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연(鳶) / 노신

부흐고비 2021. 4. 1. 13:38

북경의 겨울은, 땅에는 아직 쌓인 눈이 남아 있고 거무스름한 마른 나무 가지가 갠 하늘에 솟아나오고 있다. 먼 하늘에 연이 한두 개 너울거리는 것을 보면 나는 까닭없이 놀라움과 슬픔을 맛본다.

고향에서 연을 날리는 계절은 2월이다. 바람결을 베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우러러 보면, 엷은 검은 빛 게연이나 엷은 푸른빛 지네연이 눈에 뛴다. 외로운 듯한 기와연도 있다. 이것은 바람을 베는 소리가 없고 낮은데서 호젓이 움직거리니 가련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 무렵이 되면 버드나무에는 움이 돋고 시급한 꽃나무는 꽃방울을 열어, 어린이들의 하늘의 정경과 호응해서 완연히 한 조각 봄의 흥취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주위에 아직 엄동의 을씨년스러움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작별한 지 오랜 고향에서의 지난날의 봄만은 하늘 저편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전부터 연날리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싫어했다. 그것은 볼품없는 아이들이 하는 장난이라고 믿었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나와 반대였다. 그는 그 무렵에 열 살쯤 되었을 것이다. 병이 많아 몸이 약했으나 무척 연을 좋아했다. 자기는 살 수가 없고 내가 연날리기를 못하게 했기 때문에 그는 그저 작은 입을 멍청하게 벌리고 정신없이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었다. 때로는 반나절이나 그렇게 하고 있었다. 멀리서 개연이 갑자기 떨어지면 그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얽혔던 두 개의 기와연이 풀리면 그는 기쁘다는 듯이 발을 굴렀다. 그가 그렇게 하는 꼴은 내 눈에는 어리석고 우스운 것으로 보였다.

언젠가 문득 생각하니 며칠째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며칠 전에 그가 뒤뜰에서 대가지를 줍고 있던 일을 생각났다. 나는 마음에 지피는 일이 있어 좀처럼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헛간으로 뛰어갔다. 문을 열어 보니 먼지를 뒤집어 쓴 산더미 같은 고물 속에 과연 그가 있었다. 그는 큰 걸상을 앞에 놓고 작은 걸상에 앉아 있었는데 뜨끔해서 이쪽을 보자 얼굴빛이 달라지면서 일어섰다.

큰 걸상 앞에는 나비연의 대가지가 아직 종이를 바르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비밀을 알아낸 만족과 함께 나는, 그가 내 눈을 속여 이렇게 애를 써가며 볼품 없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만들고 있었다는 일에 대해 화를 냈다. 별안간 나는 나비연의 대가지를 한 대 부러뜨리고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고는 짓밟아 버렸다. 나이로 보나 힘으로 보나 그는 나를 당해낼 수 없었다. 나는 물론 완전히 승리했다. 절망한 얼굴로 헛간 안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를 남겨놓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 후에 그가 어떻게 했는지 나는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 대한 징벌이 드디어 돌아올 때가 왔다. 우리는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고 나는 벌써 중년이 되어 있었다. 불행히도 아동 문제를 다룬 외국 서적을 읽고 나는 비로소, 유희는 아동의 가장 정당한 행위이며 장난감은 아동의 천사라는 것을 알았다. 20년 동안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의 정신에 대한 학살 사건이 영락없이 머리에 되살아나면서 나의 마음은 납덩이가 된 것같이 무거워졌다.

나는 과거를 보상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연을 주고 연날리기를 권정하며 어서 날리라고 말해 준다. 나도 함께 연을 날린다.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 그러나 요즘에는 그도 나처럼 수염이 있었다.

과거를 보상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용서를 빈다. '저는 그런 일을 조금치도 언짢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이렇게 말해 줄 것을 바란다. 그렇게 하면 아마 내 마음은 가벼워지리라. 확실히 이것은 실행이 가능한 방법이다. 어느날 우리가 만났을 때 서로의 얼굴에는 삶에 시달린 주름살이 많아지고 있었다. 내 마음은 무거웠다. 우리는 어렸을 때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어렸을 적엔 바보였다고 말했다. '그런 일을 조금치도 언짢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이렇게 그가 말해 주면 나는 곧 용서를 받고 마음이 가벼워지리라 생각했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요?" 그는 놀란 듯 웃으며 말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깡그리 잊어버려 티끌만한 원한도 없는 일을 용서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는가. 원한이 없는데 용서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 이상 또 무엇을 바라랴. 내 마음은 그저 무거워질 뿐이었다.

지금 고향의 봄은 또 다시 이 타향의 하늘에 오르고 있다. 그것에 나에게 지나간 지 오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면서 걷 잡을 수 없는 슬픔에 잠기게 했다. 나는 여전히 을씨년스런 엄동 속에 몸을 숨기고 싶다. ―하나 주위는 엄동이며 나에게 심한 추위를 주고 있는 것이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