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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거지 여인 / 류시화

부흐고비 2021. 3. 16. 09:05

북인도 바라나시에 머물 때였다. 아침이면 나는 갠지스 강변의 메인 가트에 가서 앉아 있곤 했다. 그곳에는 나말고도 한 인도 여인이 앉아 있었다. 사십대 중반의 그 여인은 더러운 붕대로 두 손을 감고, 늘 새처럼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메인 가트는 성지 바라나시의 중심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인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아침마다 북새통을 이루었다. 또한 온갖 종류의 장사꾼들과 호객꾼, 걸인과 성자들로 발디딜틈조차 없었다.

바로 그곳에 날마다 한 거지 여인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누구와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녀 역시 색 바랜 낡은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스스로 구걸을 하거나 하다못해 짜이(인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차)를 청하는 적도 없었다. 그녀는 늘 그렇게 약간은 고독하고, 약간은 무심한 표정으로 인파 속에 앉아 있었다.

한 주일이 지나면서 나는 차츰 그 거지 여인과 정이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무언의 인사를 하게 되었고, 그녀 역시 내가 옆에 가서 앉으면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우린 얘기를 나눈 적도 없고, 특별히 눈길이 마주친 적도 없었다. 다만 한 사람은 장발머리를 하고, 또 한 사람은 때묻은 붕대를 두 손에 감은 채 나란히 벽을 등지고 앉아, 갠지스 강의 아침 풍경을 구경할 따름이었다.

열흘 뒤, 나는 그곳을 떠나 네팔 카트만두로 가야만 했다. 눈이 더 내리기 전에 히말라야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떠나기 전날, 나는 메인 가트로 가서 한 시간쯤 그 거지 여인 옆에 앉아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왠지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나는 짜이 한 잔을 주문해 발 앞에 놓아 주며, 그녀의 붕대 감은 손을 맞잡고 말했다.

“저는 내일 카트만두로 떠납니다. 잘 지내세요!”

그녀는 약간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이튿날 나는 카트만두행 버스에 오르지 않았다. 떠돌이 여행자가 그렇듯이,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며칠 더 바라나시에 머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침 일찍 다시 메인 가트로 나갔다. 그곳에 그 거지 여인이 먼저 나와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말을 하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다. 나를 보자 그녀는 사람들을 향해 뭐라고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얼굴 표정으로 보아 화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그녀 옆에 앉았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 내게 물었다.

“이 여인이 뭐라고 말하는지 당신은 이해하시오?”

내가 고개를 젓자, 그가 말했다.

“이 여자는 지금, 당신이 어제 자기의 손을 잡았다고 말하고 있소.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의 손을 잡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고 말하고 있소. 누가 문둥병에 걸린 여자의 손을 잡겠소. 그래서 이 여자는 지금 행복에 넘쳐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행복한 얼굴로 어린아이처럼 떠들고 있었다. 손에는 여전히 더러운 붕대를 감은 채로.

신은 그녀를 통해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인간은 서로 만져야 한다는 것을.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만져 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행복에 찬 거지 여인의 얼굴은 한 떠돌이 여행자의 영혼에도 생기를 불러일으켰다. 이튿날 아침, 나는 새로운 기운을 얻어 히말라야로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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