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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울 할매 / 허창옥

부흐고비 2021. 2. 28. 08:34

“우야꼬, 우야꼬, 요 두 눈이 새까망 걸 우웨 직이꼬!”

할매가 내를 업고 달포나 넘끼 월배 신의사 한테 댕길 땝니더. 앞거름 넘꼬 지당들 지내고 한거랑도 건니가 댕깄심더. 한 날은 널따란 바우돌에 내를 니라노코 털퍼덕 주저 앉띠, 한숨을 짚둥겉이 수면서 고런 말을 하시는 기라예. 내가 댓살이나 됐을 낍니더. 뇌막염에 걸리가 전부 다 죽을 끼라 캐샀답니더.

옴마는 젖믹이 동상도 있고 들에 중참도 갖다 날라야 되이끼네, 할매가 내를 두더기로 끼리업고 병원에 댕깄는 갑심더. 심에 부치마 아무데나 앉어가 숨 돌리고 가는데, 의사한테 먼 말을 들었는지 그라고 눈물을 쭈루룩 흘리는 기라예. 그래 내가 할매 조고리를 붙잡고 “할매 내 안 죽을끼다.” 캤십니더. “요누무 가서나가 내 믹살이를 잡꼬 눈알이 밴들밴들하이 달라드는 기라.” 울 할매 심심하마 그 말 했십니더.

우웨끼나, 나는 안죽꺼지 밍줄이 붙어가 그 때 할매맹키는 아이지만 낼모레 손지 볼 나가 됐심더. 울 할매는 요샛말로 여장부라서 “내 핵교만 지대로 댕깄시마 박순천(그 시절 여성 정치인)은 저리 가랄낀데.” 란 말을 노상하민서 큰소리를 떵떵 쳤심더. 그 성질에 울 옴마 시집살이 디기 시깄지예.

막내이 고모 치울 때 혼시하로 큰자아 갔다가 깍쟁이가 쌔삐릿다 카는 말을 들어가 신경이 짱백이꺼지 뻗칬덩 기라예. 장 다 보고나이 울 할매 맴이 푹 노이가 장이 떠니러 가라고 “보이소! 깍째이요, 내 주무이 가~가소!”라꼬 소리지러미 꼬장주에서 빈 주무이를 빼가 삥삥 둘맀다 안캅니꺼. 그런 성질이 미느리 조캐미느리한테는 쥐약이었덩 갑십니더.

한 번 성이 났다카마 “이누무 인내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사가 옴마나 아지매들이 식겁하고 벌벌 떨었덩 기라예. 그란데 그 ‘인내’ 란 말이 내를 무지하이 해깔리게 했어예. 중핵교에 댕기던 잔 아재 앉일뱅이 책상 앞 비름빡에 요런 조오가 붙어 있었어예.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재구 글을 깨치가 연필똥개이로 아무 조오나 대이는 대로 글짜를 씨던 내가 일꼬 또 일러도 무신 말인지 모르겠능 기라예. 할매가 옴마를 “이누무 인내야!” 카미 머라카는데 그 ‘인내’가 이 ‘인내’마 아재는 와 이따구 걸 붙이 났노?

암만 생각해바도 모리겠으가 아재한테 물어봤디만 울 아재 하는 말이 “일마 니는 몰라도 돼” 인자사 생각해보이 할매가 아지매들 부릴 때는 ‘인내’가 아이고 ‘인네’고, 그기 ‘여인네’를 줄안 말 아이겠나 카는 생각이 드는 기라예.

우짜던동, 살민서 울 할매가 생각키면 시도 때도 없이 내 가심이 째질라캅니더. 나는 밍이 댓줄이라가 안 죽었지만 내 바로 우에 오래비가 열두 살에 뇌염 걸리가 도립병원에서 죽었일 때, 울 할매 및 십 년 삼동네 의원질 하던 침때롱을 불이 벌건 부섴에 떤지뿌맀심더. 울 할매 목놔가 울민서 “알짱 겉은 손지새끼 직이 놓고 이따구 침이 무신 지랄이고!” 캤십니더.

손지 갖다 묻은 기 할매 가심에 대못치는 일 맨첨은 아입니더. 그 너더 해 앞에 울 아부지도 시상 비맀덩 기라예. 조선에 없는 맏아들 앞 시우고 근거이 추시리고 사는데 손지꺼지 잃아뿟시니 가심이 타도 어데 기양 탔겠능교. 숯디이가 돼도 시꺼먼 숯디이가 됐지예. 그기 다가 아입니더. 여나무 해 뒤에 또 울 옴마가 빙이 들어 가뿌맀심더.

울 옴마 성내서 시상 비리가 고향집 앞에로 생이가 나가는데 생이꾼이 노잣돈 우룻는다꼬 집 앞에 생이를 시우고 버티이끼네 누가 큰소리를 내질렀어예. “노모 지신다, 쌔기 가자!” 배깥 일 모린 척하고 들앉었는 노모가 바로 할매아인교. 암매, 할매 맴 아푸까바 당숙부가 그캤는 갑십니더.

할부지는 말 할 거도 없꼬, 아들, 손지, 미느리 당산에 갖다 내삐리고 울 할매 우웨 살았겠십니꺼? 삼동네가 무시라했던 욕쟁이 할매에다가 인물은 또 얼매나 훤했다고예. 그 할매가 열맥이 풀어지고 수가 죽어가 내 비기에는 자꾸 짝아지데예. “내 살아온 거 책으로 씌마 바소구리로 한 거는 될끼다.” 카싰는데, 하매요 할매 두 말하마 머 합니꺼. 그 책 속에 머이 들었는지 내 다 모리겠지마는 짚어보마 빌의 빌 기맥힌 일들이 다 있었겠지예. 할매가 누군교. 왜정시대, 대동아전쟁, 육이오 난리 다 젂고도 집안 거두미 살아낸 역사의 생생한 징인 아인교.

울 할매 한 대소구리도 안되기 쪼깬하고 해깝어져가 저 시상 가시뿌린지도 서른 해가 넘었심더. 시방도 할매 생각키마 내 가심이 턱턱 맥히뿌는 기라예. 무시라 무시라 캐도 손지 애끼는 거는 유빌랐는데….

내가 노상 아퍼가 “이누무 가서나는 시집보낼 쩍에 논이라도 댓마지기 딸리조야 누가 델꼬 가도 안 델꼬 가겠나.” 카는 말 술찮케 들으미 컸지예. 빙치리 하니라고 사램꼴이 될랑가 싶어 캤는 말일 낍니더.

친정 산소에 갈 쩍 마중 할매 앞에 머리 수구리고 절하미 “할매 논 댓 마지기 안 딸리조도 내 잘 삽니더. 애 마이 믹있지예. 그라고 거꺼지 가시가 옴마 딘 시집살이 시기는 거는 아이지예?”라 카면, 울 할매 “저누무 소~온 다 디져 가디 입만 살어가~” 카미 웃으시는 거 같십니더. 그 할매가 뻐덕거리마 억수로 보고접심니더.


 

허창옥 수필가는 1953년 출생 아호 : 지원芝園. 경북 달성군 성서면 본리동(대구시 달서구 본동의 옛지명)의 한 동네였던 감천리에서 태어나서 열두 살까지 성장했다. 경북여고, 효성여자대학(현 대구가톨릭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했다.

월간에세이로 등단해서 한국문협, 대구문협, 수필문우회, 대구수필가협회, 대구가톨릭문인회 회원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제17회 약사문예 수필부문 당선(1989), 제6회 약사문학상 수상(1994), 제15회 대구문학상(1997)을 수상했다. 수필집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길', '먼 곳 또는 섬', 산문집 '국화꽃 피다', 수필선집  '세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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