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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700자 수필 3련 / 안도현

부흐고비 2021. 3. 1. 21:11

죽은 직유 / 안도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에게 직유가 뭐냐고 물으면 대답이 한결같다. ‘처럼, 같이, 듯이’ 같은 말이 붙으면 무조건 직유라는 것. 국어시간에 시를 공부할 때 유난히 많이 들어서 그렇다. 원래 수사법은 어떤 대상을 강조하거나 참신한 표현을 얻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표현 대상의 겉치레를 위한 장식용으로 수시법이 필요한 건 아니다. 아무것이나 몸에 걸친다고 다 옷이 아닌 것처럼. 직유는 원관념과 비유하고자 하는 보조관념이 비숫한 성질을 가지고 있을 때 주로 발생한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한탄할 때 흔히 쓰던 말이다. 겉으로 보면 직유가 맞다 형식적으로는 직유의 체계를 갖췄지만 나는 이런 직유를 ‘죽은 직유’라고 부른다. 이미 어디에선가 많이 들었거나 새로운 미적 충격이 없는 직유가 죽은 직유다. 이런 표현은 우리 삶을 앞으로 전진시키지 못한다. 동어반복의 삶만큼 지루한 것이 없는 것이다. 여성의 얼굴을 표현하는 ‘초승달 같은 눈썹’이라든가 ‘앵두 같은 입술’을 케케묵은 옛날 책에서 얼마나 많이 읽었나. 21세기 젊은 연인들의 입에서 설마 이런 수가가 흘러나오는 건 아니겠지?

어떤 표현이 직유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죽은 직유는 직유가 아니라는 과감한 확신이 필요하다. 한마디 말을 하고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새로운 직유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게 우리들의 생활을 종이 두께만큼이라도 풍요롭게 하지 않을까?

음나무 / 안도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4개의 가시를 가진 도도한 꽃이 등장한다. 꽃들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시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꽃들은 가시가 있으므로 자기들이 스스로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가시를 가진 식물의 생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음나무는 보통 엄나무로 많이 알고 있다. 잡귀를 쫓는다는 믿음 때문에 마당 안에 심기도 하고, 가지를 잘라 처마 끝에 매달아놓기도 한다. 요즘은 닭백숙에 많이 넣는다. 음나무의 새순은 두릅순보다 향기가 강한데, 봄철에는 더 귀하게 친다. 연한 잎을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말려 묵나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음나무 가시는 잎을 따 먹는 동물로부터 자신을 기키기 위해 생겨났다. 이른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 나무가 어릴 때는 위험으로부터 취약하기 때문에 가시가 매우 날카롭고 가시의 개수도 많다. 그런데 음나무 줄기가 굵어지고 잎사귀를 허공 높은 곳으로 매달기 시작하면 가시가 무뎌진다. 생의 정착 단계에서 가시가 퇴화하는 것이다. 키가 크고 수십 년 된 음나무의 수피는 이게 언제 음나무였을까 싶을 정도로 검은 회색으로 변해 있다. 세로로 난 수피의 무늬도 뚜렷해진다. 가시는 뾰족하지 않고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사람도 가시를 세우는 것일까. 나이를 먹어도 가시를 거둬들일 줄 모르는 사람은 그럼 뭐지?

은행나무 / 안도현

은행나무는 활엽수일까, 침엽수일까? 잎이 넓적한 걸 보고 활엽수로 대답하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론상으로는 침엽수로 분류하기도 한다. 은행잎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는 부채 모양으로 펴진 바늘 같은 잎맥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나무의 분류학적 위치는 침엽수도 활엽수도 아니라고 한다. 더 놀라운 건 은행나무가 지구상에 1과 1속 1종만이 존재하는 나무라는 것. 자신과 엇비슷한 친족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은행나무는 2억 년 이상 지구에서 자라왔다.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지금은 가로수로 흔히 심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절이나 서원 같은 특별한 곳에 심어 경배하던 나무였다.

은행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저장성 서남쪽이다. 유럽 쪽으로 건너간 지는 250년쯤 된다 한다. 괴테가 살던 시대에는 독일에 은행나무가 없었다. 대문호이자 식물분류학자이기도 했던 괴테는 동양서적을 탐독하던 중에 은행나무를 발견했다. 그가 마리아네와의 연애에 빠져 있을 때였다. 괴테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은행나무 이파리를 그려 넣었다.

“은행나무 이파리 끝은 비록 갈라져 있지만 한 장이듯이 당신과 나 역시 둘이면서 하나지요. ” 이 러브레터로 60대 노년의 괴테는 젊고 아름다운 마리아네를 연인으로 얻었다.

악취를 풍기는 은행을 떨어뜨리는 통에 광화문 세종로에서 은행나무를 앞으로 만나지 못한다는 소식이다. 가지가 삐죽한 수나무들이 얼마나 외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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