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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그리운 시절 / 목성균

부흐고비 2020. 12. 29. 13:11

그리운 시절들은 다 여름에 있다. 여름이 젊음의 계절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성장만 하면 되는 여름은 무모하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존재의 치열한 향일성(向日性)들은 아픔도 모르고 세포분열에 주력한다. 아, 그리운 시절, 그 여름날들.

산그늘 진 갈매실 냇가의 자갈밭은 그 시절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개성대로 솔직하던 고향친구들이 은밀하게 모여서 주량을 늘여 가고, 끽연 폼의 멋을 창출하고, 여울낚시의 기량을 숙달시키고, 매운탕 끓이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음모하고 실행했다.

이발소집 주호는 ‘홍은반점’에 새로 온 색시에게 반했다. 우리는 주호가 밤중에 색시를 겁탈하러 주방의 환기창을 타넘어 가는 것을 음모하고 실행했다. 성장은 무모한 만큼 미숙해서 우리들의 음모는 주호를 아직 국물이 덜 식은 국수가락 삶는 솥에 빠뜨리고 말았다. 뜨거워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는 주호를 주인이 달려 나와서 닭장에 든 살쾡이 때려잡듯 자장 볶는 무쇠냄비로 때려잡았다. 겁탈은 미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주호의 모험심이 얼마나 순진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그 산읍까지 흘러온 색시가 알 리 만무했다. 그 색시뿐 아니다. 우리도 더 성숙하고 더 까바라진 인생에 진입했을 때서야 그것을 아름다운 사실로 의견일치를 보았고, 두고 기억하는 것이다.

굽어서 흘러온 냇물은 자근자근 속삭이며 한들 모퉁이를 돌아서 흘러갔다. 노을이 빨갛게 물든 수면 위로 피라미들이 은빛 찬란하게 뛰어올랐다. 피라미의 도약은 수면을 나는 날벌레 포식(捕食)의 한 방법에 불과한 것이지만 성장기의 미숙한 감수성은 피라미가 노을에 취해서 무모한 도약을 하는 것이라고 눈물겨워했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찬란한 도약을 해볼 것인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지는 노을이 나를 더욱 눈물겹게 했다.

햇빛은 1064미터 높이의 조령산 봉우리에 걸리고, 냇물과 나란히 가는 신작로로 막차가 뽀얗게 먼지를 날리면서 산읍으로 들어왔다. 그때서야 최선을 다해서 울던 말매미가 울음을 뚝 그쳤다. 우리는 매미의 울음이 시사(示唆)하는 바에 대해서 유의(有意)하지 못했다. 긴 세월을 땅벌레로 살고 나서야 비로소 매미가 되어 우는 것이다. 삶의 환희와 삶의 결론을 얻기 위한 생명의 치열한 절규인 것을 우리는 한낱 매미의 한유(閒遊)로만 인식했다.

해가 넘어가고 시원한 바람이 휘도는 신작로 소몰이꾼이 소를 몰고 지나갔다. 소를 한 마리는 앞세우고 한 마리는 뒤에 세우고 소몰이꾼은 가운데 서서 걸어갔다. 소몰이꾼은 저 큰 짐승을 어떻게 가운데서 고삐 하나로 통제할 수 있는지 궁금했을지언정 이 쇠전에서 다음 쇠전으로 밤을 새워 가는 그 묵묵한 소몰이꾼의 밤길이 꿋꿋한 그의 일관된 생애임을 우리는 알 리 없었다. 나는 자갈밭에 누워서 등허리에 배기는 자갈들의 아픔을 참고 밤하늘에 하나둘 돋아나는 별을 세며 생각했다. 소몰이꾼과 소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어찌 냇물만 흘러가고, 소몰이꾼만 밤길을 걸어갔으랴. 아지트인 그 냇가에 성장기의 미숙한 해프닝만 남겨 두고 우리들의 생애도 각자의 밤길을 꿋꿋하게 혹은 경거망동하게 개성대로 참 멀리 와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아른아른 그리운 시절은 이 여름 안에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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