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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해질녘에 오는 전화 / 반숙자

부흐고비 2021. 3. 16. 09:06

서산 마루에 낙조 드리우고 땅거미 내리는 시각이면 막연히 기다리는 전화가 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있어 메일로 소식을 주고받는데도 전화를 기다리는 것은 산영 선생이 준 선물이다. 내가 서울에 살 때, 선생은 사무실을 차리고 출퇴근한 일이 있다. 해질녘이면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하면 "지금 뭐하세요?" 하는 나지막한 목소리. 저녁밥을 짓다가 물 묻은 손으로 수화기를 잡으면 목소리보다 먼저 전해지는 울림이 있었다. 나는 짐짓 딴청을 피우며 왜 퇴근을 안 하느냐고 되묻고는 했다.

그간 우리의 만남도 적잖은 시간이 쌓였다. 어렸을 적 친구같이 만만하지 않고 젊은 날 친구처럼 뜨겁지는 않아도 가랑비에 옷 젖듯 정이 들었나, 어떤 날은 글 스승으로, 사모하는 연인으로, 또 어떤 날은 동기간 같은 정으로 그리워한다.

선생을 처음 만날 때가 생각난다. 문통이 시작된 후 첫 데이트를 알리는 편지였는데 항목마다 번호를 달아 약속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적어 놓았다. 공문서 같은 편지를 받고 깐깐한 사람 같은데 실수하지 않을까 지레 걱정이 되었다. 날짜는 확실하지 않으나 덕수궁 옆 성공회 마당의 '머스마' 은행나무 밑이라고 기억한다.

그것은 기우였다. 만남의 횟수가 쌓일수록 그 깐깐함 속에 평범하지 않은 속 깊은 정이 가득함을 알았다. 한번 가까워진 사람들에 대한 변함없는 정이나 문단의 연만하신 선생님들이거나 오랫동안 병환중이신 선생님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공경심도 남다르시다.

선생은 나에게도 특별한 사람이다. 책을 내고 주저하는 나에게 두 번씩이나 서평으로 빛내 주셨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립스틱 케이스는 언젠가 시청 앞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입술 연지를 바르는 내 모양을 보고 슬며시 건네준 것이다. 말없이 주었지만 그 뜻을 알았다. 선생은 그런 분이다.

선생이 염창동에 살 때였다. 집으로 놀러가겠다고 떼를 썼다. 빈틈없는 문장으로 완벽한 글을 쓰는 분이 어떻게 하고 사시나 보고 싶었다. 아담한 집에 병환중이신 어머님과 함께 살고 계셨다. 그 바쁜 생활에서도 매일 목욕을 시켜드리고 옷을 갈아입히고 아기처럼 목에 턱받이를 둘러 식사 시중까지 지성껏 봉양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나도 혼자 오랫동안 친정 어머니를 간병해봐서 알고 있다. 다른 형제 자매도 있는데 어머니가 마음 편하게 계실 수 있는 집이라고 모셔다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 드리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선생의 글 속에 나오는 비켜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든 최선을 다하고 가르치는 일도 똑 떨어지게 하는, 그러면서도 드러나지 않으려는 선생을 일러 나는 '숨어 있는 나무'라 부르고 싶다. 기쁨도 아픔도 안으로 다스리고 절제하며 당당하게 수필의 본향을 지키는 거목이다.

일산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첫 번째 유숙객이 되었다. 다듬잇돌 위에 작은 화분을 올려놓아 정취를 더해주는 것이며 정갈하고 세련되게 꾸며 놓은 실내며 시간 참참 간식을 내오는 마음씀이 어찌나 여성스러운지, 나는 속으로 저분이 진정으로 사랑할 사람이 생기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그 날도 강의가 있는 날이어서 아침은 우유와 빵으로 해도 좋을 텐데 선생은 새벽부터 서둘러 진수성찬을 지으셨다. 그런데 수저가 세 벌이 놓여졌다. 의아해 하는 나에게 "어머니 수저예요" 하는 것이 아닌가. 가슴으로 또 한바탕 바람이 불어갔다. 추웠던 그 겨울 어머니 떠나신 날 영안실에 나란히 누워 선잠을 잤던 기억이 떠올랐다. 벌써 오래 전의 일인데 선생은 아직도 어머님을 못 떠나 보내고 생전에 쓰시던 가구를 그대로 둔 채 어머님과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

내가 선생과의 인연에 감사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더 화려한 것, 더 유익한 것을 위하여 재빨리 카멜레온이 되는데 고집스레 한 빛깔로 사는 모습이 더없이 든든해지는 것이다.

이 '숨어 있는 나무'의 가슴에 예순한 개의 나이테가 그어진다고 한다. 뿌리 든든하고 그늘 넉넉한 나무 밑에 모여 사는 제자들이 선생의 회갑을 축하드리는 문집을 낸다는 소식에 멀리 있는 내 마음이 왜 이리 따스해지는지…. 큰 나무는 큰 나무를 키우는구나. 축하를 드리고 싶다.

이제 선생은 숨어 있는 나무가 아니다. 본인은 언제까지나 숨어 있고 싶겠지만 모두가 우러러보는 큰 나무로 서셨다. 모쪼록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그 푸르름 떨치시기를 빈다. 오늘은 인터넷 말고 모처럼 내가 전화를 넣어야지, 해질녘에.

"산영 선생님, 지금 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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