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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낚싯바늘 / 이용수

부흐고비 2021. 1. 21. 17:08

문학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그렇게도 원하던 글쓰기에 관한 강의다. 주제는 '좋은 수필 창작론' 이다. 이 강의에 빠져드는 순간 머리에 번쩍 하는 게 있었다. 바로 저거다. 그만 그 낚싯바늘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나는 인의(仁義)와 절개(節介)를 존중히 여기는 고장인 경남 고성에서 해방되기 한 해 전 소작농의 집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삼대독자이신 아버지는 무남독녀였던 어머니를 만났다. 내 밑으로 내리 다섯의 동생을 더 낳은 것으로 보아 두 분의 어린 시절이 각각 무척이나 외롭게 지내셨나 싶었다.

아홉 남매나 되는 많은 가솔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아버지의 등짐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는 늘 타지방에 나가 돈을 벌거나 아니면 남의 집으로 삯일을 하러 나가셨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우리 집은 언제나 적막강산이었다. 어머니 또한 어린 우리들을 집에 두고 두렛일을 나가셨다. 그럴 때면 형은 내 밑의 동생을, 나는 그 밑의 동생을 업고 종일 심심하게 놀았다.

초등학교 육학년이 되었다. 사학 년 때 월사금을 못낸 나를 집으로 내쫓던 그 선생님을 육학년 담임으로 다시 만났다. 그 분이 나를 불렀다. "밀린 월사금을 내지 않으면 졸업장을 받을 수 없는데 어쩔래." 담임선생님이 한 말을 어머니에게 풀죽은 소리로 말했더니 어머니는 "돈을묵꼬 죽을라고 해도 돈이 없어 못 죽는다. 그라모 졸업하지마라."고 하셨다.

졸업 날이다. 식이 끝나고 선생님이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단상으로 나오게 하여 졸업장을 주었다. 내 이름을 부를까 하고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선생님은 끝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는 선생님은 교실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졸업장을 받지 못한 나는 아이들이 나간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이 년 후부터 남의 집일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중학 교복을 입고 읍내 학교에 다니는 것이 몹시 부러웠다.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남의 집에 살다보니 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냈다. 장년이 되어서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바쁘고 고달픈 삶은 계속되었다. 뾰족한 수가 없는 내 딱한 신세를 신에게 하소연도 해보았다.

내 가정에 또 한 번 가슴 아픈 일이 생겼다. 아내가 중환으로 앓다가 그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때 외동아들은 중3이었다. 내 직업은 설비기사였는데,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팍팍한 삶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얼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지만, 직업관계로 시간이 맞질 않아 아들은 언제나 아침밥을 굶어야했다. 아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면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밤 열두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왔다. 아침밥을 해 먹이지 못하는 아비의 마음이 아파 글을 몇 자 적어 아들놈의 책상 위에 올려놓곤 했지만, 몇 날이 지나도 그대로 놓여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열두시가 지나 들어온 아들에게 아버지가 써 놓은 글을 읽어봤느냐고 물었다. 공부에 지쳐 있던 아들의 말에 나는 놀랐다. "아버지 한글부터 제대로 배우세요."했다. 흔들리고 있는 아들을 위로해 주려고 쓴 글이었는데, 가난하고 못난 아비가 싫었던 모양이다. 아들의 표정은 괴로움을 외면하려는 것 같이 태연해 보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일상의 삶에 찌던 어둠이 가득 깔려있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말들 하지만 그때의 내 가난은 분명 죄였다.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살아야 하는 나는 하늘을 보기가 부끄럽고 괴로웠다.

내 나이 예순일곱에 어느 문학 세미나에 참석했다. 귀가 쫑긋해졌다. 연달아 몇 주 동안 강의를 들었다. 저분에게 글쓰기를 배워 감동적인 글을 써서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물질적으로는 아비 노릇을 제대로 못했지만, 아비가 쓴 좋은 글을 통해 가난에서 찌든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달콤한 강의에 그 낚싯바늘을 아주 마구 삼켜버렸다. 그 후로 그분의 강의는 여타 일을 버리고 다 들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모두 낚싯바늘을 삼킨 사람들뿐이다.

가르치는 글맛이 좋아 만족스러웠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낭패가 다가왔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체계적인 공부를 하였고 글 깨나 쓰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과 맞짱을 뜨려니 내 실력은 골리앗 장수 앞에 선 소년 다윗이라고나 할까, 칠십을 눈앞에 둔 나의 마음은 초조했다. 강의 내용은 이해가 되는데 배움의 기초도 없는 나의 두뇌는 촌로의 손바닥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어 배운 대로 글을 쓰려니 마음 같지 않았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흐름도 매끄럽고 향기도 난다. 그런데 내 글은 그렇지 못하고 자꾸 막히곤 한다. 안타까운 마음만 늘어간다. 그러나 삼킨 바늘을 도로 뱉어 낼 수도 없어 열심히 책을 읽으며 글을 써보기를 반복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차츰 책속의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까지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앞뒤 가리지 않는 천둥벌거숭이처럼 훌훌 벗어 버리고 났더니, 내 자신의 가치관이 달라져 있다.

멋모르고 덥석 삼킨 낚싯바늘이 어둡고 긴 터널의 고행을 거쳐 밝고 환한 세상에 나의 자화상을 드러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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