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토룡의 수난 / 원용수

부흐고비 2021. 2. 15. 13:54

동이 틀 무렵에 범어공원 등산로를 오르다가 길바닥으로 기어 나온 지렁이를 보았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이다. 그들은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지나간 자리에는 고상한 빗살무늬가 그려진다. 지렁이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보아, 산 밑에 개울이 있으리라 믿는 것 같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개울에는 물이 없으니, 이를 어쩌랴. 한 달 가까이 비가 오지 않고 폭염주의보만 내린다. 낮은 찜통더위이고 밤은 열대야이다. 그들이 움직이는 속도로 보아 물이 없는 개울이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차례오동이다.

길바닥을 자세히 보았더니 사람들이 토룡을 밟아서 성한 놈이 없다. 지렁이는 몸에서 나온 진액으로 땅에 엉겨 붙어있다. 개미가 달려든다. 쇠파리가 경고 사이렌을 울리며 넘보기 시작한다. 모르고 한 짓이지만 생명이 죽어가니 이를 어찌하랴. 다윈은 지구 표토의 20인치는 지렁이의 체내를 통과한 흙이라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를 지구의 창자라 하였다. 사람들이 지렁이가 유익한 용(龍)인 줄 알았으면 밟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모르고 한 짓이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살갗으로 숨을 쉬는 지렁이는 비가 많이 올 때 땅 위로 나온다. 땅속에 습기가 많아서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나왔을까? 땅 속에 습기가 없어서 더 나은 곳으로 갈려고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땅 위에는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습기가 없다. 몸에 마른 먼지가 닿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아침 해가 솟아오르면 몸은 마르기 시작한다. 가도 가도 딱딱하고 메마른 땅이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살아서 움직이는 토룡을 숲 속으로 던져 본다.

내 인생에 이렇게 절박한 때가 있었던가. 지렁이는 미물이지만 유익한 생물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심정이다. 나는 행운아였다. 잘 먹고 잘 입지는 못 해도, 끼니를 잇지 못하여 물만 마시고 팔을 벤 적도 없고, 남루한 옷에 벌벌 떨어본 기억도 없다. 우리 이웃들도 모두 편안하게 살고 있다. 굶어 죽는 국민이 없다. 열대지방처럼 식수를 찾아 헤매는 국민도 없다. 이렇게 살기 좋은 나라에서 토룡이 수난을 당하다니 뜻밖의 일이다. 철새들은 살기에 적합한 곳을 찾아 이동하고, 연어나 은어는 산란하려고 떠났던 곳을 다시 찾아온다. 그들은 오랜 기간 이동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몸을 단련해 둔다. 그러나 한 곳에만 머물러 사는 토룡은 이동에 필요한 훈련을 하지 않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지내다가 갑자기 당하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는 처지가 안타깝다.

살아서 잘 움직이는 댓 마리를 흙과 함께 종이컵에 담고 밭둑에 받아둔 빗물을 조금 넣었다. 집으로 와서 화단에 구덩이를 파고 쏟아 놓았다. 기운이 없는지 꿈적도 하지 않았다. 화단 흙이 조금 마른 것 같아 수돗물을 한 바가지 부어주었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 수돗물의 약 기운에 취한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두고 아침 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우리 마당에는 지렁이가 많이 있다. 집에서 생산되는 음식쓰레기는 그들이 다 먹어치운다. 지렁이 기르는 상자를 별도로 만들지 않고 음식 쓰레기를 칼이나 가위로 잘게 썰어서 흙으로 덮어둔다. 짠 음식은 물에 씻어서 준다. 그들이 먹고 만들어내는 분변은 비료가 된다.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화초나 채소들이 잘 자라고 있다. 토룡이 다칠까 봐 농약은 사용하지 않는다. 가끔 병충해가 발생하면 직접 잡거나 천적을 이용한다. 내가 겪어보니 토룡은 착한 청소부요, 퇴비를 생산하는 비료공장이요, 새 흙을 만드는 농부이다. 토룡(土龍)은 말 그대로 땅을 관장하는 용(龍)이다.

아침을 먹고 나갔더니 지렁이가 모두 없어졌다. 그들의 모습을 보려고 땅을 파다가 한 마리를 겨우 찾았다. 가느다란 몸이 통통해 졌다. 붉은 갈색이 검붉게 변하였다. 몸에서 윤이 났다. 잡아당겨도 잘 나오지 않았다. 손끝에 와 닿은 촉감이 좋았다. 다른 녀석들도 모두 튼튼하게 변했으리라. 한편 산에서 죽어가는 토룡이 생각났다. 소나기라도 한줄기 왔으면 좋으련만, 폭염이 너무 오래간다. 며칠 뒤, 밤에 비가 내렸다. 그날에는 길에 토룡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침마다 죽어가던 토룡이 보이지 않으니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았다.

 



원용수 수필가는 시인이기도 하다.

호는 안석, 경북 울진 출생, 강릉사범, 방송통신대학 졸업, 초등 교원 명퇴하였다.

월간 '한맥문학' 등단, 한국문협, 대구문협,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형산수필, 달구벌수필 동인, 대구수필가협회 이사, 문학잡지 '문학' 운영위원, '수필과 지성' 수필아카데미 원장 역임,

제14회 매월당문학상 수상,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수필집 '능수버들'이 있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 이어령  (0) 2021.02.16
능수버들 / 원용수  (0) 2021.02.15
가마솥 / 정현숙  (0) 2021.02.15
근사한 사랑 한번 못해 보고 / 신달자  (0) 2021.02.15
자식 농사 / 조명래  (0) 2021.02.14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