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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죽음에 빚진 삶 / 조병렬

부흐고비 2021. 3. 1. 01:15

긴 산행 길. 출발은 아기의 첫 울음처럼 활기차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젖어들며 청량한 물소리를 따라 산길을 걷는다. 오랜 세월 함께한 삶의 역정처럼 아내와 나는 자연스럽게 속도를 조절하며 이따금 힘든 표정을 살핀다. 험한 언덕을 오를 때면 서로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 준다. 긴 산행 같은 인생. 그 인생길이 언제나 평온한 삶이 아니듯 산세와 산경은 한결같지 않다.

생기 왕성한 나무들이 많으나, 간간이 쓰러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 모양이다. 바닥에는 꺾이고 부러진 나뭇가지가 지천이고, 뿌리째 뽑혀 바닥에 누운 채로 이미 말라 죽은 나무도 많다. 생사와 귀천이 엇갈린 모습이다. 무심히 바라볼 수가 없고, 외면할 수 없는 존멸의 현장이다. 저것도 자연의 순리일까? 인간이든 자연이든 불의의 고난과 시련을 굳건히 견뎌낼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지 않은가.

나는 한참 동안 바람의 흔적과 나무의 명운을 바라보았다. 다양한 생목과 고목의 모습들. 스스로 힘차게 잘 살아가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생존하기도 하고, 산 나무에 기댄 죽은 나무도 있다.

잠시 후, 나의 눈길은 한 나무에 멈추었다. 절반 넘게 비스듬히 기울어진 나무는 이미 죽은 고목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받침대가 되어 떠받치고 있는 죽은 나무가 없다면 저 나무는 쓰러져 뿌리가 뽑히고 말라 죽고 말았을 것 같았다. 놀랍게도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의지한 채 살아가고 있는 셈이었다.

산 나무가 쓰러질 때의 상황이 궁금했다. 오랜 세월 동안 산 나무를 떠받치고 있는 고목나무는 언제 어떻게 죽었을까? 저 나무가 힘에 겨워 넘어질 때 고목나무는 살아있었을까? 이미 죽은 상태였을까? 그리고 두 나무는 어떤 관계였을까?

바람의 흔적이 인생의 발자취다. 바람 속의 삶, 바람 같은 인생. 언제나 온화한 바람만 불어오지 않듯이 한두 번 고난과 역경을 겪지 않은 사람이 그리 흔할까. 때로는 세찬 폭풍우가 몰려와 감당하기 힘든 시련도 있고, 사람의 울음소리마저 쓸어가 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지난 삶을 되돌아보지 않고서 어찌 오늘의 삶이 온전할 수 있으며, 내일 또한 장담할 수 있겠는가. 나 또한 나이가 쌓이면서 지난날을 더듬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오늘의 내 삶은 지난 세월의 확연한 결정(結晶)일 텐데, 생각하면 할수록 고개 숙일 일들이 적지 않다.

죽은 나무에 기댄 채 살아가는 저 나무. 죽은 나무는 살아생전 산 나무를 위해 온 힘을 다하다가 자신은 서서히 사라져 갔을 것이다. 어쩌면 죽은 나무의 끝없는 사랑과 헌신의 영혼마저도 이미 산 나무로 옮아가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죽은 나무의 힘으로 산 나무는 새로 잔뿌리를 내리고 희망찬 새 삶의 싹을 틔우게 되었으리라.

텃밭에 심은 토마토 줄기에 받침대를 세워주지 못해 열매가 열리면서 가지가 찢어져 잎과 열매가 말라가고 있었다. 생명체의 종말이 두려웠고 마음이 다급했다. 받침대를 세우고 찢어진 가지를 끈으로 동여매었다. 고맙게도 차츰 잎에 생기가 돌고 열매가 익어갔다. 생명력의 기적을 보았고 받침대의 위대함을 알았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받침대라도 위기의 상처를 보듬어 줄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또 하나 체험하였다.

한가위 날, 가족과 함께 선산을 찾아가 성묘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언제나 나의 받침대가 되어 주신 어머니는 벌써 내 곁에 계시지 않고, 나는 새로운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그렇게 힘든 날들을 굳센 교목처럼 하나뿐인 아들의 받침대로 살다 가신 어머니. 나는 당신께 진 무한한 사랑의 빚을 갚을 길 없이 살아가고 있다.

백양나무 가지처럼 연약한 힘이나마 나도 누군가를 위한 받침대가 될 수 있을까? 어느덧 인생의 산등성이에서 내려오며 남은 걸음마다 비틀거리며 넘어지지 않을까 염려한다. 나는 산길을 내려오듯이 다리에 힘을 주며 한 발자국씩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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