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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맹물을 위한 변辯 / 박양근

부흐고비 2021. 3. 17. 14:38

시답잖은 일을 당하면 맹물을 마시고 싶다. 그것에는 흐린 마음을 곧세우는 서릿발 기운이 없고, 상대방이 움찔거릴 열기를 내쏘는 물성도 없다. 맹물을 아무리 마셔도 한번 아려진 심사는 여전히 고달프다. 그런데도 속이 쓰리거나 배가 허하면 맹물 한 그릇을 찾는다. 얼마 전에 나름대로 체득한 속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살아가는 동안 황당한 일을 당하는 수가 적지 않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속담도 따지고 보면 억하심정의 경우를 말한다. 나 또한 그 말을 ‘이유 없이 맞는 매마저 마음속에서 삭히라’는 뜻으로 풀이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생각하여도 속이 풀리지 않을 때는 미지근한 맹물을 서너 차례 들이킨다.

세상인심이 갈수록 빡빡하다. 너나 나나 추호의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결연한 표정으로 살아간다. 당연히 바람 잦을 리 없는 마음의 곁가지에 잔걱정이 누에 알처럼 슨다. 누군들 앙금을 털어내고 상처의 진물을 마르게 하고 싶지 않을까만 속병을 다스릴 처방이 쉽지 않다. 외상을 아물게 할 물약이라도 손에 쥔다면 그나마 다행이 아니런가.

맹한 사람을 맹물이라고 놀리는 경우를 본다. 그런 사람은 어수룩하다 못해 제 앞에 놓여진 몫마저 늘 가로채인다. 배알이 없는지 싱겁기로 말하면 천하태평이다. 이런 친구가 주변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덩달아 손해를 입는다. 그래도 맹물 같은 그의 천성은 어찌하지 못하고 마냥 있지 못하는 친구들도 매일반이다. 상대가 맹물인데 나중에는 자신이 맹물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10여 년 전 맹물 같은 친구가 있었다. 소매점에 일용품을 납품하고 수금하는 그에게는 시간이 곧 돈이었다. 바쁜 가운데서도 친구의 부탁이면 무엇이듯 외면하지 못할 만큼 그는 정이 헤펐다. 한번은 운전 면허증이 없는 나의 처지가 안타까웠는지 교습을 자청해 주었다. 덕분에 쉽사리 면허증을 땄고, 그의 승용차에 실려 부산 인근의 시골을 넉넉하게 구경하기도 하였다. 알고 보니 그의 심성에 호소하여 운전을 배운 친구가 한둘이 아니었다.

요즈음도 운전을 하거나 맹물을 마실 때면 간혹 그가 기억난다. 사소한 도움이 필요한데 타지로 떠난 그의 부재가 아쉬워 맹물을 마시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경우 내 속을 슬며시 들여다본다. 나는 맹물 체질이 아닌데 억지로 맹물을 마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담배를 끊고 난 후 술에 대한 애착이 늘었다. 습관성 음주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구실에 얹혀 술이라는 해우제(解憂劑)를 멀리하지 못한다. 명분 없이 마시면 계면쩍어지는 술꾼의 속마음을 헤아려 주는지 술이 당기는 날에는 반드시 건수가 생긴다. 하다못해 속도위반 딱지를 떼이는 일이라도 일어난다. 적이 반가운 홧술이 기다린다.

“홧김에 한 잔 한다.”는 말이 있다. 치솟는 노여움을 술로 돋워 단숨에 폭발시켜 버리는 극약처방이다. 화끈하게 화를 내고 깨끗하게 마무리하는 수작이지만, 실은 뒷맛이 께름하다. 게다가 술로 만사를 해결하려는 낭만이 이제는 측은한 짓이 되어버렸다.

근래 먹을거리처럼 마시는 풍속도 달라진다. 반주니 해장술이라는 덤 잔이 사라지면서 커피가 디저트 음료가 되고 있다. 젊은이의 기호에 맞춘 음료수의 종류도 날마다 다채로워진다. 더욱이 요즈음은 술이나 기호음료에서 맹물로 되돌아가는 시기인 듯하다. 거리를 오가는 행인을 지켜보면 작은 생수 플라스틱 통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수돗물을 믿지 못하는 세태의 일부다. 하지만 깊게 헤아려보면 그것만이 아니다. 근본에 대한 향수가 맹물 통에 담겨 있다.

맹물이든 생수든 원래 하나다. 청정 계곡에 흐르는 산간수도 땅속 깊숙이 흐르는 지하수도 맹물 그것이다. 무색, 무취, 무미를 지켜내는 인내 덕분일까, 아니면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움 때문일까.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자연을 가까이 하려 한다. 맹물에 대한 그리움도 술에 절어버린 습성의 반작용일 것이다.

맹물은 만물이 조화를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바탕이다. 소금을 뿌리면 짜고, 설탕을 넣으면 단물이 된다. 모양의 변화도 자유롭다. 구름은 맹물의 첫 형상인 물방울이 모인 것이고, 맹물이 하얀 겨울 날개를 달면 눈이 된다. 색소가 첨가되거나 화려한 용기에 담겨지는 변화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대로 있음으로 변신의 폭은 무한대가 되고, 서울 어울림으로 불변의 본성은 더욱 강해진다.

그 맹물의 맛을 아직 모른다. 식품점에 진열된 인공 음료수에 익숙해진 혀끝을 제 맛 보기로 되돌리기가 심히 어렵다. 굳이 비유하면 바람 든 무를 씹을 때의 퍼석한 느낌이나 한물 간 수박의 흐물한 뒷맛이다. 더욱 고약한 일은 맹물은 헛배만 불린다고 믿게 된 어리석음이다. 신이 천지를 창조했을 때의 물은 맹물인데, 인간은 맹물을 더럽히다 못해 그것의 가치마저 망각해 버렸다. 머지않아 유전자 변이로 사람의 외모는 물론 손해 본다 싶은 성격마저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때는 교정술이 꾸밈의 수단이 된다. 끝내 맹물 같은 사람은 열성(劣性) 종족으로 멸종하게 될까 두렵기만 하다.

맹물을 마시다 보니 조금씩 정이 간다. 어떤 때는 잔속의 맹물이 공작처럼 기품이 있어 보이고, 한 바가지의 맹물에서 드라이플라워의 은근한 향기를 맡기도 한다. 사람을 사귀는 과정도 그럴 것이다. 불현듯 맹물다운 친구가 아쉬워진다. 본래의 맛이 그리워지는 나이에 들어섰는가 보다.

맹물을 들이킨 몸에서 짠물이 나온다. 맹물을 먹은 소는 근수가 는 다는데 소금기 있는 땀만 흘리는 나는 도살장의 소보다 못하다. 그러고 보니 세상이 세상답게 지켜지는 이유는 소금 같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맹물다운 사람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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