를 갈망하느니 꼬리근육이라도 단련시켜두었더라면 나도 지금쯤엔 공작이나 수탉만큼은 높이 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혹시 왕년의 고관대작이 꼬리를 장만하러 내 가게에 들르면 만면에 미소를 띤 나는 기름 바른 여우꼬리를 살짝 감추며 상냥하게 물어볼 것이다.

“글세… 요즘 새로 나온 참신한 물건 없소? 없으면 그저 이 꼬리 저 꼬리 다 관두고 살래살래 잘 흔들리는 강아지 꼬리나 하나 주구려.”

그러면 나는 진열장 뒤에서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삽살개 꼬리를 비장의 무기인 양 꺼내 보일 터이다. 짭짤하게 흥정을 마치고나서는 먼저 장착해 본 경험자로서의 노련하고도 친절한 한 마디 훈수도 잊지 않을 작정이다.

“그런데 손님, 꼬리라고 무조건 흔들어서 좋은 것만은 아니랍니다. 삶이란 타이밍 아닙디까. 아무리 훌륭한 꼬리라 해도 적시에 내리고 비상시에 감출 줄 알아야 합니다. 위급할 때면 도마뱀처럼 자르고 달아나는 호신술도 익혀 두어야 할 테고요.”

“여보쇼. 내가 방금 꼬리 자르고 도망쳐 온 왕 도마뱀이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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