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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민춘란 / 임병식

부흐고비 2021. 3. 17. 05:00

벗도 허물이 없고 만만한 벗이 있듯이 난중에서는 민춘란이 그런 난이 아닌가 한다. 피운 꽃이 야릇한 미소라도 보낸다면 와 닿는 눈길에 흠짓 놀라기라도 하련만, 푼더분하게 반겨주니 도무지 신경 쓰임이 없다. 그저 수수한 자태가 마냥 편하게 마음을 이끌어 줄 뿐이다. 나는 작년에 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화단에 심겨져 있던 민춘란 두포기를 캐어 가져왔다. 집안을 꾸밀 화분이 없어서가 아니라 계속 인연을 삼고자 해서다.

이 난들은 7,8년 전에 고향인근 야산에서 캐어 온 것이다. 산악회원들과 득량발전소 뒷산을 올랐다가 눈에 띄기에 캐었는데, 일행들은 '많고 많은 게 민춘란인데 어데 쓰려고 캐느냐'고 타박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고향 산에서 자란 난을 곁에 두고 보는 맛도 괜찮을 것 같아서 신청않고 가져왔었다.

가져온 뒤에는 뒤뜰 화단에 곧바로 심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낯가림도 않고 잘 커주어 그 해에 꽃을 피워 주었는데, 보니 이게 유향종(有香種)이 아닌가.

이후로 난은 특별히 돌보지도 않았는데, 해마다 중식을 거듭하여 수년사이 작은 화단을 점령해 버렸다. 그러니 꽃이 피는 삼월초만 되면 향기가 번져나서 마치 향수비누 냄새를 맡고 있을때 처럼 감미로운 향훈이 가득하였다. 이 때가 되면 나비도 어디서 날아와서 날개짓을 하며 머무는 것이었다. 그러니 도심에서 자연을 벗삼은 맛이 쏠쏠하였다.

나는 이때 난을 처음 길러본 건 아니다. 애석(愛石)생활을 하다보니 아는이들이 선물로 주기도 하고, 난 가게에서 구입도 하여 수개의 분을 가지고 있었다. 제주 한란을 비롯하여 대엽풍난, 춘란, 그리고 이파리 둘레에 노란테를 두른 복륜등. 그런데 이것들은 집에 들려온후 단 한번도 꽃을 피운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수필문학상을 받은후 친구들이 보내준 제주한란이 지금 막 꽃술을 열고 있어 의외다.하나 놀라울것이 없는게 화원에서 이미 꼴망물이 머금은 상태로 배달된 것이어서 엄밀히 말하면 내가 길러서 피운 게 아니다. 그러니 민춘란 말고 내가 피운 건 이 없는 것이다.

민춘란의 시련으로 말하면 고향에서 주택으로 다시 아파트로 자주 이사하며 몸살께나 앓았는데도 끄덕않고 꽃대를 너댓개씩이나 올려 한란 못잖은 향기를 내품어 주고 있으니 아니 대견한가.

친구들이 보내준 한란은 보기에 여간 귀태가 흐르고 고급스럽지 않다. 눈길을 마주치면 요조숙녀가 게슴치레 실눈을 뜨고 아양을 부린듯 하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그 꽃술이 너무 청초하여 눈에 안기는 맛은 덜하다. 이에 비하여 민춘란은 아무데서나 목젖을 드러내고 웃는 작부같지도 않으면서 친근하게 느껴지며 다소곳이 은근한 미소를 보여주는게 여간 편안하지가 않다. 도무지 마음 조리는 긴장감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민춘란을 보고 있노라면 친구들도 이런 민춘란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원로 여류시인은 어느방송 대담프로에 출현하여 '집에서 입는옷 그대로 찾아가도 흉보지 않는 벗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나도 민춘란처럼 대하기 편한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천명을 넘기도록 살면서 그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귀어 왔지만 등산복 차림 아니면, 추리링 바람으로 걸어나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가. 그걸 허물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맞아줄 사람이...

나는 욕심이지만 나에게 무한정의 신뢰를 보내는 사람이 한사람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산다. 자기는 해마다 연하장을 보내고 축의금을 보내는데, 내가 한 오 년동안 소식을 뚝 끊고 살아도 타박않고 꾸준히 챙겨주는 사람. 설령 내가 자기를 험담을 하고 다녀도 '그 친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하고 도리질 하며 끝가지 믿어주는 심지 굳은 사람.

세상에 부모나 혈육이 아니고서 그런 사람이 있을까마는, 그러나 허망한 꿈일지라도 늘상 그런 꿈을 버리지 못한다. 나는 일찍이 결혼 적령기를 맞아 사람은 지극히 상대적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그것은 마치 저울추에 놓인 눈금과 같아서 당해보니 도대체 욕심이 통하지 않은 것이었다. 상대가 머리가 좋은 여자는 내가 머리가 별 볼일 없다는 이유로, 부잣집 여자는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많이 배운 여자는 내가 학벌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저울 칭판(秤板)에 올라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경찰관이란 직업은 세상에서는 필요로 하면서 결혼상대로는 장애 중에 장애였다.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그런 퇴척이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턱없는 결혼이었다면 남 보이기에 제주 한란처럼 고고하기는 할지언정 아무짝에도 모시고 살기에는 평생 마음조리는 부담 아니였겠는가.

오늘 새삼스레 이파리들 속에서 다소곳이 피어있는 민출란을 보니 난꽃이 마치 만만한 아내의 얼굴만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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