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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두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낚시에서는 연실 나오는데 또 한 사람의 낚시에서는 피라미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한 마리도 못 잡은 사람이 연실 잡아대는 사람한테 가서 미끼를 무엇으로 쓰냐고 물었다. 떡밥을 쓴다고 했다. 자기도 떡밥을 쓰는데 한 마리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무슨 비결이 있지 않느냐며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것이었다. 너무 끈덕지게 조르는 통에 귀찮아서 송충이로 밑밥을 주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는 뒷산으로 올라가더니 송충이를 잡아서는 짓이겨 흙과 섞어뿌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밑밥을 뿌리자 이윽고 고기가 잇달아 나오기 시작하고 연실 나오던 사람의 낚시에서는 입질이 끊어졌다. 송충이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 낸 그는 빈 도시락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가 가득 잡았다. 돌아와 짓이겨 흙과 섞어 밑밥으로 뿌렸는데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몇 해 전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1급 정교사 취득을 위한 강습회가 있었는데 강사로 나간 적이 있었다.

강습회가 끝나고 수강생들과 한담을 나눌 때 들은 한 여선생의 꿈 이야기다. 양손에 짐을 들고 차를 타려고 구름다리를 올라가는데 '뚜우!' 하고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막 떠난다. 잡아타려고 급히 뛰어가는 순간 오르가슴을 느꼈다. 그 후로 꿈이 아니더라도 짐을 들고 구름다리를 오를 때 기적소리를 들으면 그 자리에서 오르가슴을 겪게 된다고 한다.

이 여선생은 학생 시절에 열차에서 알게 된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그 남자를 한 번 보더니 자기에게 양보해 달라고 애원한다. 농담으로 그러마 했다. 친구는 그 남자와 적극적으로 사귀어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후 그녀도 학교를 나오고 취직 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런데 열차에서 알게 된 남자의 생각이 결혼 후에도 문득문득 나고 열차를 타게 되면 더욱 간절했다.

이 여선생의 경우 열차는 사랑과 낭만의 열차이며 열차는 꿈에서 남자의 화신이며 기적 소리는 짙은 사랑의 노래였던 것이다.

아끼는 제자가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었다. 그는 상금을 받아들고 나오면서 무척 흐뭇했다. 자기의 힘으로 얻은 첫 번째 돈이다. 이 돈을 어디에 먼저 쓸까 하고 생각하면서 신문사 정문을 나오는데 눈발이 희끗희끗 날렸다. 눈발을 보자 문득 가난한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주와 사과를 사 가지고 망우리로 향했다. 아는 무덤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난한 영혼과 이야기를 하려면 망우리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 택시를 잡아탔다. 무덤에 다다르자 눈은 함박눈으로 변하여 무덤을 은색으로 덮었다. 어떤 것이 가난한 무덤일까. 비석도 없는 초라한 무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리번거리다가 기왕이면 소녀의 무덤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코스모스 대궁이 우뚝 서 있는 초라한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이 소녀의 무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앞에 앉았다. 우선 사과 몇 알을 무덤 앞에 놓으며 술을 따랐다. '가난한 소녀여! 그대에게 이 술을 드리노라'고 하며 무덤에 부었다. 이번엔 따라서 자기가 마셨다. 무덤에 붓거니 마시거니 하면서 4홉들이 소주 두 병을 다 비웠다. 점심도 안 먹은 빈속에 안주도 없는 술을 마셔 잔뜩 취해서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눈발은 점점 더 굵어졌다.

꿈에 넓다란 꽃밭이 보인다. 장미, 튤립 등 서양의 아름다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꽃밭 한가운데로 조붓하게 길이 나 있다. 꽃밭 사이 좁은 길로 들어서자 튤립 한 송이가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쑥쑥 올라오더니 고개를 갸웃거리고 생긋 웃으며 아양을 떤다. 참 이상스런 꽃도 다 있구나 하고 지나치려고 하자 꽃송이가 손에 와 닿는다.

꽃송이를 따서 손바닥에 놓자 꽃잎이 떨어지며 그 꽃술 안에서 조그만 아주 조그마한 예쁜 여자가 손바닥 위에 선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거인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소인처럼 아주 작은 여인이었다. 소인은 깡총 손바닥에서 뛰어내린다. 순간 어엿한 숙녀로 변하였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또 있을까 할 정도의 미인이었다.

그런데 이상스러운 것은 이야기를 몇 마디 하는 동안에 그녀의 고운 얼굴이 점점 핏기를 잃고 윤기 나던 머리카락도 까슬아져 보기 싫었다. 한참을 지나니까 눈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추녀가 되어 눈을 돌렸다. 그러자 연인은 싫어서 그러느냐고 바짝 다가선다. 몸이 오싹할 정도로 싫어서 뒤로 물러났다. 다시 그녀가 바짝 다가선다. 싫어서 도망치다가 한참 후에 돌아보니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놓여 고개를 넘었다. 고개를 넘자 거기에도 넓다란 꽃밭이 펼쳐진다. 꽃은 들국화, 도라지 등 우리나라 고유의 꽃들이다. 좁다란 길이 있어 지나가는데 다른 꽃들은 갸웃거리지만 그 가운데 도라지꽃 한 송이만이 수줍어서 고개를 못 든다. 그 꽃을 꺾어 꽃송이를 손바닥에 놓았다. 꽃잎이 떨어지고 앞서와 같이 조그마한 여자가 뛰어내리더니 어엿한 숙녀로 변하였다. 이 아가씨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점점 얼굴이 고와 보였다. 그녀 앞으로 다가서자 여자는 돌아선다. 바짝 뒤따르자 그녀는 피해서 도망친다. 뒤따르며 '가난한 소녀의 영혼이여!' 하고 소리를 치다가 꿈에서 깨었다. 꿈을 깨면서 귀에 들리는 것은 기적소리였다. 그 기적소리에 뒤이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라고 하신 교수님의 말씀이 연상되었다. 눈을 털고 일어났다. 캄캄하다. 눈이 녹아들어 옷이 축축하다. 멀리 불을 켠 야간열차가 어둠과 눈발을 밀치며 기적을 울리며 달리고 있다.

앞서 서구적인 인상의 여인은 아름답지만 내면적인 것이 야해서 사귀는 동안 점점 싫어졌던 여성이고 한국적 인상의 여인을 처음엔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지만 사귀는 동안 점점 좋아졌는데 그녀가 돌아서는 것이다.

이 꿈은 기차의 기적소리가 잠자는 시인에게 자극을 주어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라고 하는 말의 잠재의식에 자극을 주어 과거 아름다운 로맨스의 추억을 재현시킨 꿈이라 하겠다. 꿈에서 꽃은 여자를 상징하고 있다.

춘천 못미처 있는 의암댐으로 낚시를 갔었다. 댐을 건너 몇 굽이를 돌면 소설가 김유정 씨의 비석이 있는데 비석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낚시터가 있다.

그날은 입질이 별로 좋지 않았다. 옆자리에는 좀 떨어져서 동행인 유 교수가 앉아 있었는데 큰 게 걸렸다고 낚싯대를 쳐들고 절절매고 있었다. 찌가 우물우물하다가 쑥 들어가는 것을 채었는데 고기가 걸린 채 바위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라보니 낚싯대가 척 휘고 대가 흔들린다.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하더니 나에게 낚싯대를 받아 쥐어 보라고 한다. 받아 보니 고기가 걸린 게 아니라 낚시가 물속에 있는 나뭇가지에 걸려 잡아당길 때마다 가지가 왔다 갔다 하여 마치 고기가 물린 듯 움직였다.

댐을 막은 지 몇 해 안 되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나뭇가지가 썪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뭇가지에 낚시가 걸렸다고 할 수가 없었다. 유 교수의 그 큰 기대를 깨뜨릴 수가 없어 정말 큰 게 걸렸다고 하면서 낚싯대를 유 교수에게 도로 넘겨주었다. 이윽고 낚싯줄이 끊어졌다. 유 교수는 무척 아쉬워했다. 큰 잉어는 못 낚았어도 큰 것을 걸었던 맛을 느꼈다고 하면서 서울에 돌아와서는 맥주를 한 턱 내며 기뻐했었다

. 그런데 유 교수는 다음에도 그곳으로 낚시를 가자는 것이다. 나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만약 그 자리에 가서 나뭇가지에 낚시가 걸렸다는 것을 알면 전에 가졌던 꿈이 깨질 것이 아니겠는가.

그 후로 3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유 교수는 그때 의암댐에서 큰 고기를 놓친 이야기를 하며 그 낚시터로 가자고 한다. 그때마다 나는 본의 아닌 거짓말을 한다. 놓친 열차가 아름답듯 유 교수에게 놓친 잉어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꿈을 심어 주었다.

송충이 밑밥을 주어 고기를 많이 낚은 사람도 계속 송충이 밑밥을 줄 때마다 고기가 많이 낚여서 그분만이 아는 비결의 꿈이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인에게 놓친 여자가 아름답듯 유 교수도 놓친 잉어가 바로 아름다운 꿈을 가득 실은 놓친 열차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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