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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독도에 올라 / 김학래

부흐고비 2021. 2. 17. 14:42

어느 해 여름날 나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독도 땅을 밟았다. 울릉도 도동항을 출범한 유람선이 두 시간 반 달려 도착한 것이다. 잔잔한 바다였기에 우리들은 행운으로 독도에 접안했다. 놀이 심한 곳이기에 파도가 조금만 있어도 접안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늘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아온 독도, 꿈에 그리던 독도에 오르는 감격은 자못 큰 것이었다.

우리들이 탄 유람선이 부두에 접안하자 독도수호대 해양경찰관 칠팔 명이 맞이해 주었으며, 역시 우리 땅 독도를 지켜주는 갈매기 떼가 선회하면서 기쁘게 맞이해 주었다.

지금까지 독도는 서도와 동도 두 개의 섬인 줄만 알았는데 주변에 수십 개의 작은 바위섬들이 독도를 감싸고 있으니 말하자면 조그만 독도군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인공으로 선착장시설이 되어있는 곳은 동도이다. 동도의 상봉에는 하얀 등대가 우뚝 서 있고 그 옆에 독도수호대 막사가 있다.

선착장에 올라 제일 먼저 살펴본 것은 ‘대한민국 동쪽 끝’이라는 표지석이었다. 이 석비 주변에서 독도를 살펴보고 사진 촬영을 할 뿐 더 이상 오를 곳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다. 등대까지 올라가는 아주 가파른 계단이 있지만 허용되는 계단이 아닌 것 같았다. 부두에서 독도수호대까지는 케이블이 설치되어 있다. 화물을 끌어 올리는 시설이다.

독도는 울릉도에서 80km 떨어진 동쪽 끝 국토이다. 우람한 돌산이 솟아있을 뿐 평지는 없고 동도에 조성한 부두가 하나 있을 뿐이다.

최근 뉴스에 대한민국 농구협회에서 농구대를 설치해주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독도에 있는 것은 수천 마리의 갈매기와 주변을 호위하고 있는 작은 바위들 그리고 상단에 보이는 천년 묵은 푸른색 이끼이다.

그리고 서도에 어민 숙소 건물이 있는데, 독도 주민이 거주하는 집이다. 부두 앞에 있는 큰 바위 촛대바위가 명물이다. 촛대바위가 감싸주는 천연의 바다 호수가 있는데 유리알처럼 맑은 바닷물이다. 갈매기섬에는 수천 마리의 갈매기들이 앉아 있고 물개 바위와 독립문 등 천연의 동굴이 이색적이다.

우리들은 잠시 후 유람선에 올라서 도열하여 우리와 작별하는 독도수호대 대원들을 향하여 손을 흔들었다. 대한의 아들들이고 내 자식 같은 젊은이들이다.

그리고 유람선이 독도를 한 바퀴 돌았는데 안개가 갑자기 끼어 대한민국 지도형상은 볼 수 없었다.

독도는 460만 년 전 화산폭발로 조성된 섬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려왔으며 독도로 처음 쓰인 것은 1906년(광무10년) 울릉군수 심흥택의 울릉 보고서에서 부근 소속 독도라는 기록과 한말 지사 황현의 ‘매천야록’에서였다.

울릉도 동남쪽 89km인데, 일본의 은기도로부터는 160km 떨어져 있다. 우산국이 울릉도와 독도로 구성된 사실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있으며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의 「조선왕국전도」에도 명기되어 있다.

일본의 고문헌에도 한국영토로 기록되어 있고 1946년 연합국 군령발표와 유엔군도 1948년 한국영토에 포함시켰다. 역사와 국제연합이 우리 국토임을 확실하게 명기하고 있는데 최근 일본은 또다시 광기를 부르고 생떼를 쓰고 있으니 가소로운 일이다.

내가 독도 땅을 밟은 날 국회의원들이 독도를 방문했고, 애국청년들 수백 명이 독도를 찾아서 태극기를 휘날렸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큰 사랑과 영혼이 머무르고 있는 우리 국토 독도여! 영원히 빛나거라.


 

김학래 수필가(1934~2020, 진도 출생)는 1966년 이후 목포를 중심으로 교육 활동과 문학 활동을 해온 원로 수필가이다. 1962년 한 월간지 2월호에 처음 수필(재건복)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1963~1966년 사이 수필로 3회 입선 추천완료(천료) 함으로써 문단에 등단했다. 1976년 수필집 '겨울밤' 외 9권을 출판했으며, 2006년 10집 출판 후에도 100여 편의 수필을 신문 및 잡지, 문학지 등을 통해 꾸준히 발표했다. 전라남도문화상, 한국수필문학상, 한림문학상, 2013 올해의 수필인상 등 각종 문학상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문인협회 전남지회장과 목포지부장, 전남수필문학회장과 영호남수필문학회장, 한국수필가협회 자문위원을 을 역임했다. 저서로 수필집 ‘겨울밤’ ‘산 넘어 남촌에는’ 외 10권이 있다. 김학래 수필가의 인생은 교육과 문학이었다. 1999년 목포대연초등학교 교장에서 정년하였으나, 정년이 없는 문학 활동을 작고할 때까지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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