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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득문(得文)을 찾아서 / 백임현

부흐고비 2021. 2. 19. 01:23

뒤늦은 나이에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글쓰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 무심히 지내다가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항상 성장기에 내 곁에 계셨던 두 분의 스승을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최초로 글쓰는 일에 즐거움을 갖게 한 분은 초등학교 시절 3년간 계속해서 담임을 했던 B 선생님이시다. 그분은 음악 미술 문학 등 예능 분야에 조예가 깊은 분이었다. 특히 글쓰기 지도에 열심이어서 우리 학급은 글 잘 쓰는 반으로 유명하였고 그 선생님의 적극적인 지도로 재능이 계발되어 훗날 문필가가 된 친구도 있다. 숙제로 글을 써 가면 세심하게 살펴 주고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었기 때문에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실력이 향상되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내가 처음 써 본 글은 <거지>라는 제목의 짧은 작문이었다. 눈물겨운 거지 일가의 슬픈 이야기였는데 어쩐 일인지 아이들은 <거지>라는 제목을 듣더니 박장대소를 하며 웃고 법석이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일시에 웃음거리가 되어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 자리에 같이 계셨던 우리 선생님은 웃지 않으셨다. 오히려 근엄한 표정으로 철없이 웃고 있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면서 남들이 웃음거리로 취급하는 거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나의 생각을 훌륭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아이들에게 당한 수모를 말끔히 씻어 주고도 남았던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은 이후 내가 글을 쓰는데 음으로 양으로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때 만일 선생님이 아이들과 같이 웃었다면 나는 글 같은 것은 절대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불행에 대해서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 선생님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시각과 글쓰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같은 것을 가르쳐 준 셈이었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 이후 선생님의 칭찬을 기대하며 열심히 글짓기를 하였다. 그것은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아이들도 다 그랬을 테니까.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특별해서 사춘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학을 좋아하면서 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이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 문장을 써 본 시기였다면 그 이후 지금까지는 남들이 써 놓은 문학작품을 읽으며 거기에 감동하고 도취하는 생활이었다. 책을 읽는 것은 그 당시 대부분 학생들의 일반적인 풍토였다. 지금처럼 젊은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취미 공간이 없던 시절이라 누구나 책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여가 선용의 차원이라고 해도 올바른 독서지도는 필요했다. 그 중요한 시기에 책읽기에 길잡이가 되어준 분이 내 주위에는 많았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소리로 새벽잠을 깨우시던 아버지, 통학열차 칸에서 어려운 책을 펴 들고 독서에 몰두하던 대학생들, 나이 어린 소녀들에게 세계 고금의 명작을 소개하면서 사랑과 인식의 눈을 뜨게 했던 고교시절 K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이분들은 모두 독서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게 해 준 분들이다. 나를 압도하는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 가면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문학의 꿈이 얼마나 무모한 도전인가를 절감하질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오를 수 없는 태! 산이었고 건널 수 없는 장강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도달할 수 없는 높은 하늘이었다. 그 당시에 읽은 고 김동리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별거이 다 소설을 쓴디야'
어디서 읽은 대가의 이 한마디는 꼭 그 당시의 나를 지칭하는 것 같아 문학의 꿈을 접게 하여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으로 안주시키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때에 내 곁에는 고교 담임 K 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은 점점 자신을 잃어 가는 나에게 격려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고 시골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떠나는 나에게 K 선생님은 당부하셨다.
"포기하지 마라."
선생님의 애정 어린 그 간곡한 당부가 나로 하여금 문학에의 관심을 외면할 수 없게 한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이때 서울에는 열심히 소설을 쓰고 있던 한 친구가 있었다. 훗날 어느 여성 잡지에 소설이 당선되기도 했던 그 친구는 시골로 가는 나를 안타까워하면서 혼자 할 수 있는 문학수업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 무렵 창간되고 있는 문예지 <현대문학>을 꾸준히 읽을 것과 날마다 일기를 열심히 쓰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어느 농촌 출신 작가의 당선 소감이라고 하였다. 두 사람은 그 말을 금과옥조로 믿고 실천하였다. 그래서 <현대문학>은 키처럼 쌓여 가고 일기장은 나날이 두터워졌으나 나는 여전히 농촌학교의 이름 없는 교사였을 뿐, 농촌 출신의 작가는 될 수 없었다. 결혼 후 지금까지도 <현대문학>과 일기 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작가의 길은 요원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요즘도 원고지 앞에 놓고 항상 절망하면서 이마저 자기 한계를 모르는 허영이 아닐까 한숨 쉬곤 한다.

수행승에게는 득도(得道)의 경지가 있고 창을 하는 국악인에게는 득음(得音)의 경지가 있다. 스님들은 한 소식 얻기 위해서 극기에 가까운 고행을 하며 국악인들은 한소리 얻기 위하여 천지를 뒤흔드는 폭포 소리 앞에서 피를 토하고, 한마디 귀곡성(鬼曲聲)을 찾기 위해 한밤중 무서운 흉가에서 귀신의 소리를 얻어낸다. 그렇다면 득문(得文)의 경지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 것일까. 나는 중국의 고전문학, 특히 두보의 시를 읽을 때마다 그러한 경지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현존하는 원로 수필가들의 글에서도 나는! 득문의 경지를 느낄 때가 많다. 폭 넓은 지식, 고귀한 인품, 인생에 대한 애정과 깊은 통찰이 득문에 도달한 원천이 아니었을까 싶어 머리가 숙여 진다. 득문이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닐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기울이는 작가들의 치열한 고뇌와 몸부림을….

문학을 좋아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어쩌면 한 줄 빛나는 문장 하나를 얻기 위해 그토록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칭찬 듣기 위해서 글을 썼고 젊어서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삶의 고비고비에서 위안을 얻기 위해 책을 읽고 독자 없는 글을 썼다. 아직도 불완전한 글을 쓰고 있지만 비록 명문은 쓰지 못하였으나 내 생애가 문학과 더불어 걸어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문학이 없었으면 내가 무슨 재주가 있어 어린 날 어른들의 칭찬을 들었겠으며, 세상에 위대한 문학작품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살아 내면서 겪었던 좌절과 아픔을 무엇으로 위로 받을 수 있었겠는가. 세상에 문학이 있기에 읽으면서 때로는 쓰면서 인생의 고락을 웃고 울며 아름답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득문의! 세계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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