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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정현종 시인

부흐고비 2021. 1. 19. 15:55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그대는 별인가 - 시인을 위하여 / 정현종

하늘의 별처럼 많은 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모래/ 반짝이는 건 반짝이는 거고/ 고독한 건 고독한 거지만/ 그대 별의 반짝이는 살 속으로 걸어들어가/ "나는 반짝인다"고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대의 육체가 사막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밤이 되고 모래가 되고/ 모래의 살에 부는 바람이 될 때까지/ 자기의 거짓을 사랑하는 법을 연습해야지/ 자기의 거짓이 안 보일때까지.//

 

 

     사물의 꿈1 -나무의 꿈 / 정현종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生)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니체의 말 / 정현종

아름답게 있는 것보다/ 거대하게 있는 것이/ 더 쉬운 법//

 

아침 / 정현종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겉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경청 / 정현종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 오늘날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담에 뚫린 구멍을 보면 / 정현종

담에 뚫린 구멍을 보면 內心/ 여간 신나는 게 아니다/ 다람쥐나 대개 아이들 짓인/ 그리로 나는 아주 에로틱한/ 눈길을 보내며 혼자/ 웃는다 득의양양/ 담이나 철책 같은 데 뚫린/ 구멍은 참 別味가 아닐 수 없다/ 다람쥐가 뚫은 구멍이든/ 아이들이 뚫은 구멍이든/ 그 구멍으로는 참으로 구원과도 같은/ 法悅이 드나들고 神法조차도 도무지/ 마땅찮은 공기가 드나든다!/ 오호라/ 나는 모든 담에 구멍을 뚫으리라/ 다람쥐와 더불어/ 아이들과 더불어//

 

하늘을 깨물었더니 / 정현종

하늘을 깨물었더니/ 비가 내리더라/ 비를 깨물었더니/ 내가 젖더라//

 

가을, 원수 같은 / 정현종

가을이구나! 빌어먹을 가을/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 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 원수 같은.// 나는 이를 깨물며/ 정신을 깨물며, 감각을 깨물며/ 너에게 살의를 느낀다/ 가을이여, 원수같은.//

 

말하지 않은 슬픔이 / 정현종

말하지 않은 슬픔이 얼마나 많으냐/ 말하지 않은 분노는 얼마나 많으냐/ 들리지 않는 한숨은 또 얼마나 많으냐/ 그런 걸 자세히 헤아릴 수 있다면/ 지껄이는 모든 말들/ 지껄이는 입들은/ 한결 견딜 만하리.// 

 

 

            가객(歌客) / 정현종

세월은 가고/ 세상은 더 헐벗으니/ 나는 노래를 불러야지/ 새들이 아직 하늘을 날 때// 아이들이 자라고/ 어른들은 늙어가니/ 나는 노래를 불러야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동안// 무슨 터질 듯한 立場이 있겠느냐/ 항상 빗나가는 구실/ 무슨 거창한 목표가 있겠느냐/ 나는 그냥 노래를 부를 뿐/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는 동안// 나그네 흐를 길은/ 이런 거지 저런 거지 같이 가는 길/ 어느 길목이나 나무들은 서서/ 바람의 길잡이가 되고 있는데/ 나는 노래를 불러야지/ 사람들이 乞神을 섬기는 동안// 하늘의 눈동자도 늘 보이고/ 땅의 눈동자도 보이니/ 나는 내 노래를 불러야지/ 우리가 여기 살고 있는 동안//

 

깊은 흙 / 정현종 

흙길이었을 때 언덕길은/ 깊고 깊었다/ 포장을 하고 난 뒤 그 길에서는/ 깊음이 사라졌다// 숲의 정령들도 사라졌다// 깊은 흙/ 얄팍한 아스팔트// 짐승스런 편리/ 사람다운 불편// 깊은 자연/ 얇은 운명//

 

화음 / 정현종

그대 불붙는 눈썹 속에서 일광(日光)/ 은 저의 머나먼 항해(航海)를 접고/ 화염(火焰)은 타올라 용약(踊躍)의 발끝은 당당히/ 내려오는 별빛의 서늘한 승전(勝戰) 속으로 달려간다./ 그대 발바닥의 화조(火鳥)들은 끽끽거리며/ 수풀의 침상(寢床)에 상심(傷心)하는 제.// 나는 그동안 뜨락에 가안(家雁)을 키웠으니/ 그 울음이 내 아침의 꿈을 적시고/ 뒤뚱거리며 가브리엘에게 갈 적에/ 시간(時間)은 문득 곤두서 단면(斷面)을 보이며/ 물소리처럼 시원한 내 뼈들의 풍산(風散)을 보았다.// 그 뒤에 댕기는 음식(飮食)과 어둠은/ 왼 바다의 고기떼처럼 살 속에서 놀아/ 아픔으로 환히 밝기도 하며/ 오감(五感)의 현금(弦琴)들은 타오르고 떨리어/ 아픈 혼()만큼이나 싸움을 익혀 가느니.// 그대의 숨긴 극치(極致)의 웃음 속에/ 지금 다시 좋은 일이 더 있을리야/ 그대의 질주(疾走)에 대해 궁금하고 궁금한 그 외에는/ 그대가 끊임없이 마루짱에서 새들을 꺼내듯이/ 살이 뿜고 있는 빛의 갑옷의/ 그대의 서늘한 승전(勝戰) 속으로/ 망명(亡命)하고 싶은 그 외에는.//

 

무지개 나라의 물방울 / 정현종

물방울들은 마침내/ 비껴오는 햇빛에 취해/ 공중에서 가장 좋은 색채를/ 빛나게 입고 있는가./ 낮은 데로 떨어진 운명을 잊어버리기를/ 마치 우리가 마침내/ 가장 낮은 어둔 땅으로/ 떨어질 일을 잊어버리며 있듯이/ 자기의 색채에 취해 물방울들은/ 연애와 무모(無謀)에 취해/ 알코올에, 피의 속도에/ 어리석음과 시간에 취해 물방울들은/ 떠 있는 것인가./ 악마의 열정 또는/ 천사의 열정 사이의/ 걸려 있는 다채로운 물방울들은.//

 

새로 낳은 달걀 / 정현종

새로 낳은 달걀,/ 따뜻한 기운,/ 생명의 이 신성감(神聖感),/ 우주를 손에 쥔 나는/ 거룩하구나/ 지금처럼/ 내 발걸음을 땅이/ 떠받든 때도 없거니!//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 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갈증이며 샘물인/ 정현종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세상의 나무들 / 정현종

세상의 나무들은/ 무슨 일을 하지?/ 그걸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 허구한 날 봐도 나날이 좋아/ 가슴이 고만 푸르게 푸르게 두근거리는// 그런 사람 땅에 뿌리내려 마지않게 하고/ 몸에 온몸에 수액 오르게 하고/ 하늘로 높은 데로 오르게 하고/ 둥글고 둥글어 탄력의 샘!// 하늘에도 땅에도 우리들 가슴에도/ 들리지 나무들아 날이면 날마다/ 첫사랑 두근두근 팽창하는 기운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 정현종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 -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 둘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생채기 / 정현종

숲에 가서 나무 가시에 긁혔다. 돌아와서 그걸 들여다본다. 순간. 선연하게/ 신선하다. (숲 냄새, 초록 공기의 폭발, 깊은 나무들, 싱글거리는 흙, 메아리/ 와도 같은 하늘) 우리가 살다가, 어떻든, 무슨 생채기는 날 일이다. 팔이든/ 다리이든 가슴이든 생채기가 난데로 열리는 서늘한 팽창……지평선의 숨결,/ 둥글게 피어나는 땅, 초록 세계관, 생 바결람……// 생채기는 말한다/ 네 속에도 피가 흐르고 있다 관습이여/ 네 속에도 피가 흐르고 있다 잔인의 굴레여/ 피가 흐르고 있다 모든 다람쥐 쳇바퀴여// 그렇다면 시의 언어는 우리의 생채기이니/ 그건 실로 우주적 풀무가 아니겠느냐//

 

흙냄새 / 정현종

흙냄새 맡으면/ 세상에 외롭지 않다// 뒷산에 올라가 삭정이로 흙을 파헤치고 거기 코를 박는다. 아아, 이 흙냄새!/ 이 깊은 향기는 어디 가서 닿는가. 머나멀다. 생명이다. 그 원천. 크나큰 품./ 깊은 숨. 생명이 다아 여기 모인다. 이 향기 속에 붐빈다. 감자처럼 주렁주렁/ 딸려 올라온다.// 흙냄새여/ 생명의 한통속이여.//

 

생명의 아지랑이 / 정현종

내 평생 노래를 한들/ 저 산에서 생각난 듯이 들리는,/ 생명바다 깊은 심연을 문득 열어 제끼는/ 꿩 소리 근처에나 갈까./ 벌레와 흙과 그늘이/ 목에 찬 듯한 허스키,/ 무슨 따위 커녕은/ 그냥 제 생명에 겨운,/ 도무지 말 같지도 않은/ 꿩 소리 근처에나 갈까.// 만물 속에서 타오르는/ 저 생명의 아지랑이를/ 내 노래는 숨 쉬느니/ 말이여, 바라건대/ 생명의 아지랑이여.//

 

그 굽은 곡선 / 정현종

내 그지없이 사랑하느니/ 풀 뜯고 있는 소들/ 풀 뜯고 있는 말들의/ 그 굽의 곡선!// 생명의 모습/ 그 곡선/ 평화의 노다지/ 그 곡선// 왜 그렇게 못 견디게/ 좋을까/ 그 굽은 곡선!//

 

생명의 만다라 / 정현종

어릴 때 참 많이도 본/ 나팔꽃/ 아침을 열고/ 이슬을 낳은 꽃/ 아침하늘의 메아리/ 이슬 맺힌 꽃/ 이슬에 비췬 꽃 만다라/ 의 꽃 만다라/ , 붉은 이슬/ 의 메아리, / 메아리 속에 생명 만다라/ 눈동자/ 에 맺히는 이슬/ 그 이슬 속의 삶 만다라.//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 정현종


마음먹기에 달렸어요./ 마음을 안 먹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일이 없어요// 마음에 저절로 물드는/ 저 살아 있는 것들의 그림자/ 있는 그대로 물드는/ 마음먹은 뒤에 그래요.// 마음을 먹는다는 말/ 기막힌 말이에요./ 마음을 어쩐다구요?/ 마음을 먹어요!/ 그래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거예요.// 마음먹으니/ 노래예요./ 춤이예요./ 마음먹으니/ 만물의 귀로 듣고/ 만물의 눈으로 봐요.// 마음먹으니/ 태곳적 마음/ 돌아오고/ 캄캄한데/ 동터요.//

 

 


 

정현종은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3살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경기도 화전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는데, 이때의 자연과의 친숙함이 그의 시의 모태를 이룬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신태양사·동서춘추·서울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였다. 그 후 1974년 마국 아이오와 대학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며, 돌아와서는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장한 그는 지금까지 쉼 없는 창작열과 자신의 시 세계를 갱신하는 열정으로 살아 있는 언어,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열어 보여왔다. 첫 시집 『사물의 꿈』을 출간한 이래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 『광휘의 속삭임』 등의 시집과, 『고통의 축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슬』 등의 시선집을 펴냈다. 또한 시론과 산문을 모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숨과 꿈』 『생명의 황홀』 등을 출간했으며, 다수의 해외 문학 작품집을 번역했다. 그리고 2015년 4월, 등단 50주년을 맞은 시인은 그의 열번째 시집인 『그림자에 불타다』와 산문집 『두터운 삶을 향하여』를 상자했다.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 부문), 파블로 네루다 메달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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