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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사초 / 강현자

부흐고비 2021. 3. 17. 14:48

아버지 산소엔 가뭄으로 인해 군데군데 빈 잔디 위로 한숨만 풀풀 날렸다. 아버지가 공들여 지킨 흔적처럼 그나마 남아있는 잔디도 겨우 마른 풀빛을 머금고 있었다. 90년 만에 닥친 가뭄을 아버지도 아셨을까. 아버지는 바람도 달구어 재워놓고 잔디까지 다 태울 기세로 매일 내리쬐는 불볕을 핑계 삼아 자식들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외롭다는 듯 잡초들을 봉분키만큼 키워놓고 계셨고, 자주 찾아뵙지 못한 나의 불효의 길이만큼 자란 잡초들이 아버지의 쓸쓸함을 대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투정이 사랑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사랑 표현은 매서운 불호령이 전부였다. 귀가하는 아버지를 맞이할 때 가족들 중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불호령이 났고, 또 그때마다 아버지 발 씻을 물을 대령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났고, 그래서 아버지가 있는 집안은 언제나 살얼음판이었다. 유교와 봉건사상에 얽어매 놓고 해가 진 후에 집 밖에 나가면 불호령이 났고, 민소매 같은 짧은 옷을 입어도 불호령이 났다. 아버지의 지나치리만큼 심한 간섭에 나는 호랑이 같은 아버지가 무서웠고 싫었다. 딸이 잘나면 아들이 치인다면서 딸은 공부를 잘해도 안 되었던, 그래서 아버지 보란 듯이 일부러 공부를 등한시해서 꼴찌 성적표를 보여드리기도 하고, 아버지를 떠나 객지를 떠돌기도 하면서 아버지와 맞섰고 반항도 해서 아버지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던 아버지가, 나이만 훌쩍 자라버린 내게 커다란 보퉁이를 쥐어주고 결혼이라는 굴레 속으로 당신 심부름 보내듯 훌쩍 떠나보냈다. 내심 아버지는 내가 하루도 못살고 보따리 쌀 거라며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염려하셨지만, 결혼기를 넘긴 내가 아버지에게는 밉고 짐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잘 되면 내 탓이고 못 되면 조상 탓'이라던 옛말처럼 내가 원하던 공부를 다 못한 것도 아버지 탓이었고, 일이 잘 안 풀린다거나 남들처럼 번지르하게 잘살지 못하는 것도 다 아버지 탓이었다. 나는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서 자연히 아버지를 찾아뵙는 일을 소홀히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목숨처럼 아끼던 일을 잃고 종이호랑이가 되어갔다. 쩌렁쩌렁하고 무섭던 그 기개는 다 어디 가고, 어쩌다 힘없고 쓸쓸한 모습을 뵐 때마다 자식들 가슴을 아프게 하는 아버지가 또 미워지는 것이었다. 친구 분들과 어울리면서 적적함을 달래 보라는 자식들 권유에도 불구하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의 고집스런 자존심에 아버지가 미웠고, 깊은 어둠의 낭떠러지를 거슬러 올라와 내뱉는 둔탁한 휘파람 소리 같은 아버지의 긴 한숨 소리를 들을 때마다 차라리 화가 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딸자식 보고 싶을 때마다 보고 싶다는 말은 못 하고 쓸쓸히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고, 어머니는 내게 귀띔을 해 주었지만, 나는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의 외로움을 아버지 키만큼 키우고 계신 줄도 몰랐다.

그렇게 아버지는 홀로 세상과 담을 쌓으며 몇 년을 넋 놓고 사시다가 그 외로움이 아버지의 키를 넘던 어느 날 끝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운명을 달리 하셨다. 그날 아침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누런 종이 한 장을 남기고 무너지는 하늘 속으로 떠나가셨다.

나 아직 아버지 심부름 절반도 마치지 못했는데, 아버지 보란 듯이 하루도 무사히 넘기고 일 년, 십 년을 무사히 넘기고 있는데, 몇 번은 풀었다가 되짚어 싸고 했던 해진 보퉁이 가슴에 지니고 이 다음에 꼭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풀어진 보퉁이 곱게 여며서 당신이 그 짐 다 짊어지고 떠나셨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아버지께 아무것도 해 드린 것이 없는 내게, 효도할 기회마저 앗아가 내 가슴에 한을 심어놓은 아버지는 자식을 이긴 유일한 아버지가 된 것이다.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내 가슴에 묻힌 아버지께 이제는 영영 받을 수 없는 위로를 나는 그렇게라도 스스로 위안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효도 한 번 못한 무거운 짐을 어떻게든 덜어 보려고 궁색한 변명만 끌어다 대던 나는 이제야 철이 든 척 무덤에 찾아와 무릎 꿇고 앉아서 죄스러움을 뽑아내듯 잡초를 뽑고 때늦은 후회를 심어 보지만, 이런 아우성이 지금은 너무 깊게 묻혀져버린 아버지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는지. 어머니는 자식들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까지 모질게 떠난 아버지를 두고두고 용서 못 하겠다 하시지만, 아버지의 긴 외로움을 알기에 손수 무덤의 풀 무더기 억세게 잡아당겨 질긴 뿌리 끝에 묻어 나오는 한을 무덤 밖으로 힘껏 던지곤 하셨다.

나는 풀 한 포기 한 포기 뽑을 때마다 한 번도 당신의 마음을 비친 적이 없던 아버지의 마음을 읽듯 그 자리에 ‘아 버 지 힘 드․셨․지․요'라고 떼를 한 장 한 장 덮어 심었다. 철이 든 척 어린 굴참나무도 떼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무성했던 외로움을 걷어내고 새 옷으로 떼를 입힌 무덤에 물도 주었다. 아버지께 뜨끔하게 데인 불효막심한 내 가슴처럼 가뭄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숨죽여 있던 바람도 어디선가 몰려와서 시원스레 한 몫 거들어 주었다.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아버지의 대답인 듯 무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홀로 견디다가 정히 외로워지면 또 잡초들을 극성스레 기를 것이다. 그것만이라도 아버지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세상 속에서 빠져나간 뒤에야 나에게로 왔다. 지금도 때때로 희미해져 가는 아버지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는 무덤이 내 삶 속으로 마실을 와 주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깜빡깜빡 철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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