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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김선순 시인

부흐고비 2021. 1. 19. 16:06

저물어 가는 여자 / 김선순

 

지랄은 일상어라서

교양과는 거리가 멀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르면서

굽은 허리로는 ㄱ자를 그렸다

눈치와 오기로 한세상을 버틴

까막눈 여자

손바닥만한 밭뙈기로 출근해

갈퀴같은 손으로 진종일 호미질을 한다.

 

나긋나긋 향기나는 삶은

이 여자의 것이 아니어서

허약한 가장을 먼저 보내고

자식 일이라면 지옥 염라대왕과도

물 불 가리지 않고 맞장뜰

웬만한 사내보다 강단 쎈 여자

우려 먹을대로 우려먹어서

숭숭한 사골 뼈다귀같이 버석이는 여자가

지 편할땐 잊고 필요할때만 찾는

늙어가는 내 새끼를

철통같이 보듬는다.

 

서쪽 하늘 생의 고도가 간당간당

어스름 저녀나절로 저물어 가는

엄마라는 이름의 여자.

 

 

떳다! 별다방 미스킴 / 김선순

후끈한 바람이 먼저/ 그녀를 훑고 지난다// 속눈썹 짙게 그늘져 아스라한 눈매/ 요염하게 까만점 하나가 붙은/ 도톰하고 샛빨간 입술/ 찰싹 달라붙은/ 땡땡이 주홍 블라우스에 초록 미니스커트/ 아찔한 뒷태를 황홀히도 떠받친 하이힐,/ 떴다! 육감적인 그녀가// 입술을 오므리고/ 풍선껌을 불어 터트리는 모습에/ 사내들은 차라리/ 그 입안의 껌이라도 되어/ 노곤노곤 해지고 싶겠지/ 금방이라도 앞 단추를 터트리며/ 해방을 부르짖을 것만 같은/ 블라우스 속 하얀 유방이/ 위태, 위태// "옵빠 안녕"// 빨간 화이바에 스쿠터를 탄/ 치명적인 그녀의 콧소리에/ 늙거나 젊거나 수컷들의 심장은/ 터질듯 뜀박질을 서두르고/ 자제력 잃은 아랫도리는 뻐근하게/ 텐트를 치겠지// 바람은 알까/ 옵빠란 촌수를.//

 

 

사랑일까요 / 김선순

늘 사랑이 고픈 여자는/ 싱싱한 날것 냄새나는 연애를 꿈꾸었어요/ 작은 불똥에라도 닿기를/ 휘발성 강한 감수성은 위험 수위로 일렁였지요/ 꽃마다 귓가에 입김을 불어 넣고/ 부풀려지는 꽃마다 가슴을 탐하고/ 반쯤 열린 꽃마다 입술을 훔치는/ 나쁜 남자의 눈빛을 외면할 용기는 버렸어요/ 사랑에 허기진 여자는/ 감정의 진위 따위를 타진할 시간도 없이/ 증명되지 않은 남자를 덥썩 안고 뜨거웠지요/ 하나하나 벗겨지는 남자가 불쌍하고 지겨워져요/ 애착과 집착으로 숨통을 조이지만/ 사랑과 연민을 혼동하며/ 손 놓을 용기는 버리기로 해요// 이 또한 사랑이어야 해요//

 

 

, 여자의 궁 / 김선순

여자가 궁을 연다// 가을 깊도록/ 붉혔던 정사에/ 미식미식/ 입덧도 없이// 봉긋 부푼/ 보송한 젖 무덤/ 풀어 헤치고// 아직은 못다한/ 시린 바람 속// 기어히/ 살구빛 여린 속살을/ 내보이며// 여자의 궁을 열고/ 해산하는 봄.//

 

 

바람처럼 들풀처럼 / 김선순

들풀에 바람이 찾아오면/ 그 바람 타고/ 그 바람 보다 먼저/ 그 바람 안고 누워보라// 살랑이는 바람에/ 덩달아 설레여도 보고/ 순응으로 누운 풀잎처럼/ 허망한 욕심 놓아/ 그 바람의 물살에 흠뻑 젖어도 보라// 단 한 번/ 걸치지도 잡히지도 않고/ 자유로이 길을 내는 바람 앞에/ 잠시잠깐 내맡긴들/ 뿌리까지 흔들릴까// 삶 앞에 지친 영혼아/ 강하면 부러지기 밖에 더 할까/ 때론/ 적당함의 중용과 타협의 현명함으로/ 진정 자유롭길// 지나온 날 되짚어 보니/ 결국 거기서 거기지 않은가/ 거침없는 바람으로/ 달려도 보고/ 풀처럼 유연히 흔들려도 보자// 한 번 쯤/ 자유로운 영혼으로/ 흘러가도 좋으리/ 한 번쯤 나를 놓아/ 들풀처럼 흔들려도 좋으리.//

 

 

 

충남 부여 출생, 현대시선 문학사 신인상 수상, 월간 모던 포엠 작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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