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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운수 좋은 날 / 황주리

부흐고비 2021. 3. 23. 13:28

분명히 운수 좋은 날이 따로 있다. 운수가 나쁜 날도 따로 있고, 유난히 운수가 좋거나 나쁜 해도 따로 있다. 하루종일 휴대폰이 울려대는 날이 있나 하면 잘못 걸린 전화 한 통도 오지 않는 날도 있고, 길에서 아는 사람을 수없이 만나는 날도 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옛말은 요즘도 기막히게 맞는 말이고, 매일매일의 운수가 좋거나 나쁜 날들의 축적인 사람의 팔자라는 것도 어딘가에 분명 있음직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 -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삶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라는 누군가의 글귀가 생각난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의 축적인 어린아이의 세월은 그렇게 빠르지 않다.

어릴 적 나는 빨리빨리 늙고 싶었다. 사실 우리가 ‘이제 그만 좀 천천히 가거라’고 애원하고 싶어지는 나이는 서른 살부터가 아닐까? 그 서른 살에 나는 유학을 떠났다. 뉴욕에서 지냈던 날들 중 어느 운수 나쁜 하루가 떠오른다.

눈부시게 맑은 봄날 아침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자욱했다. 거리로 나오니 온 사방이 연기 천지인데다가 빨간 줄로 막아 놓고 사람들의 도로 통행을 막고 있었다. 어딘가 불이 난 모양이었다. 결국 일을 보지 못하고 빙빙 돌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려 하니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졌다. 이내 생각지도 못한 폭우가 쏟아졌다. 물론 우산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작은 우산 하나쯤 있어봤자 그게 그거일 정도로 굵은 빗방울이 온몸을 채찍처럼 때려댔다. 삽시간에 온통 젖어버려서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

그날따라 택시도 잡기 어려웠고, 갑자기 들고 있던 쇼핑백의 바닥이 터지더니 안에 들었던 책과 비디오와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약속 장소를 향해 가려는데 안경이 땅에 떨어져 렌즈가 박살이 났다. 꼭 만화를 보는 것처럼 운수 나쁜 장면들이 연속이었다. 겨우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만나기로 한 친구가 나타나지를 않았다. 정말 엉망진창인 운수 나쁜 날이었다.

이럴 때는 집으로 빨리 돌아가는 게 최고지 싶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창밖은 거짓말처럼 환하게 개어서 파랗게 맑은 하늘이었다. 산다는 건 그 운수 나쁜 날처럼 그렇게 예측 불허의 순간들의 연속일 것이다. 아니, 그날은 운수가 나쁜 게 아니라 좋은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진이 날 수도 있었고 자동차 사고가 날 수도 있었고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갇힐 수도 있었을 - 얼마나 위험한 순간순간들을 우리는 매 순간 운 좋게 비켜 가는 것일까? 그걸 안다면 우리는 복권 당첨과 같은 뜻밖의 행운 따위는 꿈도 꾸지 않을 것이다.

대학 시절 나는 소위 점을 보러 가는 걸 좋아했다. 학교도 젊음도 삶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그 좋은 청춘의 봄날을 죽이기 위해, 클래식 다방에 앉아 시벨리우스를 듣거나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었다. 폭탄이라도 터뜨리고 싶은 그 잔인한 4월에 - 머리가 돌 것 같은 심정으로 굴레방다리나 미아리에 조밀하게 모여 있던 운명 철학관을 찾는 것은 내 빈곤한 취미 중의 하나였다. 그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때 이후 나는 점을 보러 가지 않는다.

마치 영화의 끝 장면을 누군가로부터 미리 들으면 영화 보는 재미가 덜하듯 - 결론이 보류된 삶의 과정들을 최선을 다해 살아낼밖에 없다는 소박한 진실을 깨닫기 시작한 걸까?

운명이란 결정론과 비결정론 사이의 변증법적 역학 관계를 지니므로,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영화의 끝 장면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고, 뜻하지 않은 행불행을 만날 때 사람들은 운명론자가 된다.

인간의 가장 좋은 상태란 자신이 노력한 만큼은 아직 운이 따라주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보람이 있는 나날일 때인지 모른다. 노력한 만큼 이상의 행운이 선뜻 다가와서 기대 이상의 성공이라는 선물을 받을 때, 그때부터 사람의 마음은 불안해지고 빈곤해진다.

그러므로 행운이란 마치 아직은 뜯어보지 않은 선물 상자로, 어쩌면 내게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모를 희망으로 존재할 때, 그때가 제일 좋은 것이다.

다 알면서도 우리는 행운이라는 뜻밖의 손님을 목매달고 기다린다. 문제는 항상 갑자기 들이닥친 그 행운을 만난 뒤이다. 그때부터 사람은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기를 포기하거나 행운의 노예로 끌려다니기 쉽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지녀야 할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는, 행운은 늘 기다리는 즐거움에 그 의의가 있고 불운이 오지 않는다면 정말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늘 우리들 삶의 근사한 모델로 머리속에 각인되었던 대단한 사람들의 추락을 지켜보면서, 작고 성실한 행복의 씨앗 하나 심어본다.

 


 


황주리(화가,수필가)는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미대 서양화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뉴욕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25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200여 회의 기획단체전에 참가했으며, 석남미술상과 선미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세월》 《날씨가 너무 좋아요》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행복한 여행자》가 있다.
그림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후쿠오카시립미술관, 선재미술관, 성곡미술관, 삼성의료원, 경찰병원, 호암미술관, 삼성전자, 이랜드 등

 

 

일상으로 만개한 꽃들의 ‘옴니버스 이야기’

우리는 살면서 정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일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그랬다가 이번 코로나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일상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어느덧 1년이 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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