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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마당 / 김해남

부흐고비 2021. 3. 17. 05:30

한차례 소나기가 지나가자 푸석하던 흙 마당이 촉촉하게 젖었다. 한 구석에는 늘 가릉대는 늙은 개의 웅크린 모습과 찌그러진 양재기에 불어터진 밥알, 그리고 헛간 담벼락에 바짝 붙여 매 놓은 낡은 멍석, 장독대위에 내려앉은 햇살과 수돗가 빈 바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만 달그락거린다.

비 긋고 지나간 마당에 잡초가 파랗다. 거름 한 줌 뿌려 준 적 없고, 갈증날 때 물 한 모금 먹인 적 없어도 어쩜 이리도 잘 자라는지, 내 손에 걸리기만 하면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사정없이 모가지를 비틀어 내팽개쳐도. 녀석들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만 내리면 고개를 바짝 쳐든다.

잡초를 뽑아내고 비질을 한다. 바지랑대에 미끄러지는 한낮의 햇살이 오지다. 오똑하니 앉아 남상거리던 깃 젖은 콩새 한 마리가 포르르 마당으로 내려앉는다 내 아이들에게 군음식을 나누어주듯 콩 한 줌을 뿌려주니, 뒷다리로 흙을 콩콩 차며 좋아라 모이를 줍는다.

빨래를 내다 널어놓고 젖은 멍석을 말린다. 곰팡내가 난다. 긴 시간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곰삭은 이 냄새가 왜 그런지 싫지 않다. 오래 전에는 마당에다가 초례청을 마련하였을 것이다. 자식들 모두 키워 혼인을 시키고, 늙어서는 친척들 모두 불러 환갑잔치도 벌이고, 그런 날은 뒤란에 솥을 걸어 돼지머리를 삶고 떡국을 끓였으리라, 가끔은 서러운 귀신들도 불러들여 한 판 굿마당도 벌였으리라. 징이며, 꾕과리들 한참동안 부서지고, 자지러지고 나면 마당은 평온해 졌을테지.

멍석에 앉아서 묵은 이야기를 들춰본다. 그 때 여름에는 밤마다 멍석을 폈다. 들에 갔던 식구들이 모두 모이면 나는 멍석에다 밥상을 차렸다.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도란거리던 아이들은 내 무릎을 베고 잠이 들고, 모깃불이 사그라지고, 감자가 익을 무렵, 모기를 쫓다가 감자가 익을 무렵이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없이 넓고, 깊고, 아늑한 하늘은 내게 위안이었다.

두 아이의 유일한 놀이터는 마당이었다. 풀 뜯어 소꿉놀이하고 빗금 그어놓고 밤톨만한 돌멩이를 주워 공기놀이도 하고, 바지랑대에 고무줄을 매 놓고 팔랑팔랑 줄넘기를 할 때면, 햇볕도 덩달아 좋아라 까불거리며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이제 마당에는 아이들의 발소리만 남았다. 고요한 마당에 내려서면 나는 가끔 쓸쓸하다. 그러나 햇살과 바람, 잔 돌멩이, 풀, 콩콩거리던 발소리가 있어서 그다지 외롭지는 않다.

산골마을의 아침은 언제나 비질소리로 시작되었다. 마당은 언제나 정갈하였다. 시멘트를 발라놓은 듯 매끈하게 다듬어야했다. 빗물에 흙이 패이면 아버님은 먼 산에 가셔서 황토 흙을 져다 날랐다. 발로 밟아가며 다지다가 성에 안 차면 손바닥으로 자근자근 눌러 다졌다. 도리깨질하는 남정네의 어깨는 절로 신명이 났고, 키질하는 아낙네의 수고로움도 덜어주었다.

시아버님의 비질소리는 자명 종소리보다도 더 정확했다. 새벽잠 많은 며느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비질소리에 일어나 잠을 털고 가마솥에 쌀을 안쳤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 가는 걸까, 도시의 아파트촌에서 하룻밤 묵어 오는 날이면 듣기 싫었던 비질소리가 그리워지니.

마당을 쓸 때에도 아버님은 언제나 바깥에서 안으로 쓸어모았다. '집안에 든 복을 바깥으로 쓸어내서는 안된다' '마당에 떨어 진 보잘것없는 것들이라도 함부로 내 몰지 말아라'. 라고 하시던 아버님, 잔 부스러기들도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생의 일부분이라고 여기던 시아버지의 소박한 마음도 이제 내 마음에 닿아 나는 비질을 할 때마다 바깥에서 안 마당으로 쓸어들인다.

하지만 마당은 따뜻하고 미학적인 추억만을 들 춰내지는 않는다. 새댁시절 친정 어머니가 딸 사는 것 보려고 연락도 없이 마당을 가로질러 오시던 날, 저고리 소매 끝에 그을음을 조롱조롱 달고 눈물 그렁하게 어머니를 맞이했지만, 어머니는 그런 딸이 애틋하여 마루에 걸터앉지도 않고 흙 마당에 망연히 서 있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흙 마당에 시멘트라도 좀 바르고 살지' 애꿎은 흙 마당 탓을 하시다 가신 이후, 어머니가 발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가 돌아나간 마당에 서면 나는 요즈음도 발뒤꿈치가 아프다.

마당에는 이제 타작하는 풍경도 키 질 소리도 사라진 지 오래다. 말 상대자가 없는 나는 심심하면 구석에 웅크린 늙은 개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볕 좋은 날에는 멍석을 말린다. 콩 한 줌으로 콩새를 불러들여 이야기도 줍고, 마당에서 자라는 하찮은 풀 한 포기도 이제 나의 다정한 벗이다.

포실한 흙의 촉감이 발바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전해져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일치감이 느껴진다. 고인 물처럼 일상은 무료하고 풍경은 늘 막막한, 그래서 늘 사소한 것이 되어버리는 굼뜬 시골 살이지만, 그래도 내게 위안이 되는 것은 사라져 가는 것들이 발산하는 한없이 넓고 부드러운 세월의 향기이다. 앞서 마당을 건너 간 삶의 얼룩, 혹은 무늬 중 하나인 나, 또한 하나의 배경으로 이 마당을 건너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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