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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발簾 / 변해명

부흐고비 2021. 2. 16. 12:31

항라(亢羅) 적삼 안섶 속에
연적 같은 저 젖 보소
담배씨만큼만 보고 가소
더 보며는 병납니더.

읽으면 읽을수록 익살과 은근한 멋이 씹히는 글이다.

우물에서 물동이를 이는 여인이 두 팔로 무거운 물동이를 받쳐 올리노라면 그 힘에 그만 가슴을 조여 매었던 치마허리가 흘러내리기 일쑤다.

어느 처녀가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이다가 그처럼 치마허리가 흘러내렸다면 순간 연꽃의 씨방 같은 예쁜 젖가슴이 드러나고야 말았을 것이다.

한 겹 아른거리는 항라 적삼에 가리워진 곡선을 슬쩍 훔쳐 본 눈길이 있었다면 담배씨만큼으로도 병이 나지 않을 리 없다.

노출되지도 않았으면서 윤곽이 드러나는,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곡선, 은은하면서도 속되지 않은 연연함이 손에 잡힐 듯하다.

여름의 발이 항라 적삼과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발 뒤에서 아른거리는 여인의 그림자를 지켜볼 때면 앞의 민요의 멋스러움을 맛보는 것이다.

더위로 하여 열어젖히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그래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여름의 공간을 발은 살짝 가려 줌으로서 열러 있으되 개방되지 않고, 가리워져 있으되 은폐되지 않은 세계를 지녀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밖에서 발 속을 넘겨다보기란 처녀의 마음속을 엿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마루에 화문석을 깔고 태극선 부채를 들고 발 뒤에 앉으면 그 시원함과 멋스러움이란 비길 데가 없다.

더위도 햇살도 발을 성큼 넘어서지는 못한다. 녹음 속을 빠져나온 바람만이 솔잎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가듯 대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여인들의 모시 적삼 속으로 스며들 뿐이다.

오늘 어머니는 마루에 분함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20년도 더 쳤을 발을 꺼내 손질하셨다.

우리 집 발은 옥구슬을 꿴 구슬발도, 삼(麻)이나 모시로 곱게 엮은 삼발이나 모시발도 아닌 그저 평범한 대나무 살로 엮은 소박한 발이다. 그러나 그 발은 대나무 살 하나하나가 옻칠이라도 입힌 듯 대추나무 빛으로 길이 들었다. 세월에 절은 빛이다.

어머니는 그 발의 댓살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닦으시고 또 둘레에 대었던 빛바랜 공단 헝겊을 뜯어내고 새 쪽빛 공잔 헝겊을 대어 싸 박으셨다. 마치 모시 적삼에 풀을 먹이고 모시 올 하나 다치지 않도록 정성 들여 손질하는 모습 그대로셨다. 그렇게 손질을 하니 낡은 발이 한결 정결해 보였다.

해마다 발을 손질하실 때면 나는 어머니와 승강이를 한다. 새 발 하나 사서 바꾸자고, 아니면 내 방에 치는 덜 낡은 발을 대청마루에 치면 그런 고생도 안하시고 느낌도 달라질 거라고. 그러나 그때마다 어머니는 마다하신다. 당신의 손때로 길들여진 발이 어느 새 발보다 좋다고 우기신다. 아무리 좋은 발이라도 당신과 함께 연륜을 같이하지 않은 것은 우리 집 대청마루에 치기에는 도리어 어색하다고, 손때처럼 절은 정을 버리지 못한다고 하셨다.

우리 집 대청마루에 발이 걸리면 여름은 성큼 댓돌 앞으로 다가선다. 발이 그리운 대청마루…….

바라만 보아도 옛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역사를 거슬러 옛날 어느 하루에 머물러 보는 것 같은 아늑한 평온함.

화문석을 깔고 앉아 부채를 들면 어느 계절 속에서도 찾을 수 없는 여름밤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어머니는 여름이면 발 그늘에 앉아 난초를 가꾸신다.

하얀 모시 치마 적삼이 조용히 움직일 때마다 스치는 소리는 옛 여인의 숨결처럼 아득하다. 결코 뒤에서만 한 가정의 기둥이 되셨던 어머니.

발은 뒤에서 얼굴을 내밀지도 팔을 휘두르지도 않았으면서 밖을 내다보는 어질고 슬기로움으로 하여 한 가정의 가사는 물론 한 나라를 다스리는 섭정에까지 그 힘이 미쳤던 옛 여성.

발 그늘에 숨어 6년을 자라, 비로소 성숙하는 인삼의 생리는 그런 한국 여성의 생리를 닮아 우리 풍토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음이 아닐까?

긴긴 시간 동안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다스리며 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이슬과 햇살만으로 목을 축이며 각고의 수련으로 조금씩 성숙해 가는 기다림의 뿌리.

개방된 외계와 밀착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인삼이 어느 공간에서 성장한 뿌리보다 신비의 세계를 지닌 영약임에랴.

그 인삼의 신비와 위력은 발 그늘이 아니면 얻어낼 수 없는 것이다.

자갈 위에 스스로 뿌리를 얹고 안개처럼 피어나는 물방울에 족하여 1년내 한 잎을 피우기에도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는 난초의 생리 또한 우리 여성의 모습이라. 여름이면 발과 더불어 난초를 가꾸시며 더위를 이기시는 어머니를 뵈면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발을 모르는 우리 현대 생활이 어찌 발만 잃었음일까?

에어컨과 선풍기가 아니면 더위를 식히지 못하는 줄 아는 성급함에서 한 줌 바람에도 오히려 만족하는 겸손과 견딤을 잃은 것이 아닌가?

삶의 지혜란 새로운 물질에 의존한다기보다 손때가 묻고 이어지는 생활 풍토에 있음을 새삼 절감한다.

올여름에는 나도 발 위에 앉아 오랫동안 덮어 둔 고전을 읽으며 은근과 끈기를 익히면서 더위를 식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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