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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떤 공생(共生) / 김학

부흐고비 2021. 3. 23. 12:54

여름철의 내 발바닥은 무좀의 야영장이다. 무좀의 무리들이 내 발바닥에다 크고 작은 텐트를 치고 여름을 즐긴다.

녀석들이 터를 골라잡는 곳은 양쪽 복사뼈 밑의 반질반질한 발바닥과 뒤꿈치 부근이다. 대개가 원형 텐트인데, 어떤 것은 좁쌀만 하고, 또 어떤 것은 은단만 하다. 한쪽 발에 10여 개의 텐트가 처져있다.

내 경우 무좀은 여름의 전령사다. 가을부터 봄까지 말짱하던 발바닥에 수포가 하나둘 솟아오르면 나는 여름이 왔음을 직감한다. 달력이나 기온보다도 먼저 달려와 내게 여름의 내방을 알려준다. 여름의 전령사인 무좀의 성의가 고맙고, 친절이 가상하다.

내 발바닥에서 사는 무좀은 나를 못 견딜 만큼 괴롭히지는 않는다. 가뭄 뒤의 논바닥처럼 발바닥이 갈라지거나, 발가락 사이에서 허물이 벗겨지도록 들볶지도 않는다. 가렵거나 진물이 흐르게 하지도 않는다. 마치 공동묘지마냥 크고 작은 수포의 형태로 군데군데 무리 지어 야영을 할 따름이다.

한때 나는 이 무좀을 퇴치하려고 안달을 한 적이 있다. 한약·양약·단방약을 고루 사용해 보았지만 결과는 허사였다. 미제 무좀약도 무력하긴 마찬가지였다.

약을 바르면 죽은 듯이 숨어 있다가 약 기운이 사라지면 슬그머니 머리를 내민다.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약을 바르면 슬며시 자리를 옮겨 텐트를 친다. 나와 무좀의 술래잡기는 여름철마다 되풀이되었지만 번번히 내가 지곤 했다. 때로는 게을러서, 때로는 일이 바빠서 약을 바르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던 까닭이다. 무좀의 끈질긴 생명력이 끝내 나를 감동시킨 셈이라고 자위하며 공생(共生)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어쩌다가 물끄러미 맨발을 바라보노라면 무좀의 수포가 눈에 잡힌다. 그 수포에서 34년 전 군대 시절의 기억들을 인양하게 된다.

1968년 1월쯤이었다. 나는 육군 보병 17연대 1대대 작전 장교 자리를 후배에게 인계하고 제대할 날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시에 비상이 걸렸고, 그로 인해 나는 제대가 석 달 늦춰지면서 다시 작전 장교를 맡아야 했다.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남파된 북괴 124군부대 무장간첩의 출현이 빚어낸 이변이었다.

우리 대대의 방어진지는 강원도의 938고지. 무장간첩들이 일망타진된 후에도 우리는 밤낮없이 938고지를 오르내리며 강도 높은 훈련을 쌓아야 했다. 모든 군대가 그처럼 전투력 강화를 위하여 박차를 가했던 기억이 새롭다.

야간훈련에 나선 어느 날 밤. 산기슭에서 만난 보슬비가 중턱에서는 눈발로 변하더니, 938고지 정상에 닿자 폭설로 변했다. 쌓인 눈의 높이는 무릎을 넘어서고 있었다. 어디가 고랑이고, 어디가 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석가모니의 설산고행(雪山苦行)이 그런 것이었을까.

미끄러지고, 고꾸라지며 가까스로 산기슭에 당도하니 눈은 간 곳 없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겨울비를 맞으며 어둠은 서서히 나래를 접었다.

내의는 온통 비에 젖었고, 군화 속에는 흥건히 물이 고였다. 내가 무좀과 친교를 나누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이다.

무좀이 내 발에서 논밭을 일구며 삶을 영위해 온 지 어언 34개 성상. 무좀은 어느새 나와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얽힌 사이가 되고 말았다. 내 발에 무좀이 있음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무좀이 숨 막혀 화를 낼까 저어하여 여름이면 바람이 술술 드나드는 양말을 신는다. 사무실에서는 답답한 구두 대신 슬리퍼를 신는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여가만 있으면 시원한 물로 발을 씻는다. 내가 정성을 기울여 다독거려 주면 무좀은 고맙다는 듯 무장을 해제한다.

내 방에는 여러 가지 무좀약이 있어 때때로 나를 유혹한다. 광고 문안대로 단번에 무좀을 박살내 주겠다며 아양을 떤다. 그러나 나는 선뜻 그 약을 사용하지 않는다. 승리를 확약할 수 없는 무모한 도발로 무좀과의 평화공존 무드가 깨어질 것이 두려워서다.

무좀과 나는 처음에 적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공생을 다짐한 동지의 관계로 변했다.

사람은 누구나 질병 한두 가지를 끼고 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나는 무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야 한다.

신체 부위 가운데서 제일 구질구질하고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발바닥에 터를 잡은 무좀의 소박과 겸손이 갸륵하다. 나의 일상생활에 하등의 불편이나 괴로움을 주지 않는 무좀의 관용이 기특하다. 치료를 거부함으로서 월급을 축내지 않도록 배려하여 주는 무좀의 슬기 또한 미쁘다.

노랑 물감을 뿌려놓은 들녘의 허수아비가 쓸쓸한 퇴역을 예비하는 가을이다. 머리맡에서 맴도는 귀뚜라미의 가을 찬가가 가슴을 파고 든다.

이제 무좀은 깊은 잠을 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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