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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넥타이를 풀며 / 배철웅

부흐고비 2021. 3. 10. 08:26

헤어본 적은 없지만 많은 넥타이가 장롱 속에 있다. 붉은색, 푸른색 해서 장롱 속에는 때 아닌 꽃이 핀 듯하다. 그러나 염치없는 말이지만 그 넥타이들을 내 스스로 구입한 기억은 별로 없다. 문상 갈 때 매는 검정색 타이 말고는 죄다 누군가가 선물해준 것들이다.

넥타이를 맬 적마다 그들의 정겨운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멀리 해외여행이나 이민 간 사람들이 나를 위해 선물을 고르는 장면을 생각하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장롱 속은 그 포근한 마음들로 해서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남자들에게 넥타이는 액세서리 아닌 내세서리(necessary)라 해야 할 그런 것이다. 바쁠 때는 아무렇게 호주머니에 넣고 나와서라도 그걸 매야 하니까. 그러나 매사가 그렇듯이 넥타이도 때와 장소를 맞춰야지 무조건 맨다고 멋이 나는 건 아니다. 외국관광 가서 넥타이 매고 다니는 한국 관광객들하며 초여름날 백운대 정상에 넥타이 정장차림으로 올라 왔던 어떤 신사의 모습은 어색하다기보다 차라리 코미디적이었다.

사실을 고백하면 나 역시도 그랬다. 몇 해 전 미국 시카고에서 운전실수로 남의 차 꽁무니를 추돌했는데 며칠 만에 법원의 출두명령서가 날아 온 것이다. 나는 취업 인터뷰하는 학생처럼 넥타이 정장 차림으로 법원엘 갔다.

가서 보니 드넓은 법정을 가득 매운 사람들 중에 정장차림은 나밖에 없었다. 백인, 흑인, 남미계 인종하며 하나같이 티셔츠에 청바지의 털털한 차림들인데 혼자만 넥타이에 감색 신사복을 말끔히 차려입고 있으니 ‘나는 동양에서 온 시골뜨기요!’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니 뚱뚱한 판사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판사는 한국에서나 무섭지 교통사고 다루는 미국의 간이법정에서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미국인들은 판사 앞에서도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찌른 채 “예스”가 아니라 “야, 야….” 어쩌고 사뭇 반말지거리다. 하지만 나는 “예 써, 예 써” 경어를 써가며 깍듯이 판사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사람은 웃는 낯에 침 못 뱉는 법이다. 판사는 빙그레 웃으며 “그 넥타이 좋네요. 오늘은 특별히 정상을 참작하니 다음부터 조심하세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꽤 큰 벌이 내릴 것으로 각오했는데 벌금도 가볍고 옆방에서 교통계도영화 한 편 보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그러고 보니 그날의 넥타이는 못난 시골뜨기짓이 아니라 관재수를 면케해 준 재수 좋은 넥타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는 ‘럭키타이’란 걸 맨 적이 있다. 얼마 전에 부산의 로타리클럽에 초청 받아 게스트 스피치 즉 ‘초청인사 연설’을 하게 됐는데 회장님이 손수 그 럭키타이를 매어주는 것이었다. 붉은색의 럭키타이는 ‘행운의 넥타이’란 의미 그대로 행복이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새끼줄 넥타이’란 말이 생각난다. 안 할 말로 사형장의 교수형 밧줄을 그렇게 부른다는데 그건 불운의 넥타이 즉 ‘안 럭키타이(Unlucky tie)’라고나 할까. 일반에게 개방하는 서대문형무소 남쪽 끝에 있는 옛날 사형장에서 둥근 고리처럼 매듭 지워진 그 밧줄을 구경했던 적이 있다.

그에 비하면 보타이 즉 나비넥타이의 이미지는 화사하다. 하지만 어딘지 희화적(戱畵的)인 냄새가 난다. 시골장터에서 고약 팔던 약장수나 챨리 채플린의 모습이 떠올라서다. 그러니까 곡마단의 피에로도 아닌 보통사람이 그처럼 콧수염 기르고 뿔테안경에다 나비넥타이까지 맨 걸 보면 멋있다기보다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앞선다. 진금부도(眞金不鍍)란 말처럼 진짜 금은 도금을 입힐 필요가 없다. 사람의 수양도 겉을 번쩍이게 드러내기보다 은근히 안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대학 3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 K가 학생 장가를 들게 됐는데 그는 전북 무주에서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그의 시골 마을에서 올리는 혼례식에 친구들이 참석키로 의견을 모으자 K왈 전원 나비넥타이를 매고 와달라는 요구사항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그 가난하던 시절, 괴짜 신랑 덕분에 보타이와 신사복을 빌리느라고 무진 애를 먹었던 일이 새롭다.

사방에 병풍처럼 푸른 산이 둘러선 신랑집 산골 마을에 보타이 부대란 것은 실로 대조적인 광경이었다. 길게 땋은 머리에 물동이인 처녀들이 우리 낮도깨비를 보고 종종걸음으로 달아났다. 때마침 늦가을 더위가 기승인데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乙巳五賊) 같은 차림으로 전통혼례를 치르느라 신랑보다 우리 보타이 부대가 더 땀을 많이 흘렸던 것 같다.

그러나 식을 마친 다음 그 거추장스런 나비넥타이를 풀고 양복을 벗어버릴 때의 시원함이라니! 그리고 그 해방감이라니! 팔을 둥둥 걷고 시리도록 찬 샘물에 푸푸 세수를 한다. 옷에 철학이 있다면 그런 것이 아닐까. 이슬람정신에 투철한 아랍인들은 열사의 사막에서도 검은 옷을 벗지 않는 것처럼 입은 채 참을 만큼 참는 것, 그러다가 어느 순간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쾌감이다. 일은 시작할 때보다 마칠 때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사람들은 문제가 있으면 그걸 푼다고 한다. 맺힌 마음도 풀고 원수진 것도 풀며 살아야 한다. 무엇이건 얽힌 걸 풀어 버릴 때 휘! 하고 시원한 한숨이 나온다. 우리도 일본의 압제에서 풀려 난 그날이 바로 민족해방의 날이었다.

사람의 삶 역시 사는 데까지 살다가 구질구질한 육신을 훨훨 벗어버릴 때가 진정 해탈이요 열반이 아닐까 싶다. 오래 억눌려 살던 사람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그 집을 나서며 “이제 자유다!”라며 넥타이를 풀어버리던 어느 영화의 라스트 신이 생각난다. 넥타이는 맬 때보다 풀어버릴 때의 홀가분한 맛으로 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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