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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능수버들 / 원용수

부흐고비 2021. 2. 15. 13:56

능수버들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오면서 사람처럼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있다.

그 나무는 우리 국토를 아름답게 꾸미려고 꽃을 세 번이나 피운다. 이른 봄에 돋아나는 연두색 잎이 첫 번째 꽃이다. 그때 능수버들은 벚나무나 살구나무처럼 나무 전체가 꽃나무로 보인다. 진짜 꽃은 4월쯤에 노랑꽃을 피운다. 다음은 소설이 지나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노르무레한 단풍이 든다. 단풍이 진노랑으로 변하면 들판에 꽃나무가 서 있는 것 같다. 다른 나무들은 모두 옷을 벗어서인지 단풍든 자태가 더욱 아름답다. 이렇게 당년에 꽃을 세 번 피우므로 삼화류(三花柳)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능수버들은 한파에 강하다. 입동이 지나도 월동준비는 접어두고 만만디로 놀기만 한다. 한파가 닥치면 나뭇잎을 얼릴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 중에도 월동준비를 일찍 서두는 나무가 있다. 땅에 닿을 듯이 늘어졌던 가지를 점점 위로 당겨 올린다. 가지를 무릎까지 올렸을 때는 단정한 여학생처럼 보이다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허벅지를 드러낸 요염한 아가씨로 변한다. 그 다음에는 초미니형의 치미로 엉덩이를 드러낸 광재가 되었다가 머리에 무스를 바른 총각으로 변신한다. 겨울이 되니 가지를 위로 쳐들고 나무 본래의 모습인 원추형으로 돌아가 귀소본능의 면모를 보여주는 재주꾼이다. 그러나 배부분의 능수버들은 가지를 들어 올리다가 새움을 달고 늘어진 채 겨울을 난다. 한겨울 초조하게 보내다가 봄이 되면 늦게 퇴근한 사람이 일찍 출근하는 것처럼 다른 나무보다 먼저 싹을 틔운다.

공해를 막아주는 능수버들은 환경지킴이다. 근래에 조성되는 공단에는 능수버들을 많이 심었다. 포항제철에서는 울타리를 만들었고 대구 삼공단에서는 가로수로 심어두었다. 이 나무들은 공잔에서 배출되는 공해를 정화시켜 주고 더운 날에는 쉼터가 된다. 다른 나무들은 겨울 준비를 하느라 옷을 다 벗었는데 혼자 공해를 막으려고 푸른 잎을 늦도록 달고 있다가 결국에는 얼리고 만다. 얼어서 말라드는 잎을 보면 안쓰럽다. 그들은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공해를 정화시키고 있다. 그 뿌리는 땅으로 스며드는 공해 물질을 정화시켜 토양과 수자원을 보존한다. 사람들은 따뜻한 방에서 몸을 보전하는데 자기를 희생하며 환경을 지켜주는 나무가 애국자로 보인다.

사람을 닮은 능수버들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친구였다. 나라에서는 궁궐 안에 이 나무를 심어 산책로나 쉼터를 만들었다. 궁궐에만 심은 게 아니고, 각 고을과 마을에서도 연못을 만들고 그 둘레에 심었다. 실 같은 가지를 수직으로 늘어뜨린 수사류(垂絲柳)는 연못가에서 물과 어울려 멋을 부린다. 일에 지친 농부는 그늘에서 땀을 식히고, 시인 묵객은 시를 읊고 묵화를 남긴다. 능수버들을 교정에 심어 쉼터를 만들어 주면, 학생들은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으며 우의를 다지고 있다. 혼자 있을 때는 한가로이 세월을 읽다가 사람이 모이면 춤판을 만들어 준다. 그와 같이 놀던 우리는 풍류를 즐기는 민족이 되었다.

그는 나무라기보다 무용수란 말이 어울린다. ‘제멋에 겨워서, 축 늘어졌구나, 흥–’ 노랫말처럼 휘영청 늘어진 치마에 사붓이 돌아가며 손사래 치는 자태는 영락없는 여인이다. 여인이라도 앳된 아가씨가 아니고, 외모가 훤칠하고 인심 좋은 부잣집 마나님이다. 사람들은 그를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노류장화에 비유하나, 어느 한량과 외도하여 염문을 퍼뜨린 적이 없다. 언제나 제 자리에서 누구나 반겨 맞이하는 만인의 연이다.

미인인 그에게도 시련기가 있다. 신록기가 지나면 녹색 잎이 검푸른 바탕에 회색을 띤다. 휘영청 늘어진 가지에 춤만 추던 미인이 육중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뚱보로 변한다. 녹음기라 성장하고 과식한 탓인가. 날씬한 무용수가 자기 몸 상하는 것도 모르고 공해를 너무 많이 섭취하였는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본다. 우리 민족의 친구인 능수버들을 칭찬하는 사람이 적은 것은 녹음기에 못난 이 모습 때문이었을까. 천하일색 양귀비도 늘 예쁠 수는 없지 않은가. 성장 과정에 일시적인 면신은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니던가. 공해를 다량 섭취하여 보기 흉하다면 도리어 기특하지 않은가. 인물이 못나도 마음씨가 고우면 칭찬받을 일이 아니던가. 하녿안 걱정스레 쳐다보는데 비만환자가 탈바꿈하듯이 날씬한 몸짱으로 변하다. 그러면 마음이 놓인다.

우리 민족이 정서와 애환이 담긴 민요 「천안삼거리」에는 능수버들이 담겨있다. 명절의 기쁨을 나누고 이웃의 경사를 축하하는 동안에 이 노래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노랫말 끝 구절에 ‘성화가 났구나’는 어느 관찰사가 잘못하여 경종을 울리려고 붙였다고 한다. 정치가는 백성을 잘 다스려 국민의 원성을 듣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 있다. 노랫말 속에 관리를 견제하는 말을 삽입한 조상들의 기지가 놀랍다. ‘천안삼거리’를 부를 때 능수버들은 지도가 높은 선비로 보인다.

능수버들은 우리 민족성을 나타낸다. 이 나무는 아무리 세찬 폭풍이 몰아쳐도 가지가 부러지지 않는다. 우리 민족은 유사 이래 많은 외적의 침략을 받아도 그들을 물리쳤다. 우리 조상들이 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능수버들처럼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처세술을 익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화나는 일이 있을 때 이 나무 앞에 선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능수버들은 고난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민족의 스승이다.

삼화류(三花柳)는 사람보다 착한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앞으로 그의 업적을 계속 찾아 기록으로 남기며 자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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