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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탈진실의 시대 / 이태곤

부흐고비 2020. 12. 28. 16:38

카카오 톡이 소통의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친구들과의 카톡방, 가족 혹은 동우회 회원들과의 카톡방 등 다양한 카톡방을 통하여 우리는 이웃과 소통한다. 전화나 편지로 소통했던 30년 전의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오늘날 기술의 발전은 대단하다. 하지만 일방적인 소통이다 보니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카톡방에 “북적되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립시다.”란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여기서 ‘북적’이란 ‘북한을 찬양하고 적폐라는 미명하에 건전한 우익을 말살하려는 청와대의 용어임’이라고 했다. 난 순간적으로 장난기가 발동했다. 장난기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글의 내용에 대한 거부감이 컸었다. 그래서 나는 “꼴값하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립시다.”라고 글을 올리면서 여기서 ‘꼴값’이란 ‘꼴통들이 갑질하는 의미임’이라고 했다. 나의 친구들은 경상도 시골출신들이다. 60대, 그것도 박정희 대통령이 태어난 구미 바로 옆 동네인 김천이 고향이다. 그러니 내 친구들은 보수적인 색체가 매우 강하다. 그런 친구들 카톡방에 내가 ‘꼴값’, ‘꼴통’ 운운하면서 글을 올렸으니 나도 참으로 별난 사람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속이 풀리니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니다. 내가 글을 올리자마자 카톡방은 난리가 났다. “어떻게 ‘꼴값’, ‘꼴통’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친구들을 폄하할 수 있는가?”로 시작해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었다”라는 표현까지 많은 친구들의 항의성 글들이 올라왔다. 나를 두둔해주는 친구들은 없었다. 나를 비난하는 수많은 댓글을 혼자 방어하느라 꽤나 힘들었다. 그래도 의연하게 버티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지어낸 거짓 주장을 지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북한을 찬양한다.”라든지 “건전한 우익을 말살하려 한다.”라는 말은 내가 보기에 분명한 거짓말이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의 생각 속에는 논리적인 오류들이 넘쳐흐른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광고도 사실은 조건반사를 이용한 인간 사고의 조작에 불과하다. 미인과 제품을 연결시켜 제품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911테러 때 부시 미 대통령은 빈 라덴을 악마로 표현하면서 응징을 다짐했고, 빈 라덴 역시 미국을 제국주의 악마라고 했다. 누가 악마일까? 무언가 과장되어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악마라고 규정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한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는 흑백논리로 끔찍한 전쟁까지도 일어난다. 또 다른 예로는 ‘선택적 추상화’가 있다. 사건의 주된 내용은 무시하고 특정한 일부의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여 전체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앞뒤 전체 맥락은 무시하고 문제된 발언 하나에 초점을 맞추어 타인을 공격할 때 주로 사용된다. 언론에서 정치권을 비난할 때 자주 등장한다. 또 다른 예이다. 비행기 사고로 인한 죽음의 공포로 비행기 여행을 꺼리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동차로는 여행을 다닌다. 비행기 사고보다 승용차 사고로 인해 죽는 경우가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생각을 한다. 파국성이 클 경우 그 사건의 발생 가능성도 매우 높게 인식하는 ‘가용성 어림법’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비합리적인 생각들은 모두 나열하기조차 쉽지 않다.

얼마 전에 ‘거짓말’이라는 주제를 가진 작품전시회를 본 적이 있었다. 갈수록 정보가 넘치고, 주의 주장이 강해지고, 저마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요즈음, 이러한 현상을 작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전시회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작품전시회를 소개한 팸플릿에 ‘탈진실의 시대’라는 용어가 눈에 띄었다. 탈진실의 시대는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이다.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여론을 형성하는 방법도 매우 다양해졌고, 전파 속도도 매우 빠르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사회현상에 대한 정보가 오늘날처럼 넘쳐나지 않았다. 신문이나 방송, 책자를 통한 정보가 모두였다. 하지만 지금 수많은 정보가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그곳에는 참된 정보와 거짓된 정보가 뒤섞여져 있다. 개인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한 수많은 정보들을 페이스북이나 카톡방을 통하여 순식간에 퍼 나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많은 정보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까지 가기도 한다. 집단의 의견에 동조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을 뒷받침해주는 정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신념을 더욱 더 공고히 한다. 이른바 확증 편향이다. 우리는 그러한 탈진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보수 편향이 매우 강한 유튜브를 자주 보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도로 건설과 관련한 교통 전문가이다. 어느 날 경제와 관련된 유튜브를 보고, ‘경제와 관련해서 이렇게 잘 설명해 놓은 유튜브가 없다’고 하면서 나에게 보라고 권했다. 나와는 매우 친한 친구이다. 나는 친구의 성의를 봐서 앞부분만 보고 나머지 부분을 보지 않았다. 인내 없이는 절대로 끝까지 볼 수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런 내용이다. “이 세상에 평등이란 것은 없다. 시장 경쟁에 의한 자유만이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라는 논리가 주류를 이룬다. 그것도 유명 대학 교수의 말이다. 게다가 외국 교수도 초빙하여 대담을 한다. 자유시장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소득불평등, 빈부격차의 심화로 발생되는 사회 불안요소는 지적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회 불안요소가 궁극에는 사회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유튜브들이 그렇다. 편파적이고, 자극적인 표현들이 많다. 그렇게 제작을 해야 구독자가 많아지는 모양이다. 물론 취미 생활과 관련된 유튜브, 인문사회 분야의 다양한 정보를 전해주는 유튜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주장만을 전파하는 유튜브들이 우리 주변에 넘쳐흐르고, 그러한 일방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각종 매체들이 ‘탈진실의 시대’를 확대 재생산한다.

우리는 ‘내가 진실이기를 원하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나와 유사한 생각을 하는 글이나 나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유튜브들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찬사를 보낸다. 나에게 알게 모르게 주입된 타인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인간의 한계! 그렇게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인지 도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라는 자기반성이다. 자기반성 없이 ‘나의 판단들은 항상 합리적이다’라고 믿고 행동할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사고의 융통성이 없으니 다양한 생각들을 받아드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폐쇄적이기 조차한 나르시시즘은 우리는 가장 경계해야 한다. 가치판단에는 진실이 없다. 산이 좋을 수도 있고, 바다가 좋을 수도 있다. 진보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보수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신념에 불과한 가치판단을 가지고 남들과 자주 말다툼을 한다. 그곳에는 진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자기 말이 옳다고 싸운다.

문제는 자신의 가치판단을 뒷받침해주는 각종 사실 판단들에 있다. 다양한 사실판단에 근거해서 우리는 사건들에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탈진실의 시대에 왜곡된 각종 정보가 넘치다 보니 올바른 사실판단을 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팩트체크가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탈진실의 시대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유한성, 그리고 나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논리적 오류들에 대한 자기반성적인 통찰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나와 생각이 다른 친구들의 글에 대해서 또 다시 댓글을 단다. 그러고는 후회한다. 탈진실의 시대에 진실을 찾기 위한 나만의 발버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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