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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창원 장날 / 김소운

부흐고비 2021. 3. 23. 04:24

그 날이 아마 창원의 장날이었던지, 찻간에는 짐을 가진 이가 많았다.

경부간에 해방자호가 다니던 시절이니, 그 때만 해도 옛 말이다.

진해를 두어 역 앞두고, 기차가 상남 성주사간을 달리고 있다. 그 때는 이 찻간에도 유리창이 있고, 좌석이 있었다. 물론 전등도 켜져 있었다.

내 옆 자리에 총을 가진 순경 하나가 있는 것을 외투 겉으로만 보고 나는 처음 군인인 줄만 알았다.

--오늘 쌀값이 얼마나 갑니까?

북쪽 말씨로 그 순경이 어느 장꾼 노인더러 묻는다. 그 노인이 두어 말짜리 쌀 부대 하나를 가졌다. 얼마얼마 하더라는 대답이다.

순경과 노인 사이에 몇 마디 문답이 오고 간다.

--쌀은 장사하려고 사 가시나요?

--그저 장사가 되면 장사를 하고 집에서 먹게 되면 먹고 그렇지요.

--어디까지 갑니까?

--경화에서 내립니다.

--나도 경화에서 내려야겠는데..., 경화동은 싸점이 있지요?

--있습니다.

--지금 가면 쌀을 살 수 있을까요?

--문을 닫았을 건데..., 깨우면 일어날지 모르지요.

그 대답으로 안심이 안 되는지 순경은 좀 걱정스런 표정이다.

--싸점이 한 집뿐인가요?

--또 있기는 있어도 좀 멀구요. 역에서 가까운 게 그 한 집뿐이지요.

--그 쌀, 몇 되만 팔아 주실 수 없나요?

--팔아도 좋지요. 좋지마는 밤중에 쌀을 사서 뭘 하려고 그럽니까?

어쩐지 그 장꾼 노인은 팔기를 별로 탐탁찮게 아는 눈치다. 순경도 거기까지로 입을 닫았다.

전등 불빛으로 보아서 25, 6세--남을 우기거나 위협은 못 할 순진한 얼굴이다. 그 순경의 몇 마디 말이 내게 몹시 궁금스러웠다.

--경화동서 근무를 하시나요?

혹시 새로 부임해 와서 경화동 지리를 잘 모른다는 경우를 상상해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아닙니다. 터널 이쪽 수원지를 지키고 있어요.

--수원지가 거기 있었던가요? 그런데 왜 경화까지 가요? 성주사가 더 가깝지 않아요?

--쌀을 좀 사 가려고 그럽니다. 동료들이 여태 저녁을 못 먹고 있을 텐데... 마산서 와야 할 쌀 배급이 며칠 늦어서 오늘 찾으러 갔더니, 2, 3일 더 기다리라고 해서 빈손으로 오는 길이라는 이야기다.

--아침에 남은 쌀을 톡톡 털어서 죽을 쑤어 먹고 나왔는데, 동료들은 점심도 못 먹고 쌀 가지고 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기차가 성주사역을 지났다. 터널을 빠지면 얼마 안 가서 경화역이다.

내가 묻는 말이 좀 빨라진다.

--수원지를 지키는 이가 모두 몇인데요?

--일곱입니다.

--일곱 식구가 아침에 죽 한 그릇씩 먹고 온종일을 굶었구먼요. 반찬 같은 것은 어떡합니까?

--반찬이라니요, 형편없지요. 소금 한 가지라도 좋으니 쌀이나 꼬박꼬박 주었으면 좋겠어요.

--부근 마을에서 찬 같은 것을 좀 달랄 수는 없나요? 된장이나 김치나...?

--왜요, 여러 번 동냥들을 해다 먹었지요. 하지만 한 번 두 번이지, 염치가 없어서 이젠 더 달 란 말은 못 해요.

여기에도 대한민국의 기름 마른 부속품이 있다. '염치가 없어서--' 얼마나 고마운 말이냐. 누구를 탓하지도 원망치도 않고 묻는 말을 중학생처럼 솔직하게 대답해 주는 그 순경에게 나는 짧은 시간에 정이 들어 버렸다.

내 주머니에 가족들에게 갖다 줄 한 달 생활비가 있다. 그 돈에 손을 댈 자격이 내게 있는지 없는지는 나중에 판정할 일이다. 미담을 제조하는 쑥스러움을 헤아릴 겨를도 없다.

기차가 경화역 앞에서 속력을 늦춘다. 백 원짜리로 쌀 한 말 값을 헤어서(천 원 지폐가 생기기 전이다.) 장꾼 노인에게 쥐어 주고는,

--그 쌀 한 말 이분에게 드리시오.

하고 나는 떠다 맡기듯 당부를 했다.

내리려고 자리를 일어선 젊은 순경은 몹시 당황한 얼굴로,

--공용인데 이런 폐를 끼쳐서야 어디 되겠습니까?

하고 사양을 한다.

--공사이길래 적은 힘이라도 도웁자는 겁니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노릇이지요. 주제 넘는 짓입니다만...

--그럼 성함이라도...

--성함이 다 뭐입니까? 자, 그런 소리 말고 내리시오. 차가 닿았습니다.

순경은 내 선에다 '부산 철도 경찰대 000'라는 명함 한 장을 남겨 두고는 깍듯이 경례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반 년 남짓해서 6.25사변이 일어났다. 우리들의 생활이 그 때와는 비할 나위 없이 더 군색하고 절박해졌다.

그러나 한편에는 이 사변으로 해서 단단히 한 몫 보는 친구들도 있다고 한다.

인구 비례가 10분의 1 밀도도 못 되는 이 진해 같은 곳에서도 요리집이 몇몇 군데나 되고 엊저녁 누구 회계는 70만원이니 80만원이니 하는 기름진 화제가 앉아 있어도 들려온다. 하물며 부산쯤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나는 그 터널을 지금도 매월 한두 번씩은 기차로 지나다닌다. 수원지에는 오늘 밤 같은 소한 추위에도 날을 새우며 지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네들이 행여나 밥을 굶지 않았기를 바란다. 아울러 내 이 얼굴 뜨거운 '선행보고기'가 대한민국에 되레 욕이 미치는 결과가 되지 않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김소운(1907~1981) : 수필가, 시인. 일본 문학가. 호는 소운. 경남 부산 출생. 일본에서 중학 중퇴. 초기에는 시로 출발하여 관념시 계통의 시작품을 발표했으나 일본인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통감하고서 한국의 민요, 동요, 시 등을 일본에 소개하는 작업을 벌여 크게 주목받았다. 문학의 사회자로 문화 수출의 상인으로 자처했던 그는 후기에는 인생에의 통찰이 담긴 격조 높은 수필을 많이 발표하여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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