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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처음 배운 우리말 글자는 ‘오’자였다.

아주 어렸을 때 펄 S. 벅의 <대지>를 번역하시면서 끝없이 교정을 보시는 아버지 곁에서 어머니, 언니, 오빠가 원고 정서에 매달려 정신없을 때 심심해 하는 내게 등장인물 ‘오란’ ‘왕릉’ 등 몇 개의 이름을 적어 주면 나는 흉내 내어 그 글자들을 써 보곤 했다. <대지>를 비롯해서 스무 권에 가까운 펄 벅의 작품을 번역하셨던 아버지 덕에 내가 자라나는 동안 펄 벅은 늘 이웃집 할머니처럼 친숙한 이름이었고, 후에 내가 영문학도가 되어 처음으로 원서를 읽은 작품도 <대지>였다.

불후의 명작 <대지> 외에도 80권에 달하는 작품을 쓴 다산작가, 여성으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중국에서 자랐고 동서양의 벽을 허물고 인류전체의 복지 사회를 꿈꾸었던 평화주의 작가 등, 펄 벅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많다. 그러나 내가 읽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책은 1951년 발표한 <자라지 않는 아이>이다.

펄 S. 벅은 한국의 고아를 포함, 국적이 다른 아홉 명의 고아들을 입양했지만, 그녀의 친자는 중증의 정신지체와 자폐증이 겹친 딸 하나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어렵게 쓴 책이라고 고백한 <자라지 않는 아이>는 최고의 명예를 누리는 작가로서가 아니라 장애 자녀를 낳아 길러 본 어머니로서의 체험을 마음으로 토로한 책이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행복감, 그러나 정신지체아로 일생동안 ‘자라지 않는 아이’로 남게 되리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의 절망을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죽음이 더 편할지 모릅니다. 죽음은 그것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내 딸아이가 지금 죽어 준다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의 기대와 실망, 끝없는 고통, 그러나 결국 그 딸에게서 배운 점을 담담하게, 그러나 그녀의 고백대로 ‘마음속으로 피를 흘리며’ 서술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든 존경과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 딸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히 나보다 못한 사람을 얕보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능만으로는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없음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결론적으로 말한다.

“나는 결코 체념하지 않고, 내 딸아이를 ‘자라지 않는 아이’로 만든 운명에 반항할 것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운명에 대한 반항’은 무지로 인해 출산 전 실수로 장애아가 태어나는 것을 예방하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교육 받을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자나 깨나, 어디를 가나 외치는”것이다. 장애아에게 더불어 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은 비단 부모의 책임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 국가의 의무라고 그녀는 역설한다.

“우리 모녀의 모든 것을 바쳐 다른 사람이 이런 괴로움을 겪지 않도록 힘쓸 수 있다면, 우리의 생애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한 희망에서 위안을 찾는다며 그녀는 책을 맺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사람은 물론 나의 어머니이다. 기동력 없는 딸이 발붙일 한 뼘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목숨 걸고 ‘운명에 반항’하여 싸운 나의 어머니, 장애는 곧 죄를 의미하는 사회에서 마음속으로 피를 철철 흘려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딸을 지킨 나의 어머니, 무엇보다 이 땅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은 것은 부모님과 내게 너무나 힘겹고 고달픈 싸움이었다. 업어서 교실에 데려다 놓고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시던 나의 어머니, 장애를 이유로 입학시험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학교들을 찾아가 제발 응시만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사정하며 다니시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문간을 서성이던 나의 어머니.

조금만 도와주면 나도 잘 해낼수 있다고, 제발 한몫 끼어달라고 애원해도 자꾸 벼랑 끝으로 밀쳐내는 이 세상에 악착같이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벨문학상 위엄도 그 위대한 이름, ‘어머니’에 비할까.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어디선가 본 책의 제목이다. 사회와 국가가 의무를 소홀히 해도 지금도 어디에선가 ‘운명에 반항’하여 싸우고 있는 장애아 자식을 가진 어머니들, 그 하나님 같은 어머니들의 외로운 투쟁에 사랑과 갈채를 보내며 나의 어머니와 그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우리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다 기적이더라

명수필가이자 영문학자인 ‘명랑소녀’ 장영희 교수가 5월 9일 더 좋은 세상으로 갔습니다. 친동기간 같았던 이해인 수녀가 그의 삶, 문학을 추억합니다. 희망을 크게 말하면 새봄이 더 빨리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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