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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폭설 / 노혜숙

부흐고비 2021. 1. 19. 13:01

주점 밖에는 폭설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떤 이는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읊조리고 어떤 이는 돌아갈 길을 걱정했다. 한줌 회한과 그리움을 술잔에 섞어 마시는 밤, 사람들은 문득 말을 멈추고 하염없는 눈발에 시선을 던졌다.

우리는 자정이 넘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중년의 때 묻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삼삼오오 모인 자리였다. 무소의 뿔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생이었다. 다시 돌아간대도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수시로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게 있었다. 한 번도 제대로 사랑해보지 않았다는 후회였다. 문득 닥친 인생의 노을 앞에서 사람들은 좀 더 솔직하고 뻔뻔해졌다.

구속과 질서라는 양면의 날을 가진 도덕의 경계를 이야기할 때는 정답을 찾지 못한 이의 머뭇거림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대화는 사뭇 삐딱하고 질펀했으나 현재진행형일 수 없는 로맨스에 대한 쓸쓸한 푸념일 뿐이었다. 꺼져가는 불씨를 다독이는 나이에 아직도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고 싶은 건지 몰랐다. 그러나 누구도 현실이라는 경계를 넘어 사랑할 수는 없었다. 애초 19세기 법전으로 21세기 욕망을 해독하는 건 불합리한 일일 터였다. 그럼에도 규범에 길들여진 사람들을 더 옭죄게 하는 건 정답보다 사회적 시선, 집단의 평가였다. 중년 남자들은 월경越境의 대가를 감당하기엔 너무 주눅 들어버린 노새가 되어 있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피눈물을 흘린대도 눈물의 씨앗이 마르는 일은 결단코 없을 터였다. 그 씨앗으로 인해 인생은 알록달록한 눈물의 역사를 만들어오지 않았던가. 성애적 사랑은 본질적으로 쾌락을 근간으로 하는 무질서한 충동이다. 불나방의 전적 헌신을 요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무모한 감정. 알량한 경계쯤으로 다스릴 수 있는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나는 여러 번 한계령 넘기를 꿈꾸었다. 삼류드라마처럼 뻔한 결말일 줄 알면서도 끈덕지게 나를 들까부는 이 뻔뻔한 욕망은 대체 무엇인가.

사람들이 굽이굽이 노래를 꺾어 넘길 때 나는 주책없이 콧등이 시큰거렸다. 덧없이 흘러 가버린 청춘에 대한 애도인 양 노래는 절절하고 비장했다. 리듬에 맞춰 뻣뻣한 몸을 엇박자로 흔들면서도 나는 쉽게 달아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명료한 자의식 속에서 그들의 성근 머리칼이, 나의 무너진 춤사위가 가풀막에 홀로 선 나무의 흔들림처럼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어쩌면 흔들림은 바람 많은 세상을 유연하게 건너는 한 방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고래 사냥의 꿈을 접지 않은 시든 청춘들을 위해 나는 한껏 탬버린을 흔들어 주었다.

일행은 새벽이 오도록 하얗게 눈을 맞으며 걸었다. 주점과 노래방에서도 다 풀어내지 못한 속내들이 허기처럼 남아 있었다. 코끝은 시리고 손은 곱았으나 가슴의 뜨거운 불길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일탈의 해방감이 폭설마저 낭만적으로 해석할 여유를 가져다준 것일까. 일행은 사소한 농담, 의미 없는 몸짓에도 키득거리며 웃었고 푹푹 빠지는 눈밭에서 다정한 연인들처럼 사진도 찍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제의 회한 내일의 근심일랑 모두 잊어도 좋았다. 유예된 일상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란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얼음처럼 찬 손을 꼭 쥐었다. 그는 잡은 손을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안은 따뜻했다. 내 손은 온순했고 그의 손의 온기로 풀려가고 있었다. 그저 그렇고 그런 말들이 오갔다. 말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낭만인지 연민인지 분석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 사이도 아닌 두 사람이 그렇게 손을 잡고 편안하게 눈길을 걷는다는 것, ‘그냥 있어 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말없이 그냥 있어 주는 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건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아늑하고 편안했다. 태풍 같은 열정이 아니면 어떤가. 한줌 온기로 족했다. 굳이 사랑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대로 끝이어도 상관없었다. 한순간 축제였고 한순간 폭설 속의 무구를 누렸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여전히, 가끔씩 한계령 연가를 읊조리겠지만 그 또한 아득한 추억 너머로 사라질 일임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 사라질 시간들 그 찰나 속에 온몸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16센티 이상의 폭설이 내린 그 새벽의 전주는 우리들의 한계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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